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카스 발언대> 무균실이 되어가는 교육 현장, 아이들의 '마음 면역력'은 누가 지키는가?
발행일자 : 2026-05-14 10:18:37
수정일자 : 2026-05-14 10:21:00
[임미화 관장 | 나라차태권도장 / press@mookas.com]


최근 교육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현장 체험학습' 논란이다.
안전사고에 대한 과도한 책임과 악성 민원에 대한 우려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는 아이들의 소중한 외부 활동을 축소하거나 아예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어른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과연 '보호'인지, 아니면 성장의 기회마저 앗아가는 '과잉 보호'인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겨루기, 왜 도장에서 사라지고 있는가?
이러한 흐름은 비단 학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권도장에서도 언제부턴가 수련의 꽃이라 불리는 '겨루기'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행여나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학부모의 우려와 타격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이 맞물려 자연스럽게 몸이 부딪히는 수련을 기피하게 된 것이다.
겨루기가 사라지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장비 착용의 번거로움, 학부모들에게 장비 구입을 설득하는 어려움, 조금이라도 다쳤을 때 쏟아지는 과도한 민원,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의 두려움까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짚어야 한다. 국기원 승품심사의 겨루기 평가는 공격력·방어력·기술의 다양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심사 모습을 보면 이 기준들이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공격도 방어도 아닌 어색한 몸짓이 겨루기로 통과되는 현실 속에서, 관장들도 학부모들도 굳이 겨루기를 고집할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두려움을 피하면 뇌도 약해진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는 자신의 저서 『불안 세대』에서 현대 아이들이 신체적 도전이나 또래 간의 충돌 같은 '건강한 위험'으로부터는 철저히 격리되는 반면, 소셜 미디어 같은 실제적인 정신 건강의 위협에는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티끌 하나 묻지 않는 '무균실' 같은 환경이 당장의 찰과상은 막아줄지언정,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마음의 면역력'은 길러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태권도장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해 온 입장에서, 이 같은 '신체적 부딪힘의 실종'은 매우 우려스럽다. 복잡한 대인 운동 상황, 특히 겨루기와 같은 수련은 단순한 신체 단련을 넘어 아이의 뇌를 가장 고차원적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찰나의 순간에 전략을 수정하는 겨루기 과정은 계획과 판단, 자기 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실행기능, Executive Function)의 발달을 촉진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나아가 타격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신체를 통제하고 감정을 조절해 내는 경험은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강력하게 촉진한다. 이는 스마트폰 시청처럼 일방향적이고 수동적인 자극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오직 땀 흘리며 몸을 부딪히는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성장이다.
즉 겨루기 수련 중에는 필연적으로 다리에 작은 멍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 멍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다. 상대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마주하고 버텨낸 훈련의 흔적이자,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몸소 깨우친 훈장이다.
겨루기뿐만이 아니다. 태권도 수련과정 중 하나인 '격파' 또한 단단한 격파물 앞에서 '내가 해낼 수 있을까?'란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온몸의 힘을 한 점에 집중해 송판을 격파해 내는 순간, 아이들은 눈앞의 장애물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의 두려움까지 산산조각 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겨루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하는 힘을 길러준다. 격파 후 주먹과 발끝에 남는 찌릿한 얼얼함 역시, 겨루기의 멍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의 백신이다.
격파, 국기원 유품자 심사에 돌아와야 한다
격파를 통한 동기부여와 자기효능감의 향상은 수련 지도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 과정이다. 실제로 국내외 태권도 도장 다수가 격파를 수련 시간 중에 실시하며, 승급·승품(단) 심사 필수과목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기원 유품자 심사에서 격파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이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송판을 격파하는 그 순간이 가져다주는 자기확신과 성취의 경험이, 정작 공식 심사에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상의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격파의 교육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체계적 기준을 마련해 격파를 유품자 심사에 복원하는 것, 그것이 태권도 무예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겨루기의 상대보다, 단단한 송판보다 훨씬 두렵고 거대한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다.
학교 시험에서 겪는 좌절, 친구 관계에서 오는 상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 등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에 생기는 멍은 피할 길이 없다.
어릴 적 통제된 안전망 속에서 신체적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해 본 아이는, 훗날 마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리에 생긴 멍이 훗날 마음에 생길 멍을 막아주는 강력한 백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게 설계된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허락하자는 것이다.
아이의 무릎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을 바란다면, 아이는 결국 도전을 멈출 수밖에 없다. 작은 상처를 피하는 법 대신, 두려움을 마주하고 딛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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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미화 관장 - 나라차태권도 ㅣ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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