[도기현칼럼]궁중(宮中) 호위무사(護衛武士)의 '옛법택견'

  

[택견꾼 도기현의 택견이야기 - 열다섯]


도기현 회장

2006년 어느 날, ‘(사)결련택견협회’의 사무국장이 흥분한 얼굴로 필자에게 와서는, “회장님, 꼭 한번 만나보셔야 할 분이 있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사무국장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매월 한 차례씩 시연단과 함께 택견 시연을 보여 왔었다. 그날도 시연단원들이 열심히 시연을 보이고 사무국장은 마이크를 붙잡고 택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한다. 택견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택견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조사되었던 대로 택견이 서울 장안의 사직골을 중심으로 구리개, 왕십리 등 사대문(四大門) 안팎에서 민중들에 의해 매우 성행했었다고 했단다.

시연이 끝나자 한 어르신이 다가와 택견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설명을 한다며 나무라셨다고 했다. 그 분은 정년퇴임한 선생님으로 현재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고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리문화 및 역사에 대한 도우미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분이셨다.

택견에 대한 또 다른 사실을 알 수 있게 될 것 같아 사무국장은 그분의 연락처를 받으며 꼭 우리 회장님을 한번만 만나달라고 부탁드렸고, 기꺼이 그러시겠노라 하셨다는 소식을 나에게 흥분된 얼굴로 전달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분을 뵙게 되었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놀랍게도 필자의 고등학교 때 은사였던 ‘정영일(鄭英一,1940~ )’ 음악선생님이셨다. 25년 만에 처음 뵈었지만 워낙 인상이 깊었던 분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매사에 빈틈이 없으시고 학생들의 조금의 일탈도 용서하지 않으셨던 그야말로 군사훈련을 가르치는 교련선생님보다도 더 무서운 분이셨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가르침에 대한 정성만큼은 대단했던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셨다.


옛법택견은 혹시 강력한 궁중 호위무사의 무예가 아니었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사실 사무국장의 얘기를 듣고는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 자칭 택견 고수부터 시작해서 택견의 비기(秘技)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나봤지만 대부분 필자에게 실망감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선생님을 뵙자마자 그분의 성품과 인격을 잘 아는지라 100% 신뢰를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택견은 서울 사직동을 중심으로 현재의 태평로(통) 일대까지 매우 성행했었는데 정선생님의 집안은 대대로 서울 태평로에 사셨단다. 정선생님의 할아버님은 택견의 고수로 젊은 시절에는 태평통에서 알아주는 강자였고 이름난 택견꾼들과 자주 교류를 가지셨다고 한다. 영친왕(英親王,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1897~1970)이 일본에 볼모로 끌려갈 때 영친왕을 호위할 5인 중의 한명으로 발탁되었으나 사정이 있어 집안에서 뺐다고 하셨다.

임금님께서 밤이면 민정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암행을 나가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궁중의 무사들이 무기를 들고 호위를 할 수 없어 택견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무인들이 맨 몸으로 왕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호위를 했다고도 하셨다.

정선생님의 아버님(鄭老馬, 1900~1956) 또한 장안에서 알아주는 택견의 고수였으며 운동신경이 아주 뛰어나셔서 YMCA의 외국인 선교사에게 야구를 배웠던 초창기 멤버로 짚신을 신고 그 당시 동대문패의 왕초였던 ‘마춘식, 김정식’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야구시합도 했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들에게 택견을 지도하셨으며 그런 연유로 결혼이 늦어져 외아들인 정선생님을 40세가 훨씬 넘어서야 얻으셨고 독립운동을 하다 얻은 부상으로 몸이 안좋아 아들인 정선생님에게는 택견을 전수하지 못하셨단다.

정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택견이 단순히 민중의 신명나는 놀이문화이고 사대문 밖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 필운동에서 태평로로 이어지는 지역은 한량들이 주로 모여 살던 지역으로 그 곳의 택견이 가장 세었으며 그 외 지역으로는 현재의 을지로 6가 옛 훈련원 근처의 군인들과 남산 지역의 한량들이 더러 택견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하층민은 택견수련을 할 수 없었고 최소한 중인 이상이나 양반인 한량과 무반(武班) 출신들이 즐겨했던 비교적 고급문화가 바로 택견이라고 하셨다. 그 당시 택견은 아주 강하고 살벌하여 궁중의 호위무사들이나 지역의 강자들이 수련했던 아주 강력한 무예라는 것이다.

비록 신뢰가 가는 은사님이긴 하지만 필자가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송덕기스승님과 친분이 많고 우리 역사를 잘 아시는 ‘황학정(스승님께서 평생 활을 쏘셨던 사직동에 있는 활터)’에 계신 어르신들을 비롯해서 그동안 여러 사람들에게서 이미 이와 비슷한 얘기들을 많이 들어왔던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택견에 대한 여러 기억들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분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민속놀이 형태로 이어져 내려 온 택견도 있지만 상당히 강력한 무예적 기법들로만 이루어져 있어한량들이나 무사들이 호신이나 수련의 한 방편으로 사용했던 택견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후자는 아마도 ‘옛법택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밟기'는 '밟아버린다'라는 표현을 잘 쓰는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발길질 중의 하나이다. 온 몸의 체중을 이용하여 위에서 밑으로 밟아차면 상대를 일시에 절명케 할 수 있는 강력한 옛법택견의 기술이 된다.

한국통신 택견동아리를 지도할 때 한 부장님이 당신의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택견기술이라며 활개뿌리기와 팽이돌리기를, 그리고 국제학술진흥원에서 수업할 때 수위아저씨는 역시 할아버지에게 배웠다며 곧은발질을 차보이기도 했다. 하나같이 경기에서는 쓸 수 없는 일격필살의 기술로 막강한 택견의 옛법이었다.

신한승(송덕기스승님의 큰 제자이며 택견의 인간문화재)선생님도 택견이 경기무예임을 알고 있었는데 택견에 남아 있던 손질을 중심으로 한 살상기술에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이런 살벌한 기술들을 사용하면 사상자가 생겨 택견경기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텐데 도대체 이런 기술들은 무엇일까?’ 그러다가 손기술 위주의 ‘수벽치기’라는 것을 알게 되셨고 그것을 연구하다가 그만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시게 되었다. 현재 시중에 있는 수벽치기와 택견의 옛법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필자로서는 정확히 알바가 없다. 다만 택견에는 발길질 중심의 경기무예 임에도 불구하고 경기에서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손질 위주의 상당히 위험한 기술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송덕기스승님께서 결련택견(택견의 시합)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던 강력하고 위험한 ‘옛법’이라는 기술들이 바로 궁중무사들의 기법이 아니었을까?! 또한 스승님의 스승이시며 인왕산 호랑이로 불리셨던 임호선생님은 어느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했을 만큼 강했다고 하니 혹시 임금님의 호위무사가 아니셨을까 하는 상상을 나래를 펴본다.

택견꾼 도기현의 택견이야기는 1, 3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기현 #결련택견협회 #칼럼 #택견이야기 #택견 #송덕기 #신한승 #문화재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
  • 정말옛법택견

    본인은 택견을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어떻게 영상을 통해 남아 놀이문화로 발전된 택견을 보게 되었는데, 발차기 기술도 화려하고 넘어뜨리는 기술또한 대단합니다, 뭐 문제라고 할거야 없지만 현재의 택견은 확실히 분명히 실전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 발차기를 공격적으로 돌리고 넘어뜨리는 기술들 이후에 레슬링을 하고 또 수벽이라 해야 하나 여튼 손 공격이 추가 된다면 아마 옛 고구려나 등등 조상님들은 그리 하셨겠지만, 택견 최고의 무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1-05-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한마디

    죄송합니다. 저는 인간쓰레기입니다. 불쌍히 봐주세요. 왈왈왈~ 저는 개새X 입니다. 돌을 던져주세요 왈왈왈

    2009-09-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그냥

    각희와 수박희를 합쳐 오늘날 택견이라 부른다고 그러던데....옛법택견은 수박희의 일종이 안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9-07-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무식한...

    택견이 고상한 비법이었다는게 아니라 중인 이상이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겼다는 얘기이고 사람들이 흔히 아는 유희적 성격뿐 아니라 무예적인 성격도 강했다는 얘기인데 이걸 다들 못알아듣는 거 같다.

    2009-06-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한마디

    조선이란 나란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야구를 해도 상놈이 던진 공을 양반이 잡지도 않았다 어떻게 상놈이 던진걸 내가 받냐 이거지..싸울때도 종들이 대신하고 돈 주고 산 파이터가 대신 싸웟었다. 조선후기에 무과시험 친 애들 죄다 상놈이나 종들이었다 별기군들? 청랼리근처가 개네들 집합적숙소였다 궁중? 호위무사? 비단옷?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택견이 상놈들 하던놀이가 아니고 중인이상 돈 많은 부잣집애들이 하던거고 뭐 무사출신이나 비단옷입은것들 이 조낸 연습해서 하던 고상한 비법이었단건가? 신라금강역사상이 태권도라다가 사기로 밝혀졌다 어디 택견책 보니까 택견이라데? ㅁㅊㄴㄷ

    2009-06-0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대쾌도를 봐도

    대쾌도를 봐도 택견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단옷을 입고 있지요.
    일반 평민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놀이로서의 택견 그 이상으로, 무술이라는 개념 특히나 발차기같이 많은 공을 드리고 수련해야 하는 기술은 분명 그당시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중인계급 이상에서 주로 하였을 거라는 것이 더 타당하겠지요.

    2009-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

    헐 이미지 마케팅...거기에 묻어가는 기자양반...아래 좌뇌적 댓글은 태견을 한층 우뇌적 사고로 생각하게 만드네 오늘 적어도 저에게 확실이 광고는 되었습니다...

    2009-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

    아~~~~~~~~~~~~~~~~~~~~~궁중 호위.............무사들이여 독살당한 고종과 회 발려진 민비는 우짜라꼬 비전이었단말이었는가 김홍집이 개성상니들에게 몰매맞아죽을때도 비전이었기에 막강함을 끝내 숨기고....................결련에 전승되어 이제야 세상에 더러난다 활짝펴라 살상기술이여!!! ㅈㄴ

    2009-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자나다가

    그래도 사용을 금하였었단말인가 그리하였어쑈단거다 청와대경호처에서 옛법택견을 필수호위경호우너들에게 시켜야 한다는거다 그래서 일본놈이 칼로찌르면 옆에서 가만이 있다가 죽도록두면된단거다 사용금물(비전궁중무술이므로 대통령시해되어도 문책 없다 말 못함)역사가판다할것임으로....

    2009-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지나다

    해석해 드림니다;;;옛법택견은 궁중호위무사(궁중외의 국무총라나 장관급호위무사들은 못했음 하려고 하면 밟아죽엿음 왜냐고?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었으니까 말 그데로 궁중만의 비전기 그래서 고종(독살당함, 영친왕? 일본에 팔려갔다.민비?쪽바리 깡패새끼들에게 화칼로 난도질 당했다 고종손녀는 일본에서 일본놈에게 강제로 시집가 ㅆ을 ...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이혼 당하고 조선궁중이 개박살났으나 막강했던 궁중 호위무사들의 신출귀몰 살상기술은 비전중의 비전이었기에 호위하던 주인을 독살당하게 하고 맞아죽게 하고 여자몸이 닛뽄도에 회발려지게하고

    2009-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구한국군에서

    군 정규과목으로 택견을 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당시 군대는 현대의 군대와 달랐기 때문에 군대를 다니면서도 택견을 계속 하실수 있으셨다는 얘기입니다. 택견꾼님이 잘못 아신 듯 싶군요.

    2009-06-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미친넘

    구한국군에서 택견을 훈련과목에 넣었단 소린 첨 듣는다. 그냥 재미삼이 할 수 있었겠지만. 자꾸 헛소리하다보면 진짜 착가을 일으켜서 돌은 놈이 된다. 조심해야지.

    2009-06-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공부하는남자

    도기현선생님이 쓰신 책의 내용과 같은 내용의 반복이군요.

    2009-06-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아래 뭔소리여...

    송덕기옹이 군에서 택견했다고 인터뷰 하는건 나도 봤는디......그리고 아래 택견꾼님 말 잘 읽어보면 택견을 그냥 무술로서 인식한 거라면 군에서 했다는 것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구만 뭔소리 하는건지..

    2009-06-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ㅎㅎㅎ

    그럼 지금 군대에서 축구는 안하냐? 그렇지만 구에서 축구한다고 하면 훈련과목인 줄 아는거다. 구한국군대에서 택견을 훈련과목에 넣었다면 포병대 군인이던 송덕기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택견이 두마리 토끼 쫓아서 무리하면 다 놓치고 만다. 한마리에 집중하는 게 옳다. 그런게 있다는 정도로 해두기 바란다.

    2009-06-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택견꾼

    송덕기옹도 택견이 서울 장안 일대의 깡패들이 하던 것이라고 말하신 바 있습니다. 놀고 먹고 할일 없는 패들이 하기도 했다는 것은 즉 생업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층들이 한다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군에서 택견을 했다는 것도 타당성이 있으며 아래 ㅎㅎㅎ님은 뭘 모르시나본데 송덕기옹의 인터뷰에서도 송덕기옹이 직접 군에서도 택견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 말씀 들으면 저 말도 맞네요.

    2009-06-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택견꾼

    그리고 제가 지도자 과정을 위해서 택견을 공부해본 바로는 택견은 일반 서민들이 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씨름이야 힘과 적당한 기술로 명절마다 즐기기 좋지만 택견은 발기술과 품밟기라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옷을 잡을 수도 없으니 기술은 더욱 날카로워야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서민들이 즐기던 것이 아니라 웬만큼 사는 집 이상이 할 수 있는 것이 택견이라는 말도 타당성이 있습니다.

    2009-06-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택견꾼

    택견은 재물보에 나와있듯이 무술을 통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싸움 잘하면 택견 잘한다라고 하기도했다고 하고요. 서울 장안일대의 건달들이 싸움에도 쓰던 기술인만큼 그런 기법을 한두수씩 배운 사람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송덕기옹에게 그 옛법을 다 배웠다는 것보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훨씬 보기 좋네요.

    2009-06-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소설을 쓰는 것 같군

    또 한편의 소설이 등장할 듯

    2009-06-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ㅎㅎㅎ

    조금씩 빗나가는 듯. 걱정되네요. 떠도는 불확실한 남의 말을 왜 슬쩍 끼워넣나요. 송선생님이 진짜로 택견하신 분이데 그분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요. 옛법도 전승되고 있구요. 줏어들은 얘기에 본인의 상상력 까지 가미되면 다른 신비주의 무술처럼 될수 있으니 이 정도로 하시지요.

    2009-06-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