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국기(國技) 태권도의 유래와 뒤늦은 법제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태권도 국기화의 변천사'

 

-국기(國技)의 등장

 

최근 대한민국에서 법제화 한 "국기 태권도" 유래는 태권도 탄생 이전의 시기부터 이미 시작 되었다.

 

"국기(國技)"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최홍희 전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 ‘태권도’라는 명칭이 제정되기 이전 ‘당수도’를 국기화(國技化) 해야 한다는 1954년의 기사가 최홍희 총재 본인 기고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954년 언론사에 기고한 최홍희 총재의 글, 국기화 (사진제공=정순천 사범)
오도관 연무대회에서 국기화를 강조한 기사

 

- 처음 등장한 "국기태권도"의 시기

 

같은 해 최홍희 총재는 군(軍)에서 창관한 오도관 연무대회에서도 국기화(國技化)를 강조했다. 그 이후에는 태권도란 명칭으로 처음 "국기(國技)"가 등장한 것은 1965년 최홍희 총재가 주도한 구아시범단(단장:최홍희시범단:박종수,한차교,김중근,권재화)을 구성해서 구라파와 아프리카에 태권도 시범을 순회하면서 준비한 "국기태권도 친선사절단" 기념패에 기록되었다.

1965년 구아시범단, 최홍희 총재가 지휘봉을 잡고 연단에 서 있는 모습
1965년 국기태권도 친선사절단, 기념패

 

-1968년 국기태권도의 제정을 최초로 제안한 이선근박사

이후 1966년 ITF(국제태권도연맹)가 태권도 국제기구로 첫 창립되고, 1968년 사학자 이선근 박사가 주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공식적으로 태권도를 국기화(國技化) 할 것을 제의했다.

“국기태권도”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최홍희 총재부터 공식적으로 언론에 국기태권도의 제정을 주장한 사람은 사학자 이선근 박사다.

1968년 11월 3일 주간조선에 기고한 사학자 이선근 박사의 국기 태권도 제정을 주장한 기고문

 

-1971년 공식적인 박정희 대통령의 국기태권도 시작

이후 국기태권도가 국가 차원의 제정은 아니지만 공식화된 계기는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국기태권도" 휘호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한 김운용 신임 회장이 축구와 씨름 등이 각기 국기라고 주장하자,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직접 부탁해 휘호를 받은 것이다.

故 김운용가 1971년 태권도 단체장으로 첫 취임 후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기태권도' 휘호를 받은 것을 계기로 지금껏 태권도가 대한민국 국기로 인식되어 왔다.  

이 글씨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태권도는 일선 도장은 물론 협회와 연맹, 언론 등에 "국기태권도"를 공식화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대한민국 ‘국기’로 인식되었다.

 

관습법으로 국기태권도를 사용되어 오다가 수 년 전 제도권 태권도계에서 몸담아 오던 C모 씨가 태권도가 국기로서 법제화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국기태권도 제정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이 무렵, 태권도 9단 출신의 이동섭 국회의원을 통해서 국회를 통해 법제화되었다.

 

하지만, 태권도 역사의 정확한 기록을 위해서는 국기태권도의 법제화 과정이 누구의 제안과 노력을 통해서 제정되었는지 보다 더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국기 태권도 법제화 과정과 국기원에서 사라진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 "국기 태권도"

 

얼마 전 국기원에서는 새로운 이동섭 원장의 취임과 함께 국기태권도 제막식과 함께 기념비가 각계 정부 인사와 태권도 제도권 수장들이 모두 모여 박수 속에서 새워졌다.

 

이를 지켜보면서 태권도 역사가로서 이번 국기원의 ‘국기태권도 제막식’ 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필자는 수십 년 태권도사를 공부하고 태권도 마음의 고향 같은 국기원에 애증이 많다.

 

승단 심사와 사범 교육의 과정을 국기원에서 보내고 사범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데리고 경기나 심사를 보러 간 곳이 국기원이다.

 

이곳에 김운용 초대 원장을 비롯해서 여러분의 원장님이 스쳐갔지만, 이번처럼 이동섭 원장 개인의 공적을 치적으로 비친 예는 없었던 같다.

 

제막한 기념비에 새겨진 "국기태권도"의 글씨가 졸필로 보이는 이유는 필자 만의 기우일까,

아니면 태권도인으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국기 태권도" 글씨가 수십 년 동안 마음속 깊이 머리까지 각인되어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국기 태권도 법제화는 이동섭 원장 개인의 치적으로 기록하기에는 여러 가지 부족함이 많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3월 30일 국기원에서 국기 태권도 법제화 지정 3주년을 기념해 국기원 정문에 기념비를 세워 정부와 국회, 태권도계가 함께한 가운데 제막식이 진행됐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김운용 대한태권도협회장에게 내린 국기태권도 휘호

그리고 태권도인이라면 수십 년 마음속 깊이 새겨진 박정희 대통령의 "국기 태권도"글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두 개의 "국기 태권도"를 보는 많은 태권도인들의 소중한 의견을 듣고 싶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글. 정순천 사범 =  ITF 역사 책임연구원ㅣ ci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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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순천

    위의 C모씨는 대한태권도협회 최재춘 전 총장임을 밝혀 둡니다.

    2021-12-12 12:50:14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무심

    법제화만 안되어 있지 사실상 전 국민이 태권도가 국기 인줄 알고 있었고, 또한 그러한데
    좀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2021-04-19 21:21:28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무도인

    이게 뭔 X소리야?

    2021-04-19 14:35:31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최낙덕

    박정희대통령 글씨를 새기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2021-04-16 21:17:27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사범1

      동감입니다.

      2021-04-20 16:03: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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