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우리의 격투기 스승은 ‘비디오테이프’

  

스파링은 글러브도 없어, 레슬링타이즈와 마우스피스면 'OK'


왼쪽사진:이동기(왼쪽)와 한태윤, 오른쪽사진:2001년 HFC도장에서 이동기


종합격투기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다. 이전까지는 UFC와 판크라스를 사진으로 접하는 정도였다. 종합격투기 해설위원으로 잘 알려진 이동기(판크라스 코리아 대표)씨가 격투기를 처음 접한 것은 사진이었다. 1994년 이동기씨는 선수들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서 있는 사진 한장을 보게 된다. 10라운드정도 지난 프로복싱 경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 하단에는 '종합격투기 1라운드 2분 30초' 글이 적혀있었다. "이것이 1라운드의 모습" 이동기씨는 소름이 돋았다. 이후 어렵게 구한 사진 속 주인공들의 경기영상은 더욱 놀라왔다. 정확한 태클에 의한 테이크 다운과 깔끔한 서브미션 기술까지 이어졌다. 이전까지 그라운드식 싸움은 '진흙탕'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동기씨는 종합격투기 연구에 돌입했다. 당시 한국에는 종합격투기를 가르치는 도장이 없었다. 경기비디오는 훌륭한 종합격투기 스승이었다.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보며 기술을 연구했다. 또 레슬링, 유도, 가라데 등의 도장도 찾아가 기초를 배웠다. 이러한 노력이 덕분인지 격투기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경기도 없이 고된 훈련만 반복되는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곧 다른 운동을 배우겠다며 포기했다.

그래도 종합격투기를 배우겠다고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실전을 방불케하는 스파링에 매료된 사람들이었다. 안전장비도 미비했다.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오픈핑거글러브도 없이 맨주먹으로 스파링을 벌였다. 레슬링 타이즈와 마우스피스가 전부였다. 공식 경기가 없던 이들은 다른 종목의 선수와 발리투토(Vale tudo : 일정한 규칙없이 벌이는 브라질격투기)를 벌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종합격투기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까닭에 상대를 제압하기가 쉬웠다.

2001년, 이동기씨는 드디어 조그마한 도장을 마련하고 최초의 MMA 클럽 HFC(Hybrid Fighting Club)을 창설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종합격투기를 배우길 원해서였다. 하지만 가라데, 레슬링, 유도 등의 기본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한 남자가 찾아와 클럽의 모든 관원들을 꺾어버렸다. 이동기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동기씨는 그의 관절기에 몇 번의 탭아웃을 쳤다. 그가 바로 한국최초의 종합격투기 해설위원 한태윤씨였다. 일본에서 체계적으로 실전 관절기를 배운 한태윤씨는 자연스럽게 이동기씨 클럽에서 종합격투기를 지도하게 된다. 덕분에 클럽도 체계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멤버들은 공식적인 경기 한번 뛰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종합격투기가 생소하던 시기였다.

이동기씨는 "제대로 된 경기 한번 못하고 지금은 모두 아저씨가 됐지만, 이들이 지금의 한국 종합격투기의 선구자였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태윤씨가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요. “우리는 늙어서도 난로가에 앉아 운동하는 애들에게 잔소리를 할 것 같아요.” 정말 그의 말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현재 두 해설위원은 후배 양성에 앞장서며 다양한 국내격투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제공 : 이동기 판크라스 코리아 대표)

[김성량 수습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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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두주자

    이종격투기의 선두주자입니다. 대단하십니다

    2009-0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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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호

    말로만 듣던, 한태윤씨하고 이동기씨가 그런 백그라운드가 있었군요. 둘다 종합무술인 출신이군요. 음. 어쩐치 풍채들이 좀 다르다 했더만...

    2009-01-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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