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KAS 人사이드] 13년을 가르치고, 다시 배우다… 김종호의 태권도 설계도
발행일자 : 2024-12-23 16:40:40
[한혜진 / press@mookas.com]


김종호 | 13년 간 현장을 지킨 김종호, 성과와 철학 모두 갖춘 태권도 교육의 설계자
<무카스 人사이드>는 태권도를 비롯한 무예와 스포츠 현장의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선수, 지도자, 수련생, 동호인, 연구자 등 태권도와 무예, 스포츠라는 공통된 문화 속 언어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도전, 그리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빛나는 성과보다, 그 뒤에 숨은 진심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땀, 선택, 도전을 통해 우리는 이 분야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중학교 제자를 세계무대로… 교육의 본질을 지키는 태권도 지도자 김종호의 꿈
“가르치는 사람에서 배우는 사람으로”
한 사람의 길이 있다.
조급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고, 조용하지만 강하게 한 걸음씩 걸어온 길.
오늘 만난 김종호 사범은 그런 길을 걸어왔다. 엘리트 선수에서 지도자로, 다시 연구자로. 13년 넘게 한결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스스로도 성장해온 사람이다.
김종호는 중학교 태권도부 현장에서 미래 유망주를 발굴해 육성한 지도자다. 원석을 찾아 보석으로 만드는 과정에 중요한 관문인 것. 그가 각별히 키운 제자 중에는 장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로 성장한 선수도 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중등부 무대에서 그는 탁월한 선수 관리와 기술 코칭 능력으로 높이 인정받아왔다.
“더 늦기 전에, 내 인생의 다음 장을 열고 싶었습니다”
40대. 사회적으로는 책임감이 커지고, 현실은 타협을 요구하는 나이. 하지만 김종호 사범은 ‘도전’을 택했다. 보다 전문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에 나섰다. 체육학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준비 중이다.
서울 동성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산대학교 특기생으로 엘리트 선수생활을 이어간 그는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다승제 경기규칙 변화에 따른 선수들의 심리 변화’를 주제로 예비 논문 심사를 마친 상태다.
그의 지도 여정은 단순한 수련이 아니다.
선수의 성장 단계에 맞춘 훈련 설계, 기술 이전을 넘은 전략적 사고, 심리 안정 관리까지 포괄하는 체계적 훈련프로그램으로 중등부 태권도 지도에 깊이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국 전관왕에서 세계무대까지… 그 시작은 중학교였다”
박사학위 도전 전 그의 지도자 여정은 대학 졸업 후 3년간 사범생활로 시작됐다. 그러던 중 모교 은사에게 연락이 왔다. “중학교 태권도부 코치 자리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2013년, 김종호는 다시 태권도 명문 동성중학교로 돌아왔다. 설렘보단 책임감이 컸다. 자신이 태권도를 시작했던 그곳에서, 이제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가 처음 마주한 제자들은 기초 체력과 기본기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태도가 흔들려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술보다 태도, 결과보다 과정을 가르치기로 했다.
기본 동작을 매일같이 반복하여 훈련을 시켰고,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과 마음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날은 실수한 제자와 단둘이 대화를, 또 어떤 날은 전원이 훈련장에 누워 하늘을 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첫해, 동계훈련을 함께 떠난 이후, 서울시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거뒀다.
기술이 압도적인 팀도, 전략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믿는 힘, 똘똘 뭉친 에너지가 경기장에서 터져나왔다.
이듬해 2015년, 첫 전국대회 금메달이 나왔다. “그 1등은 한 명의 메달이 아니었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팀 전체가 체험한 사건이었죠.”
“전국 전관왕에서 세계무대까지… 그 시작은 중학교였다”

김종호 사범이 지도한 제자 중에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2회 연속 국가대표 1진에 발탁된 강재권(삼성에스원) 선수가 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입학 당시 체력과 멘탈 면에서 부족했지만, 기술적 완성도 향상보다 ‘경기 집중력 유지 훈련’, ‘상대 전략 해석 시뮬레이션’, ‘하루 단위 경기 분석 회고 프로그램(자기 인지 → 오류 분석 → 피드백 계획 설정)’을 통해 선수의 경기 운영능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그러한 맞춤형 훈련 덕분에,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전국대회를 거의 전관왕으로 석권했고, 이후 고교와 대학을 거쳐 삼성에스원 태권도팀에 입단, 한국을 대표하는 실업팀의 주전이 됐다.
“모든 훈련은 이론이 아닌, 경기에 맞닿아 있어야 합니다.
기술은 누구나 가르칠 수 있지만, 선수를 '경기장 위에서 성장하게 만드는 일'은 별개의 역량입니다.”
김종호 사범은 경기 기술을 넘어서 가르친다. 그는 전문 선수용 ‘시뮬레이션 베이스드 훈련’을 중학교 훈련에 접목한, 보기 드문 지도자이다.
구체적으로는 ‘경기 상황을 미리 프로그래밍해 놓은 시뮬레이션 반복 학습’과 ‘영상 기반 자기 피드백 시스템’, 멘탈 코칭 체크리스트 기반 주간 훈련 평가’를 연구해 접목했다.
이런 시스템이 중등부 선수에게 전략적 태권도 사고력을 내재화시킴으로써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의 경기력을 차별적으로 향상시킨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태권도는 반응이 아니라 인지의 경기입니다. 반 박자 빠른 예측이 곧 경기력을 결정합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적은 결과, 지도는 설계다”
스스로를 성실한 사람이라 말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실적으로 증명해낸 지도자다. 그러기 위해 그는 훈련과 대회에 이르는 전반에 걸쳐 설계를 통해 선수들을 점진적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맡았던 팀은 10년 동안 꾸준히 서울시 및 전국 단위 대회에서 다수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그가 코치로 부임한 이후 선수들의 경기력을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향상시킴으로써 전국대회 금메달 5명, 중등부 서울시 대표 다수 선발, 그리고 고등부 전국체전 및 대통령기 출전자까지 지속적으로 배출해왔다.
단순히 기술적 반복이 아닌, 선수 개별 트래킹 기반 훈련 루틴과 기량별 스케줄링 훈련 시스템을 도입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코칭 방식은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김종호는 단지 오랜 지도 경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선수 발굴, 기술 전수, 심리관리, 교육철학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지도력은 오래됐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설계가 있어야 하고, 설계에는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그는 최근 한국대학태권도연맹 이사로도 선임됐다.
“현장에서 지도만 했더라면, 지금 같은 확신은 없었을 거예요. 학문과 현장을 모두 겪어보며, 지도자로서 나아갈 방향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인생에 연평도 같은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김종호는 해병대 자원 입대 후 연평도에서 복무했다. 모두가 꺼리는 외딴섬 배정. 그는 오히려 행운이라고 말했다.
“인생에서 언제 또 그런 섬에 가보겠어요. 그런 곳에서 나라를 지킨 경험은 제게 큰 자부심이자 정신적 뿌리가 되었어요.”
그는 강인한 체력보다 강인한 정신력이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정신력을 그곳, 연평도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김종호는 말한다.
“저는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연구실에서도, 훈련장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요.”
네 아이를 둔 가장. 연구자로서, 지도자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 선배로서.
그의 삶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태권도는 제게 모든 걸 준 무대였어요. 이제 그 무대를, 더 넓은 세상에서 이어가려 합니다. 저의 2막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종호는 그저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태권도로 삶을 바꾸는 사람이다. 그의 2막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무카스>는 그의 2막 도전을 응원한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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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