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조선 무사들
발행일자 : 2003-06-05 00:00:00
이진욱 기자/오마이뉴스
5월 31일 수원 화성 연무대, 현재 활터로 되어있는 이곳에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첨단 전자전의 시대에 칼부림(?)을 하는 무사들이. 그것도 천여 명씩이나 무사들의 칼끝이 햇살을 등지고 바람을 가를 때마다 신기한 듯 눈길을 보내는 시민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타져 나온다.
올해로 5회 째를 맞는 정조시대 전통무예전. 정조대왕은 화성행차시 이곳 연무대에서 군사 사열을 했는데, 이 행사가 오늘날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행사가 열린 연무대는 정조시대 대규모 군사훈련장이며, 정조의 화성능행차시 대규모 군사훈련, 사열을 하던 곳이다.
형식적으로는 정조의 군대 사열 행사의 재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각종 전통무예의 시범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 사단법인 24반무예협회, 한민족 전통마상무예협회 등 전통무예단체들이 모두 참가하고, 국방부 전통의장대·취타대 등도 함께 하여 전통무예의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이다.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대한택견협회, 정조시대 정통무예전 집행위원회가 주관하였다. 행사 성격상으로는 관광상품성이 짙다. 무예 명인전이나 고수전 같은 의미를 찾기에는 무리이다.
식전행사로 태장고등학교 취타대 공연, 애기택견 공연, 어린이 24반무예 공연, 검무 공연이 있었고, 본행사에서는 국방부 전통의장대·취타대의 공연과 18반무예 공연(시범), 택견 공연(시범), 마상격구·마상무예 공연(시범)이 있었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런 장면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24반 무예(二十四班 武藝)란 200년을 걸쳐 정조때 집대성된 조선무예 ▲무예도보통지에 나온 그림 조선시대 정조의 명으로 1790년 장용영(당시 수원 화성 연무대에 주둔하던 부대)에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책을 간행하는데, 여기에 소개된 무예를 24반 무예라 부른다. 圖譜는 어떠한 사물을 그림과 해설을 통하여 설명하므로써 계통을 세워 분류하는 것을 뜻한다. 通志란 모든 것을 총망라한 종합서임을 뜻하고 있기 때문에 책이름만 보아도 무예, 기예를 그림을 통하여 설명한 종합서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무예도보통지는 소개된 모든 무예의 동작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그림과 더불어 설명되어 있다.
24반 무예의 뿌리는 선조때까지 올라간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무기와 기술이 정예화된 왜군의 침략을 받아서 참담한 경험을 하게 되고, 위협감을 느낀 중국은 병력을 파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당시 인재를 총동원하여 조선, 중국, 일본 3국 무예의 정수를 뽑아 독특한 무예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왜란, 호란을 거치면서 동양 3국의 모든 무예가 선보이고 이중 가장 우수한 무예들이 선조때부터 정조에 이르는 200여년간 집대성되어 이루어진 것이 24반 무예이다.
24반 무예는 지상무예 18기와 마상무예 6기로 나뉜다. 우선 검을 기초로 하는 본국검, 제독검, 쌍수도, 예도, 왜검, 쌍검으로 검법이 6가지 이며, 검 이외에 장창, 죽장창, 기창, 당파, 낭선, 등패의 창종류와, 삼국지에서의 관우가 썼던 월도, 협도, 그밖에 편곤, 공방, 권법 그리고 마상술 6가지 등 총 24가지 기예로 이루어져 있다.
24반 무예는 일제시대와 분단의 질곡 거치며 거의 잊혀질 위기에 있다가, 70년대 통혁당과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임동규에 의해 옥중에서 복원된다. 감옥 안에서 무예보도통지를 연구하고 빗자루를 휘두르며 빗자루 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그는 1988년 석방될 때 진짜 도사가 되어 있었다.
24반 무예가 100년의 침묵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은 이렇게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고구려시대 서민들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의 이름을 딴 경당이라는 도장을 중심으로 각 지역 지부, 대학 동아리 등에서 활발한 수련과 보급활동을 하고 있다.
흔히 칼을 쓰는 무술이라 하면 검도를 떠올리기 쉬우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검도와는 달리, 24반무예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실전을 통해 축적되고 정조대에 이르러 집대성된, 실용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우리나라 전통의 무예이다.
여기에는 지상에서 하는 본국검, 예도, 제독검 등의 무예와 말을 타고 하는 마상무예로 나뉜다. 한동안 잊혀졌다가 70년대 말부터 차츰 복원되어 오늘날엔 전국각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택견은 이미 널리 알려진 맨손무예이며, 중요무형문화재 76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무예이지만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몸놀림, 격렬한 투기임에도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경기방법 등이 독특하다. 지금은 널리 보급되어 국민생활체육으로도 보급되고 해외에도 택견단체들이 설립되었다.
행사는 약 3시간 가량 진행되었는데,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여 보는 이들을 지루하게 한 점은 시정해야 할 것이다. 충분한 사전연습이 부족한 듯 싶었다. 하지만 행사에 참가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가면서 땀을 흘려 행사를 치렀다. 짚단 베기 시연을 한 사범들은 며칠동안 반복적인 동작을 연습했을 정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상무예를 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롭다. 말을 타고 적을 베거나 쓰러뜨리는 무예와, 활쏘기 시범 등은 사극에서 보았을 테지만, 마상격구라는 경기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다. 격구는 말을 타고 장시라는 채를 이용해 공을 쳐서 상대방의 문에 넣는 경기이다. 예부터 무관이나 귀족 집안에서 크게 성행하였고, 부예도보통지에도 격구는 무예가 아니나 무예수련에 필요하므로 싣는다는 단서가 나와있다.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칼과 창, 맨손을 휘두르는 전통무예는 아직 그 혼을 잃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 각 지역의 수련장, 전수관이나 대학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수련하는 이들이 더욱 늘고 있고, 해외에도 보급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관심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우리 전통무예에 대한 연구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조상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고리로서의 전통문화, 전통무예 역시 오늘날 잃어버려서 안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임병양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24반 무예의 집대성이라는 보석으로 가꾼 선조들의 지혜는 정말 대단하다. 이제는, 우리의 전통무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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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맞자나~!!
2006-04-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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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며 무술판이 어떻게 변하는지 까막눈인 넘이구만
입 다물고 짜져라 X만한 놈2005-08-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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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긴칼썼다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 생각하지마라.나 경당다닌지 딱 1년 8개월됬지만 긴칼이라곤 월도,협도빼곤 본적도 없다.너희 생각이 옳다고 다른주장을 묵살하는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본다.
2005-08-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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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바보네....무예도보통지 원서에도 쌍수도 부분에 "지금은 예도로서 대신해 수련하고 있다"라고해서 이미 그당시에도 장척도수준의 긴칼은 쓰지 않고있다 헌데 쌍수도라는 이름에 집착해서 경당은 여전히 무식하게 긴 칼을 고집한다 복원인지... 왜곡인지....
2005-05-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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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지적에도 논리성이 좀 떨어지는 듯. 경당 쪽에서 산출한 무예도보통지의 검 길이는 척도개념의 오류로 인한 산물입니다. 조선시대 척도법은 시대에 따라서 길이가 달랐었기 때문에...그에 맞게 적용해서 분석을 해야 하지요. 실제 남아있는 조선시대 유물들을 살펴보아도..경당 쪽에서 주장하는 참마도 길이의 검은 이순신장군의 장검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쓰였던 검들은 전부 주척으로 환산해야 함.
2004-12-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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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행도... ㅡ_ㅡ 내용이 전부 옳지는 않지요 일본의 사츠마대도 나 중국의 묘도 등은 길이가 보통 130cm에 가까운 검들입니다. 중단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요 정안만이 중단세가 아닌걸로 압니다. 타인의 의견을 비판하기에는 조금 논리성이 떨어지지요.
2004-10-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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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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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의 "칼의 역사와 무예-독행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경당>
정치범이었던 임동규 선생이 감옥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보고 복원한 무술. 선조들의 호
국의 의지가 담긴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하여 범국민적인 사회체육으로 보급한다는 계획
인것 같다. 무술은 소수의 독점이 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 체육으로 양적으로 확산 보급
될 때 그 질적 향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경당은 창작무술의 초기에 해당하며, 초기인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고 있다. 봉술
등에서 보면 신법과 발자세 등이 아직 개념이 없으며, 검술도 개념의 혼동을 하고 있다.
검은 단지 힘차게 휘두른다고 검술이 되는 것이 아니며, 장작패기 검술은 그 한계가 있
는 것이다. 경당의 쌍수도는 인체공학적으로 불가능하다. 너무나 긴 검을 사용함으로써,
손목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횡천시에 검이 땅에 닿게 되므로 검의 각도를 눕혀야 하는 오
류를 범하게 된다. 또한 중단자세에서 검끝이 지나치게 높아지므로, 실전에서는 이것이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봉술도 그러하다. 봉의 찌르기 시에는 중국에서 "진
각"이라고 하는 보법이 요구되는데, 경당은 이런 중요한 부분을 거의다 간과하고 있다.
또한 임동규씨는 그의 저서에서 무술은 전투활동이라고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무예도
보통지"의 무술은 문화적 현상으로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무술이란 문화적 현
상이 아니며 여기에는 민족주의도, 국적도, 전통이라는 개념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2003-06-0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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