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철의 태권도 바로가기> 당신의 마지막은 커튼콜이 되길


  

태권도를 지킨 당신에게 보내는 경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카뮈의 작품 『이방인』은 강렬한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우리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모든 자영업이 그러하겠지만, 태권도장의 시작 또한 가장 강렬한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강렬함 때문에 박수를 받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같은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태권도장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으로 누군가는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처자식 밥도 먹이고, 교육도 시킨다.

 

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 치욕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무도인이라는 굴레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도덕적 관념은 타인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신을 검열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인간의 특성상 이는 쉽지 않다.

 

도장 경영의 시작은 빠르면 20대 후반이다. 그렇게 30대가 되고, 오래 하면 70대까지 도장을 운영한다. 시대에 따라 누군가는 자신의 실력과 상관없이 개관만 해도 잘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사람 중 일부는 “태권도장이냐, 체육관이냐?”, 혹은 “도복을 입었느냐?”와 같은 본질에서 벗어난 논쟁을 이어가기도 한다. 반면, 누군가는 실력이 뛰어나고 큰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마치 천재가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듯, 도장의 경영도 개인의 능력보다는 운이 작용하는 사례가 많다.

 

‘잘한다’라는 명제 앞에서 태권도장의 진입장벽은 그리 높지 않다. 현재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는 태권도 바깥에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장 경영의 핵심 중 하나는 젊음의 열정이다. 새벽에 일어나 홍보를 하고, 끊임없이 주말 행사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곧 무기가 된다. 줄넘기를 원하면 줄넘기를 가르치고, 다른 무언가를 원하면 그 부분을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무기인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목격한 많은 관장들은 10년 혹은 그 이상을 보내면서 열정이 번아웃으로 변해갔다. 운이 좋아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주변이 발전한다면 열정이 바닥나더라도 명맥은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불가항력적으로 폐업하는 사례가 많았다. 요즘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폐업한다. 각각의 배가 외롭게 침몰하고 있다. 

 

한때는 경쟁자로서 얄밉고 싫었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는 마당에서 그런 감정을 운운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정의와 신념은 바닥에 닿으면 나뒹굴고, 가치는 허기 앞에서 잠식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도인으로서 마지노선은 분명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지노선이 따뜻한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경쟁 도장이었던 관장님이 경영이 어려워 폐업하거나, 나이 때문에 은퇴하거나, 어떤 사정으로 그만둔다면, 그분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관장님과 함께 태권도 업에 종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많은 아이가 관장님 덕분에 잘 성장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수고하셨고, 태권도인으로서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관장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경쟁하느라 서로를 미워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은 박수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 팔달구에서 43년간 상무태권도장을 운영한 이재열 관장과 수련생.

필자가 운영하는 곳에는 40년 넘게 도장을 운영하신 관장님이 계신다. 오래 보아왔지만, 함께 밥 한 끼 하지 못했다. 한때는 학교 홍보도 나오셨지만, 이제는 차량 운영도 하지 않으신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이재열 관장님은 1982년부터 지금까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서 43년간 상무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이 지성에만 치우쳐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인성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올바른 인간상을 태권도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수원시 태권도협회 창립 이사로 오랫동안 협회를 위해 봉사했으며, 수원교도소 경기교도대 사범, 법무연수원 호신술 강사, 고단자 심사 위원 등의 활동을 하면서 태권도 9단까지 수련했다. 한 분야에서 끝을 본 사람의 모습이다.

 

또한, 후배들에게 “80세까지 도복을 입겠다는 각오로 도장을 운영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그런 시선을 가진다면, 현재의 이익이 아닌 더 넓은 관점에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태권도 본연의 가치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을 피력했다.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명확한 사실은 우리가 전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오랜 시간 한 곳을 지켜온 사람들 앞에서 불손했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재열 관장(상무태권도)

이재열 관장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언젠가는 엔딩을 준비해야 할 당신의 마지막 모습이 커튼콜이 되길 바란다. 

 

한때였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태권도를 사랑했다. 어떤 반론도 없이, 그저 좋아서 흰 도복을 입고 땀을 흘렸다. 그래서 우리는 동료이자 가족일지도 모른다. 당신뿐만 아니라, 모든 태권도인이 박수를 받기를 바란다. 

 

국기 태권도가 되었고, 세계를 흥분시켰던 이유는 개인이 아니라 태권도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함께 뭉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그리고 태권도는 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 앞에 서 있는 한 영혼을, 태권도라는 매개체를 통해 최선을 다해 지도했다. 당신과 우리는, 그렇게 함께였다.

 

[글. 정준철 관장 = 수원 긍휼태권도장 ㅣ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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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철
긍휼태권도장 관장

브랜드발전소'등불'대표
<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칼럼 #은퇴 #사범 #지도자 #80세 #도복 #수원 #이재열 #관장 #긍휼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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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메달이사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하시니 집중하여 읽게 되네요.
    함께 마음을 나누는, 공감가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25-03-19 22:52:24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무도인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2025-03-19 14:02:39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남관장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2025-03-19 12:12:4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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