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철 칼럼] 태권도장 고유 문화가 지닌 가치


  

합리적 가치가 아닌 본질의 가치를 추구한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태권도장에 오면 해야 하는 규칙들이 있다. 도복을 입고 띠를 매야 하고 도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국기에 경례하고 신발 정리를 하고 사범님께 인사를 해야 한다. 또한, 함께 수련하는 수련생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수련이 시작되면 무릎을 꿇고 앉아 미동 없이 사범님의 하는 말씀을 경청해야 한다.

 

언제부터 합리성이라는 이유와 함께 인권과 시대적 흐름이라는 잣대에 의해, 이와 같은 형태가 조금씩 붕괴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합리성을 신봉하기 때문에 더운 여름날 긴 도복을 입는 게 불편했고 띠를 매기 버거운 학령기 이전 수련생들에게 띠를 매게 하는 행위가 소모적인 행위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잠깐이지만 유치부는 띠 대신 명찰을 달아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출산율 저조로 성인 태권도 확산이 필요해 보였고, 다른 성인 운동에서처럼 좀 더 자유로운 복장이 매력적으로 느낀 적도 있었다.

 

‘복장의 변화가 정신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라는 맥락으로 한때 비치 태권도 복장이 쟁점화된 적이 있었다. ‘기능적’, ‘합리성’ 그리고 ‘변화’라는 이름으로 태권도 언론의 기자와 존경했던 사범님들이 복장의 자유로움에 손을 들어주었고, 필자 역시 크게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협회 교육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면 협회장 혹은 강사는 하나같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논하면서 변화를 일선 지도자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 시작에 온라인 태권도 수업이 있었고 사설 기관이 아닌 협회에서 이를 장려하였고, 역설적이게도 태권도 종주국인 대한민국이 아닌 ‘자본 성장’에 중심에 있는 미국의 형태를 비교하였다. 그리고 변화를 읽지 못하면 태권도장은 망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좋아하는 선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배웅하는데 “요즘은 아이들은 도복을 입지 않아. 이상하게 띠는 꼭 차더라. 근데 난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도복을 입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어? 태권도장을 오기 전에 자신이 태권도장을 간다고 인식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준비하는 자세가 아니겠어?”

 

진부한 주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배의 말이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도복을 입는 행위를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생각한다면 도복보다는 그냥 입고 있던 옷이 더 편할 것이고 학부모 역시 그럴 것이다. 지도자 입장에서 학부모의 볼멘소리 앞에 대항할 필요가 없기에 소란스러운 문제의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도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지난날 우리가 수련했을 당시 한여름에도 선풍기 한 대와 긴 팔 도복을 입어야만 했고, 기합을 넣지 않으면 혼나야 했고, 사범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움직이면 이 역시 혼나야 했다. 그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불편했다. 그 생각이 세월을 입어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태권도장 문화를 만든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잊은 게 있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인간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개인의 기호와 선택을 중요시한다. 그런 까닭으로 복장을 자유롭게 입을 선택권을 줬고,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기합을 넣지 않을 선택권을 줬고,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개체가 태권도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인간 스스로가 기대했고 예상했던 형태가 아닌 태권도장의 문화를 견뎌냄으로 인하여 변화하는 인간상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었던가?

 

어린시절 한여름에도 긴팔 도복을 입고, 자신의 성향과 상관없이 기합을 넣어야 했고, 사범님이 말씀하시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던 시간을 통해 인간의 추구했던 그 이상의 것을 비로써 태권도를 통해서 얻는 게 아닐까? 우리가 그런 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과연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변화는 중요하지만, 변화를 통해 모든 것이 나아지진 않는다. 인간은 얄팍한 상술보다 좀 더 거룩한 형태로 성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태권도를 통해 가능해지려면,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태권도장 문화가 있었던 지난날의 형태가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는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을 형태가, 그것이 자본시장에 있어 얼마나 큰 가치인지를 소비자에게 설명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내심, 절제력, 참을성, 준비성 등의 요소가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하여국가 예산이 사용되고 부모들 역시 그런 아이를 만들기 위해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는가?

 

이것은 더 나은 생각도 아니고, 그저 태권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인간을 우수하게 만드는 가치일 것이다. 한 사람이 무엇을 개발해서도 아니고 그저 태권도의 우수성이다. 소비자는 그 우수성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메커니즘을 선택하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아니면 그런 태권도장 문화가 지닌 가치가 한 인간을 얼마나 크게 만드는지 지도자 스스로 모르고 있기에당장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만을 쫓았던 건지 모른다. 그 소비자는 이미 그런 가치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무카스미디어 = 정준철 관장 ㅣbambe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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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철
긍휼태권도장 관장

브랜드발전소'등불'대표
대한태권도협회 강사
TMP격파팀 소속
<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칼럼 #정준철 #도복 #복장 #태권도장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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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사범

    감사합니다♡♡
    우리가 관원수 걱정에 잊을 수 있는
    태권도 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주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태권도가 태권도 다움을 다른 목적 때문에 잃지 않도록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화이팅!!

    2022-09-23 20:56:4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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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인

    많은 변화의 흐름에 태권도의 가치성을 대입하기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태권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인간을 우수하게 만드는 가치일 것이다. 한 사람이 무엇을 개발해서도 아니고 그저 태권도의 우수성이다. 소비자는 그 우수성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메커니즘을 선택하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이 대목이 지금 현시대의 태권도 지도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 같습니다. 휴머니즘이 사라져가고 있는 4차 산업 혁명시대에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태권도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모든 태권도 지도자들의 어깨가 무거워 졌음을 실감합니다.

    2022-09-23 18:46: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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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사범

    우리가 관원수 걱정에 잊을 수 있는
    태권도 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주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2022-08-28 22:28:51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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