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술 인물 탐구] 사이고 시로 ⑧편(완결) : 케이호 유영 협회를 설립하다


  

고류유술의 수영법이 현대 나가사키 수영 협회로 이어지다.

사이고 시로의 묘 [사진 출처 : 나가사키를 방문한 아이즈 사람들 홈페이지]

메이지 36년(1903년) 7월, 동양일출신문사가 설립 모체가 되어 ‘케이호 유영 협회’(瓊浦游泳協会)가 설립되었다. 사이고 시로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것으로, 고문으로는 나가사키 현지사, 회장에는 나가사키 시장, 이사에는 ‘아와지야 토미사부로’(倉場富三郎)와 함께 사이고 시로도 취임했다. 사무원으로 동양일출신문 사원 4명도 취임했다.

 

협회 설립취지서 또한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설립취지서에는 서명이 없지만, 사이고 시로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국(海国)의 사람은 물을 뿌리로 삼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지금 세상은 대양(大洋)을 능가하여 세계를 활보할 때야, 국방식산(国防殖産), 통교(通交) 모두가 물을 빼놓고는 이루어질 수 없고, 능히 노도(怒涛)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광란(狂瀾)에 빠지지 않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이유는 유영(游泳)의 기술을 몸에 익히기 때문이다. 능히 기술에 숙달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이를 훈련해야 한다.”

 

케이호 유영 협회가 유영장으로 선정한 장소는 나가사키 항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 네즈미시마(ねずみ島)였다. 네즈미시마는 나가사키 시민들이 오래전부터 해수욕장으로 사용해왔다. 유영법은 ‘고보리류’(小堀流)의 것으로, 매년 여름 회원들을 대상으로 수영 훈련이 진행되었다. 협회 설립 2년 뒤였던 1938년부터 네즈미시마와 후카호리(深堀) 사이를 이동하는 유영 경기가 개최되었다.

 

다이쇼 2년(1913년), 협회의 명칭은 ‘나가사키 유영 협회’(長崎游泳協会)로 변경되었다. 다이쇼 3년(1914년) 8월, ‘제1회 아리아케 해 횡단 유영’(第1回有明海横断遊泳)이 진행되었는데, 사이고 시로는 이 당시에 감독으로 참여했다.

 

시마바라(島原)의 타케시마(猛島)을 출발하여 쿠마모토(熊本)의 나가스(長洲)를 목적지로 출발했지만, 도착 직전에 큰 역류에 휩쓸려서 9시간 30분의 여정 끝에 실패했다. 다이쇼 5년(1916년)에 ‘제2회 아리아케 해 횡단 유영’(第2回有明海横断遊泳)을 실시했는데, 이때는 전체 참가 선수 14명 중, 10명이 완주했다. 참고로 도착까지 6시간 5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 완주는 나가사키 유영 협회를 한순간에 전국구 유명세를 떨치게 했다.  (출처 : 사전 사이고 시로 268항; 史伝 西郷四郎 268貢)

사이고 시로의 현창비 [사진 출처 : 나가사키를 방문한 아이즈 사람들 홈페이지]

사이고 시로는 다이쇼 11년(1922년) 12월 23일, 오노미치(尾道)에서 류머티즘 때문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나가사키 시(長崎市) 테라마치(寺町)의 코타이지(晧台寺)에서 동양일출신문사 장으로 거행되었다. 유골은 다이코지(大光寺)에 위치한 처갓집 나카가와 가문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나가사키 유도 협회는 쇼와 44년(1969년) 10월에 나가사키 시의 스와체육관 부지에 사이고 시로 현창비(顕彰碑)를 건립함과 동시에 나카가와 가문 묘지에 사이고 시로의 묘비를 세웠다.

 

[이것으로 강도관 유도 사천왕이자, 텐진신요류 쥬쥬츠(천신진양류 유술)의 달인이었던 사이고 시로의 인물 탐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미국 주짓수 전도사, 히가시 카츠쿠마에 대해서 새로운 인물 탐구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객원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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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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