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영의 태권도이야기] 송무관 창설 장소는 어디일까?


  

역사속의 태권도근현대사 16편 - 노병직 4회

역사를 바라볼 때 한가지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의 평화로운 공존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 컬럼 역사속의 태권도역사”는 펙트를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참고문헌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태권도역사를 격동의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현재 태권도가 가고자 하는 올바른 길을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간혹 이 컬럼이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하며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도 나오길 기대한다. [필자 주] 

 

송무관 창설 장소 관덕정은....?

여기서 잠깐 송무관 창시한 장소인 관덕정에 대해서 알아보자.

노병직의 친필 기록(1999)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관덕정은 개성시 중아부에 위치한 자남사에 있으며 개성의 유지들이 성금을 모아서 세운 궁사장의 정자로 개성의 궁도인들이 사용하는 건물이다......(중략)마루바닥은 견고하여 그 당시 공수도(空手道)를 수련하기엔 손색이 없어서 가라테(空手道)도장으로 사용하기에는 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정자 앞과 그 주변에는 넓은 광장(廣場)과 잔디밭과 수목(樹木)이 많아서 매일 아침이 되면 청, 장년들이 모여서 조기운동(早起運動)을 하고 또는 산책도 하는 곳이다.(박규태 2019, 태권도신문 2000. 07. 31)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자남산(子男山)에 있는 관덕정은 노병직의 주장대로 성금을 모아 건축한 것이 아니고 초기에는 초가정자가 였는데, 1780년(정조4년)에 사람들이 이곳으로 많이 모여들어 증축하여 사정(射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관덕정 [觀德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자남산(子男山)에 있는 관덕정은 노병직의 주장대로 성금을 모아 건축한 것이 아니고, 초기에는 초가정자가 였는데, 1780년(정조4년)에 사람들이 이곳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시대 증축된 이 사정(射亭)은 건물형태가 8개의 사정(호정, 구군정, 군자정, 명월정, 반구정, 보신정, 채빈정, 관덕정)중 하나다.

관덕정에서 활을 쏘는 모습

사실 관덕정은 개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구와 제주에도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5년 5월 24일자 동아일보에는 제4회 전조선 궁도대회(全朝鮮弓道大會)가 대구궁도회 관덕정 주최, 동아일보사 대구지국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다고 나와있고 또 제주 관덕정도 세종 30년에 세워졌고 일제 강점기에 도로가 나면서 일부가 잘려나갔다가 2006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8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고 그위에 지붕을 세웠다. 그 옆쪽으로 다른 정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6,25때 회손되었다 1954년 5월 복구 되었다고 한다.

 

관덕정은 예로부터 경치가 좋고 이름난 개성의 명소였고 궁사들이 화창한 날 활쏘기와 친분을 다지기 위해 사용되었던 곳이었으며 공수도 수련을 하기엔 넓은 공터와 물맑고 공기 좋은 이 관덕정이 적합한 장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송도관 홈페이지에 보면 이곳에 양궁학교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1936년 3월 동경에 유학간 후 방학때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수련하고 싶어해서 이것을 받아들여 1944년 3월 20일 관덕중 양궁학교에 개성도장을 개설하여 '원조 개국관' 중 첫 번째를 세웠다라고 나와 있다.(https://www.songmookwan.com/)

태권도 노병직으로 본 송무관 창시자의 삶.(박규태. 2019)


③ 송무관 창설의 엇갈린 주장! 

 

송무관(松武館)은 해방 그 이듬해인 1946년 황해북도 개성시 동흥동에서 해방직전 고향으로 돌아와 궁사장(활터)에서 노병직이 젊은이들에게 가르친 것이 송무관 개관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기원 태권도 3급 지도자 연수 교재에도 실려있다.(서성원 2007, 3급 태권도 지도자연수교재 2017)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자유신문의 내용을 보면 1947년 9월 20일 개장했다고 나와 있다. 한 가지 잘못된 것은 송도관(松道館) 3단이라고 기록 되어 있는데 이것은 앞서 단증을 보았듯이 오류로 추정된다.

 

또 청도관에서 활동중이었던 것은 쇼토칸(松道館) 출신의 청도관 이원국 관장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자유신문 1947. 9.18자 신문기제(국사편찬위원회)

(원문)

이번 동흥동 751에 신설중이던 송무관이란 당수도장은 20일 부터 개장하고자 관원을 모집중인데 강사(講師)는 송도관 3단으로 경성 청도관서 활동중이던 노병직씨가 취임하였다 한다.

 

또 송도 대강당에서 창립1주년 대회를 개최한다고 1948년 11월 9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되어 있어 송무관 탄생시기인 1947년을 뒤받침하고 있다.(허인욱 2008)

 

이 기록은 지금까지의 사료중 정확하게 중요한 개관시기를 적시하였다. 따라서 송무관의 개관시기는 최소한 1947년 9월 20일 이전 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 현재 세계태권도 본부인 국기원은 국기원 태권도3급 지도자연수교재(2017)에 1946년 5월로 기록보다 앞선 기록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 시기와 날짜가 차이가 많이 나지않고 광복 전(前)인 당시의 일본은 민족말살정책을 폈고, 광복후(後) 칠일파 척결 등의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첫 시기가 1944년 2월에 시작 했다는 설도 배제 할 수 없다. 송무관의 창설시기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당시 이렇게 우리가 힘들고 여러운 시기를 겪었고 한국은 전시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개인의 취미나 놀이는 꿈도 못꾸었을 것이다. 전쟁시기 모든 사람은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기때문에 당연히 무술수련은 할 수가 없었고 다시 도장을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창설되지는 않았지만 1944년 3월 20일에 수련을 시작했다는 증거는 그로부터 4개월 뒤인 7월25일 제1회 승급심사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관(館)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형성사 허인욱 2008)

 

노병직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도장을 개관하였다. 그러니 당연히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개봉 후 3~4개월 안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병직은 나머지 설립자들과 잠시 꿈을 접게 되지만 해방이 된 후 1년뒤인 1946년 5월 2일, 동흥동 대왕로(大王路)에서 다시 개관한다.(관(館)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권도형성사 허인욱 2008, 송무관홈페이지 https://www.songmookwan.com/)

 

이 시기의 공식적인 송무관 개관기록은 여러 태권도역사 서적과 신문등 많은 증거들이 있다.

 

노병직은 현대 태권도 중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46년 송무관, 청도관, 조선연무관 권법부, 중앙기독교 청년회 권법부등이 참여한 통합협회를 최초로 논의하는데 주도했고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각 도장의 대표들을 규합 최초의 대한공수도협회를 창설한다. (1953.05.25.)

이때 참여한 사람이 노병직, 윤쾌병, 황기, 현종명, 이남석, 이종우, 민운식, 김인화(유도인), 조영주(재일거류민단 단장)등이 서명했는데 이것이 훗날 태권도협회의 효시가 된것이다.(박규태(2019)

 

1966년 1월30일 대한대권도협회 제4대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송무관은 노병직을 시작으로 2대 이영섭, 3대 강원식(전 국기원 원장)으로 이어지고 있고 송무관 단증은 미국송무관 본관 노희상(노병직의 아들)(https://www.songmookwan.com/)을 통해 계속 발급되고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조선연무관 권법부(지도관) 전상섭1편

 

[글. 엄재영 사범 | 대망태권도 관장, 북경체대 교수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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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영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가르친다.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현)대망태권도관장
현)북경체육대학교 교수
현)2020년 대한민국 품새 국가대표
현)국기원 강사 / KTA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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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인

    송무관 개설 일자와 장소 정보는 주관적 송무관사와 객관적 태권도사 관점이 당충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일반화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지식인지 제 3자가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2021-01-06 09:15:4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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