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세상과 단절된 난민 아동에게 꿈과 희망이 된 태권도

  

세상과 단절된 난민캠프에서 태권도로 올림픽 출전 야히야 알 고타니 “나는 태권도를 통해 세상과 만났다”

 

 

시리아 난민 보호구역 아즈락캠프에서 태권도를 수련생들과 필자.

<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지난주 매우 특별한 곳에 취재를 다녀왔다. 그 여운은 아직도 채 가시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태권도 전문기자로 전 세계 65개국 이상 다양한 현장 취재 경험이 있으나 이번 출장은 평생 잊지 못할 현장임이 분명하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요르단 정부 지원과 협조로 2011 내전 이후 피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난민 보호구역인 아즈락캠프와 자타리캠프 두 곳이다.

 

이곳은 철저하게 세상과 단절된 곳이다. 사전 허가 없이는 외부 방문객이 캠프에 출입이 불가하다. 캠프 내에 사는 난민은 더더욱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약 90km 북동부 시리아 접경지대에 위치한 아즈락캠프. 시리아난민 4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WT)과 태권도박애재단(THF) 주도로 난민 아동,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한 태권도 아카데미가 9년째를 맞아 캠프 내 꿈과 희망의 발전소로 거듭났다.

 

태권도가 최초로 시작한 스포츠를 통한 인도주의 실천에 수년전부터 국제 스포츠계가 관심을 가지면서 야구와 농구, 배드민턴 등 타 국제연맹도 참여하고 있다. 태권도 난민 페스티벌이 작년부터 ‘호프앤드림스 스포츠 페스티벌’로 확장돼 난민 멀티 스포츠 게임으로 확대됐다.

 

난민캠프 내에서 막이 오른 개막식을 위해 오래전부터 보도자료와 영상으로만 보던 난민캠프에 어렵게 방문했다. 난민캠프 입구에서는 UNHCR과 요르단 경찰에 안내로 진입했다.

 

사막 한 가운데 나무 그늘 없는 곳, 생각보다 매우 넓은 부지에 10평 미만의 컨테이너가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캠프 바깥으로는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는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었다.

 

검문대에서 아카데미까지 가는 5분여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길거리에 보이던 몇 명의 어른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학교를 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돌멩이를 던지며 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약 없이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생활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혹여나 눈물이 날까 봐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즈락캠프

모래 먼지가 앞을 가린 캠프 입구를 한참 지나자 캠프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낯선 차량들이 들어서자 호기심 어른 표정으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았다. 5분여 만에 아즈락캠프 태권도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도복을 차려입은 태권도 수련생들과 베이스볼5, 배드민턴, 농구 등에 참여하는 아동, 청소년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환대했다.

 

조금 전까지 무거웠던 마음은 그들의 해맑은 미소에 금방 잊혔다. 소싯적 학교 운동회처럼 신나는 분위기로 난민 아동, 청소년들의 태권도, 야구, 농구, 배드민턴이 함께하는 ‘호프앤드림스 페스티벌’이 막이 올랐다.

 

캠프 내에서도 이 스포츠 아카데미 공간에도 또 하나의 철조망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희망자에 한해 모두 무상으로 교육하는데도 참여율이 10%가 채 되지 않은 듯해 보였다. 태권도 수련생 80%는 이곳 난민촌에서 태어난 12세 미만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1품 이상 승품한 수련생들만 초청됐다. 태권도와 스포츠 참여를 하지 않은 난민촌 아이들은 외부인과 함께하는 행사장 바깥 철조망에서 관심 있게 지켜봤다.

 

우리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악수하자고 하고, 사진 촬영 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처음에는 촬영을 머뭇거렸는데, 그들이 너무도 원해 여러 장 사진촬영을 하게 됐다.

 

우리 방문단도 여타 행사와 달리 그들과 함께 축제에 참여했다. 축제가 끝난 후에는 아이들과 삼삼오오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3년 넘게 태권도를 수련한 아이들은 움직임 하나, 동작 하나에 절도가 넘쳤다.

 

이날 캠프에 특별한 희소식에 자축하는 시간도 가졌다. WT가 2015년 최초로 태권도 아카데미를 시작하면서, 열심히 수련하면 언젠가는 올림픽 무대에 출전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제시했는데, 그 결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WT 조정원 총재가 올림픽 난민팀으로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얻은 야히야 알 고타니에게 아즈락캠프에서 격려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영문 없이 이곳으로 피난 온 올해 스무살이 된 야히야 고타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또 다른 막막한 삶을 살던 야히야는 열네 살 때 아즈락캠프 태권도 아카데미에서 태권도를 시작했다.

 

고립된 생활 속 태권도 수련은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일찌감치 뛰어난 실력으로 눈에 띈 야히야는 본격적인 겨루기 선수로 양성됐다. 실력이 뛰어나 종종 요르단에서 열리는 대회 출전을 위해 캠프 바깥으로 출입할 기회도 생겼다. 재능 하나로 캠프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동기부여로 훈련에 더 매진했고, 지난해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출전했다.

 

당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벽이 열릴 것”이라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세웠다. 꿈은 이뤄졌다. 최근 IOC가 발표한 5명의 난민 태권도 선수 중 유일하게 보호구역 내 생활하는 선수로 유일하게 선발됐다.

 

사막 한 가운데 미래가 불투명한 비극의 땅에서 태권도를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한 야히야는 올림픽 본선 진출 소식은 세계 여러 난민 선수들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게 됐다.

 

아즈락에서 또 한 시간여 차로 이동해 도착한 곳은 자타리캠프. 요르단 내 가장 난민이 많이 거주하는 곳. 여의도 3배 면적이다. 그 안에는 한때 세상과 단절된 13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생활했었다.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약 1만7천2백 가구, 8만3천여 명이 거주 중이다.

자타리 캠프 태권도 수련생

이곳에 태권도가 시작된 건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이듬해 생긴 자타리캠프에 한국난민기구(대표 이철수)가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설립된 공식 태권도 교육센터이다. 태권도 교육 효과를 인정한 UNHCR로부터 캠프 내 7천8백 평의 토지를 제공받아 태권도 훈련센터와 정신교육센터, 영어교육과 한국어교육, 미술, 유치원 등을 운영 중이다.

 

한국인 자원봉사 지도사범과 교사 등이 운영해서인지 곳곳에 태극기와 한국 정서가 깊게 묻어 있었다. 방문단이 도장에 들어서자 경쾌한 사물놀이로 반갑게 맞았다. 이어 수준 높은 태권도 시범을 선보였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캠프 방문 이틀 뒤 요르단 암만 시내 스포츠타운에서 열린 ‘제2회 호프앤드림스 스포츠 페스티벌’이다. 새벽 이른 아침부터 난민캠프에서 출발해 피곤할 법 하지만, 아이들 표정은 무척 밝고,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행사에 초청된 인원에 한해서 특별히 난민촌을 벗어날 수 있기때문에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큰 경험이자, 특별한 추억이다. 더 많은 인원을 초청하려고 해도 까다로운 외출 규제에 따라 정해진 인원에 한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캠프에서 생활하지만 태권도복을 입고 선의 경쟁 앞에서는 이질감이 없었다. 난민이라는 동질감에 승패를 떠나 함께 그 시간을 즐기고, 추억하는 분위기였다.

아즈락캠프 호프앤드림스 개막식

더욱 특별했던 것은 태권도 주도로 시작된 호프앤드림스가 지난해부터 다른 스포츠가 참여해 계속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배구와 레슬링, 탁구, 핸드볼, 유도 등이 추가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랫동안 태권도를 수련했고, 제3국에서 태권도 지도를 해봤고, 20여년간 태권도 전문기자로 세계 다양한 환경을 간접 경험을 했다. 그때마다 태권도는 단순한 무예 또는 스포츠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강한 문화의 힘을 갖고 있다. 그랬기에 전 세계가 태권도에 열광하고, 지속 발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 50% 이상 아동과 청소년인 그들에게 고립된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꿈과 희망이 태권도가 될 수 있다는 가치를 우리 태권도인도 소중하게 느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태권도를 통한 세계 평화와 인도주의 실천을 주창하며 전 세계 전쟁, 내전, 자연재해 난민 대상 태권도 지원 사업을 꿋꿋하게 전개해 온 WT 조정원 총재를 비롯한 임직원, 함께 지원에 나선 용품업체, 기업인, 태권도 지도자 등에게 경의를 표한다.

 

(끝).

자타리캠프 태권도 수련생의 시범

 

* 세계태권도연맹-태권도박애재단의 인도주의 실천 과정 

WT 조정원 총재가 UN 평화의날 행사에서 태권도를 통한 난민돕기 운동방안을 밝히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는 2015년 9월 21일 유엔 본부에서 열린 ‘2015 유엔 세계 평화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UN 창립 70주년을 맞은 뜻깊은 행사에 축사를 하게 된 조 총재는 “전 세계 난민촌 어린이를 돕기 위해 세계태권도연맹이 ‘태권도박애재단’을 출범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표했다.

 

 

조정원 총재는 “현재 난민 문제는 세계적인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며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말처럼 스포츠와 올림픽운동은 난민들을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태권도박애재단은 이 난민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는 태권도는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무예 스포츠다. 난민촌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교육을 통해 올림픽 정신과 세계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를 위해 세계태권도평화봉사단을 발족해 개발도상국에 일찌감치 봉사단을 파견한데 이어 두번째로 인도주의 실천을 위한 박애재단 설립은 국제스포츠단체 중 WT가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UN 발표가 있고 얼마 있지 않아 곧바로 스위스에 있는 WT 로잔사무소에서 태권도박애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올림픽 아젠다 2020'과 ‘유엔 2030 아젠다’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스포츠 인류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기여를 동참하기 위해 태권도를 통해 전쟁과 내전, 자연재해로 난민이 된 아동,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태권도 케어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15년.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디르크 헤베커 대표가 태권도를 통한 난민 해소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WT가 박애재단 설립을 통해 세계 난민 캠프에 태권도 보급에 나선다고 하자, 유엔난민기구(UNHCR) 당시 한국대표부 디르크 헤베커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과 고국을 잃은 난민의 수가 현재 6천만 명을 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다. 큰 문제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방향성을 잃는 것인데, 태권도는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 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설정해 일상생활이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화답했다.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2011년 시리아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피해 요르단에 마련된 난민보호구역인 자타리캠프와 아즈락캠프에 태권도 지원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13만명의 난민이 지내던 자타리캠프에 2013년부터 한국난민기구(KPR)가 설립한 태권도 아카데미에 용품을 지원하고, 6만명을 수용하던 아즈락캠프에는 최초로 태권도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내전의 피해로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교육지원 사업을 전개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무상 교육임에도 참여가 디뎠다. 이들에게 더욱 직관적인 태권도 동기부여를 제공하기 위해 WT태권도시범단을 파견해 난민캠프에 태권도 붐조성을 일으켰다.

WT 조정원 총재가 지난 2015년 12월 요르단에 조성된 시리아난민촌에 자타리캠프
태권도아카데미를 개설하면서 현지 어린이 수련생에게 태권도복을 선물하고 있다. 

적막했던 난민캠프에 외부 방문객 방문에 이어 화려한 태권도 시범 공연은 그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었다. 절도 넘치는 동작에 파워 넘치는 날카로운 격파, 경쾌한 음악에 맞춘 태권체조를 본 난민 아동들은 낯선 태권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난민캠프 내 안정적인 지원을 위해 2016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난민기구(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 본부에서, WT-UNHCR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난민 캠프 지원 활동에 UNHCR의 협조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박애재단은 태권도 아카데미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4명의 태권도 지도사범을 선발해 아즈락캠프로 파견했다. 이어 2016년 박애재단은 아즈락캠프 내에 태권도 전용도장 건립을 추진해 2018년 완공했다. 쾌적한 수련공간과 교실, 탈의실, 진료실, 카페테리아 등 부대시설을 갖춘 태권도 아카데미가 문을 열었다.

 

미래에 이곳에서 올림픽 출전할 수 있다는 희망사항은 야히야 알 고타니에 의해 이뤄졌다. 야히야를 올림픽 출전 소식에 난민캠프는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꿈과 희망이 더욱 분명해 졌다.

2015년 WT 태권도시범단이 난민캠프에 방문해 태권도의 진수를 펼쳐보이며 태권도 붐업에 일조했다.

태권도박애재단은 전 세계 난민 캠프 및 자연재해 지역 어린이 지원활동 공로로 스포츠계 노벨평화상인 ‘피스 앤 스포츠(Peace and Sport)로부터 2016년 ‘올해의 단체’에 이어 2023년 ‘올해의 주도적인 컴뱃 스포츠’로 두 차례 수상했다.

 

이어 지난해는 스위스 로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토마스 바흐) 본부에서 태권도를 통한 세계 평화에 기여한 스포츠 종목 우수 사례로 117년 역사를 가진 ‘올림픽컵(Olympic Cup)’을 받았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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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 무술 전문기자. 이집트에서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26개월 활동. 20여년 동안 태권도를 통해 전 세계 60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태권도 보급 과정을 직접 취재로 확인. 취재 이외 다큐멘터리 기획 및 제작, 태권도 대회 캐스터, 팟캐스트 등을 진행.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사인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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