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덕관 명칭이 '류(流)파'가 아니라 '장소'로 사용된 까닭?


  

엄재영의 태권도 이야기 - 역사 속의 태권도 역사 6회 : 무덕관

 역사를 바라볼 때 한가지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의 평화로운 공존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이 컬럼 역사속의 태권도역사”는 펙트를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참고문헌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태권도역사를 격동의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현재 태권도가 가고자 하는 올바른 길을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간혹 이 컬럼이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하며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도 나오길 기대한다. [필자 주] 

(전편에 이어 계속)

 

무덕관 창설 논쟁

무덕관은 청도관과 더불어 1940년대 후반 활발하게 관세를 넓혔다. 그 위용도 대단했다. 황기는 무덕관 창설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말고 푸른 하늘밑에 신비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상 위애 고결한 민족의 해심인 청년들의 수양도장 l 해방의 종소리와 함께 엄연히 나타났다. 즉 단기 4278(1945)11월에 교통부를 중심하여 당수도장 무덕관이 창설되었다(당수도교본 원문 1958)

 

황기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 김인석 원로(1926)의 말에 의하면 본인은 철도국 직원으로 일하다 1945119일에 당시 7명의 인원으로 수련을 시작한 것이 무덕관의 첫 시작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그가 저술한 당수도교본 외에 입증할만한 다른 사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당수도 교본 표에서도 해방이후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수도교본(1958)

현대 태권도의 원류 무덕관의 개설 시기에 대한 연구에 보면, 1947년 초에 개설되어 그해 511일 당수도 무덕관은 황기의 청도관 도장을 방문하여 첫 심사를 거행했다.

 

바로 이 시점이 무덕관의 공식적인 개시일이자 창립 시기로 간주될 수 있다.(김영선 2020) 심사 사진과 증서 등 2건의 1차 사료와 여러 기록 자료들이 그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이를 뒷 바침하는 사료는 당시 청도관 제3회심사(1947.05.11)에 무덕관 1회심사를 본 흔적이 있는 사진이다.

현대태권도의 원류 오대관의 형성과 사적의의에 관한 연구(김영선, 2018)

무덕관 심사자는 관번 1번인 김은창을 비롯해 김용덕, 최희석 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청도관 제3회 심사인데 이때 황기와 이원국이 있다. 이 심사에 참여한 엄운규(청도관), 최희석(무덕관)은 청도관은 3회, 무덕관은 첫 심사라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다.(김영선 2018)

 

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첫 심사 후를 무덕관 창설이라고 보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첫 심사가 511일이라면 최소 6개월 전이며 당시 수련의 강도와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무덕관창설은 그 이전 그러니까 1946년 초,중반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증적 진실을 정황 증거와 사진으로 확실한 창설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어렵고, 증언마다 다른 내용을 진술하고 있어 무덕관 창설일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어찌되건 당수도 무덕관은 광복이후 서울 용산에 위치한 철도국에서 시작해 그 세를 넓힌 것은 사실이고 당수도 무덕관을 철도국 도장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⑤무덕관의 명칭은 류(流)파가 아니라 장소다?

일제강점기때 우리나라에서 무덕관(武德館)이란 명칭은 사실 한 유파의 관()을 의미하는 것이 닐 것이다. 무덕관은 다양한 무술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장소로써 심신단련이나 스포츠를 하는 곳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1910829일 일본이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치욕적이고 분노가 끌어오르는 날이다. 이날을 치욕의 경술국치라고도 부른다.

 

이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경성이라 불렸던 서울에서 무덕관(武德館)을 설립하고 전국 각지에 무덕회 지부와 무덕전이 건립되었다.(문화체육관광부 2012)

 

이 무덕관에서 일본의 무도정신을 보급하고자 검도, 유도, 궁도, 검술 등을 가르쳤다.

 

당시 경무국 주도로 10만인 증보계획을 세웠고 정회원은 입회금 2원(학생은 1)특별회원은 5월 유공회원은 25원을 회비를 내게 되었다 한다.

 

이는 일본 무도를 통한 한국식민 지배를 본격화 하고 우리나라의 호국정신과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이였다.

 

무덕관(장소)는 당시 검도와 유도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 사실을 일본이 패망이후 우리의 잔재가 되어 1960년대 중반까지도 이 명칭을 사용하였다.

 

아래의 기사는 19640320일 마산일보의 기사 원문이다.

마산일보(1964. 03. 20)

이 일제 강점기때 이 무덕관을 황기가 창설한 무덕관(武德))으로 차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강제로 조선의 무술을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은 우리의 모든 상식을 초월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무덕관 단번(段番) 1번인 김운창을 시작으로 김용덕, 유화영, 남삼현, 비롯해 김인석, 이복성, 황진태, 정창영, 이강익, 홍종수 등 걸출한 태권도의 인물들을 길러냈다.(서성원 2007, 김영선 2019, 황기, 1993)

대한당수도협회 무덕관  제20회 유단자 심사기념(1957. 10. 27)

황기는 무에도보통지에 심취해 2년에 걸쳐 번역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수박도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재정했다. 

 

화수도와 당수도의 명칭에 관해서...

무덕관 명칭에 대해서 황기는 이렇게 서술 하고 있다.

저자로서는 현재 당수도라는 명칭을 대회적으로 쓰고 있으나, 이것은 본의 아닌 칭호인것이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화수도(花手道)라고 새로운 명칭을 제정하였던 것이다.....중략.....

그러나 화()자는 과거 화랑도의 첫자를 채택했고 수()자는 당수도의 수()를 인용함도 되지마는 수()라함은 손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람을 표현함이요....중략.....()인데 이 자()는 고대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말이며, 이에 대해서는 현명한 세상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므로 군말을 피하는 바이다.

(당수도교본 본문중에서 1958)

 

1958년 집필한 당수도교본에서 당수도와 화수도에 대한 명칭을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동아일보 1959년 2월26일자에 내일이 방월 국군 다수선수 20명이란 제하에 최홍희 육군소장을 단장으로 월남 국방성초청으로 우리나라 당수선수들이 월남을 방문한 사실이 나와 있어 태권도와 당수(唐手)를 혼용해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1959.02.26)


 1950년대 무술계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가 안정되어 있지 않았고 저마다 많은 관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특히나 무덕관을 대표하는 명칭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잘 알고 있는 황기는 명칭과 이름에 대한 애착이 남다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황기는 태권도 통합에 반대해왔다. 통합과정에서 당수(唐手)로 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수박도를 주장하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단법인을 문교부로부터 받고 당수도(唐手道)와 수박도는 하나라고 주장하고 화랑정신과 무예도보통지 등 태권도 역사기술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체계적인 적립을 세우고 있는 시기였다.

 

대한태권도협회 창립과정에서 제자들이 통합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고 1962년 8월 탈퇴한다.

 

1963년 전국체전 시범종목으로 들어갈 당시 대한수박도회에 속한 도장들은 대한체육회 산하 대한태수도협회 소속이 아니었으므로 승인대회나, 전국체전등 대회에 출전을 할 수 없었고 대한수박도회에서 발급한 단증은 공인단증도 아니라 무덕관계열의 도장들은 도장운영에 어러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많은 제자들이 통합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1965년 3월 16일 당시 고참 사범들과 각 시, 도지부 본 관장들이 마포도장(일명 마포회의)에 모여 통합을 최종 결정한다.(허인욱 2008)

 

통합찬성파의 중심에 있던 홍종수는 “무덕관” 최대의 비극적인 현장이라고 말해 당시의 마음아픈 심경을 그대로 전했다 한다.

 

1965년 3월 18일 최홍희가 주축이 된 관(館)대표자들의 통합선언식에 사인했다가 다음날 "무효"라며 번복하여 깜짝 놀란 제자 홍종수의 하루 반나절을 충심직언 해도 고집을 꺾지 않았고 고단자들도 그를 찾아갔지만 소용없었으며 제자들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진 것이다.(서성원 2007)

 

관(館) 통합을 지지했던 제자들은 그를 재적이라고 말하지만, 스승을 무덕관에서 끌어내리는 하극상이 벌어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황기는 1963년 미국으로 이주해 수박도를 전파하기 시작해서 11년 뒤 인 1974년 미국연맹을 창설하고 웨스트포인트 미군사관학교의 무술 정규과목으로 수박도가 채택되는 영광을 맞이했다. 수박도의 보급현황을 보면 미국,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등 27개국이다.(정근표 2020)

 

황기가 이끄는 무덕관 세계대회 때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과 보수교육을 하는데 이 교육을 꼭 이수해야 하며 황기 자신도 그들과 함께 1박2일간 열심히 직접 가르치고 함께 수련하는 모습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무도인 다운 면모를 죽을 때 까지 보여줘 해 후학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으로 남아 있다.

(다음 편에 계속)

다음 편, 

국제 태권도1호 사범은 무덕관에서 배출한 사람은 누구?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글 엄재영 사범 = 대망태권도장 관장 & 북경체대 교수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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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영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가르친다.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현)대망태권도관장
현)북경체육대학교 교수
현)2020년 대한민국 품새 국가대표
현)국기원 강사 / KTA 강사
#태권도역사 #역사 #무덕관 #태권도통합 #황기 #마포회의 #엄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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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멀고 돈은 가까운, '전통'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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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뒷얘기

    역사는 멀고 돈은 가까운, '전통'무예

    2019. 8. 16. 07:30 댓글수10 공감수9

     ‘쌀딩크’ 박항서 축구대표팀 감독이 맹활약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다. 하지만 사실 아아자이는 만주족 전통의상인 ‘치파오’에서 유래했고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춘 건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다. 이런 얘길 들으면 어떤 분들은 대뜸 ‘아오자이가 알고보니 전통의상이 아니고 수입품이구나’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수백년 역사를 갖지 못했다고 아오자이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는 한국에서 전통은 힘이 세다. 전통무예는 뭔가 심오한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 같은 느낌까지 준다. 그러다 보니 전통무예 계승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최소 수백년 심지어 고구려·신라·백제까지 줄을 대는 과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인 태권도가 해방 이후 창시된 현대무술이라거나, 가라테 등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무예의 영향을 다양하게 받았다고 해서 덜 위대해지는 건 전혀 없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전통무예 기준은 ‘3대 이상의 계승체계와 명백한 전통 내용’이다. 결국 한국에서 전통무예는 국궁, 씨름, 택견 셋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전통무예 지원을 한다면 이 기준에 따라 전통무예 여부를 가리고 집행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국회가 2008년 전통무예진흥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전통무예를 진흥한다고 하면서 전통은 간 데 없고 이권만 난립하고 있다.

    조선 정조 때 발간한 ‘무예도보통지’에 기반한 무예24기 수련자이자 국내 유일한 무예사 박사인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은 “전통무예 단체를 같이 만들어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에 따르면 전통무예 쪽이 가뜩이나 복잡한 곳이었는데 전통무예진흥법 제정 후 단체 난립과 이전투구가 더 악화됐다. 전통무예 분야의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많을 때는 한 달에 한두 개씩 새로운 무예단체들이 생겨나고, 협회 이름만 바꿔 승단 심사비만 챙기는 곳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국궁 시범을 보이는 최형국 전통무예연구소장. 그는 무예24기를 수십년째 연구하고 수련해온 무예사 전문가이지만 '전통무예'가 남발되는 세대를 우려한다.

    이는 문체부가 14일 발표한 전통무예진흥 기본계획에 포함된 실태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각종 연맹·협회만 현재 231개나 된다. 합기도는 관련 단체가 15개, 해동검도도 9개다. 소속 도장 하나 없이 지부만 있는 무늬만 연맹·협회도 적잖이 눈에 띈다. 대구에 도장 하나만 있는데도 명칭은 ‘국제○○○연맹’인 무예 단체부터 배출 지도자 18명에 회원 60명인 단체가 ‘세계□□□□연합’과 같은 간판을 내건다. 이렇다 보니 전국에 1만 6312개나 된다는 도장이 제 구실을 하는 곳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전통무예 지원을 담당하는 문체부도 골치가 아프다. 문체부 관계자는 “명확한 지원 기준도, 지원 대상을 선정하기도 힘들다”며 털어놨다. 문체부 책임도 적지 않다. 전통무예 지원 기준을 ‘창시된 지 최소 10년 이상’으로 하다 보니 15년전 황학정에서 국궁을 배웠다며 2009년 설립한 국궁 관련 단체까지 전통무예라고 주장할 지경이다. 전통무예 단체 간 분란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전통’ 무예를 지원한다면 국민이 찬성할지 의문이다. 자정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

    <서울신문 2019년 8월16일자 27면에 실린 기사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전통무예#최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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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예해동검도2020.03.28

    무예24기속해동검도시범단의무예시범의왜곡된 무예오류 심각 한 예로 낙악읍성해동검도시범

    전통무예설명왜곡 해동검도쌍수검법이 무예24기로왜곡설명 수원24기공연표절 아마도 해동검도단체와 개인적 인연으로 공연물이 같을수도

    그래도 올바른 무예시범을 해야하고 감시하고

    올바르게 가르쳐야 할것같다 해동검도의 특이한단체습성때문이다. 항상그래서 해동검도는 무예계의 사이비단체라고하는것이다



    댓글

    자작나무숲2020.04.01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댓글

    전통무예인2020.07.03

    아마도.최사범도 아시는 단체이지요 수원야조때같이시범한 단체아닌가요! 전통성을 중시하는 행사에 해동검도기예무단 이라니 개인뜻이 있겠지만 좀 그래도 같은 전통무예선.후배단체도 있을것같은데 이또한 안타깠습니다 요즘 해동검도 단체들이 전통무예진흥법때문에 전통무예단체에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조심하셔야죠

    아무리 개인인연 이라도 전통무예연구하시면...... 잘못된 제자한명이 전통성에 문제을 요함

    미꾸라지 한마리가 그단체 전문성과전통성을...... 심히걱정됩니다 무예24기단원의 오래된 노력이 한순간에..... 부디 조심하시길



    (기예무단)단체 해동검도협회활동 기사

    한국해동검도연합회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청주 세계 무예마스터 대회 단체연무 우승 영암수련원(기예무단). 전통무예 홍보와 협회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한 기예무단 축하 드립니다.



    댓글

    고구려2020.07.11

    해동검도 고구려사무랑?

    해동검도가 고구려 사무랑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창건자인 나한일과 김정호의 법정 공방을 통해 기술의 상당수가 심검도와 기천문에 영향받아 만들어낸 현대 창작 무술임은 만천하에 드러나있다. 해동 검도에서 가르치는 검술 상당수는 심검도와 기천에서 따온 것이고, 일부는 둘을 혼합해서 나한일과 김정호가 창작한 것이며, 또 다른 일부는 아예 일본의 군도술인 토야마류와 나카무라류의 검리와 기술을 받아온 것도 있다. 그리고 본국검법과 쌍수검법은 무예도보통지를 기반으로 나름 재현해낸 것이다. 해동검도 검술 중에 예도 검법이라는게 있어서 이것이 무예도보통지의 예도(조선 세법)이 아닌가 착각할 수도 있는데, 해동의 예도 검법 1번 ~ 9번은 나한일과 김정호가 창작한 검술이다. 해동검도는 사범급 연수를 짧고 빠르게 해줘서 도장을 쉽게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빠른 시간 내에 세력을 끌어모았는데, 해동검도 브랜드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 다른 무술 도장을 하던 사람들이 짧은 연수를 받고 간판만 갈아치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던 사람들도 해동검도에도 흘러들어간 듯 최근에는 무예도보통지의 조선 세법도 하고 있다)#. 날조한 전통이 법정 공방으로 드러나버렸으니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진짜 전통 검술인 무예도보통지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셈. 하지만 도장이 세워진 시기나 해동검도 협회마다 커리큘럼이 제각각이기에, 모든 해동검도 단체가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지는 않는 듯 하다.

    ※참고:무예24기와경당24반에

    흘러들어간 해동검도단체

    1.무예청박물관 해동검도진검동호회

    90년대 해동검도진검베기 동호회 회원들

    2.무사협회단체 합기도.해동검도관장
    옛 경당24반 쌍검수련생

    3.한국해동검도 윤자경1세대 검무수련자들

    1.지무단 해동검도 검무단체 세계해동소속

    2.기예무단 해동검도 검무단체 한국해동소속

    4.현재 전통무예 검무시연자들

    해동검도단체소속 수련자들

    이들 단체은 지금 전통문화 행사등 에서 활동하고있다. 돈에 흐름에 따라 활동한다.역사는 멀고 돈은 가까운 해동검도단체들



    댓글

    돈은가까운협회2020.07.14

    세계검무예연맹

    한국해동검도연합회

    홈페이지

    협회소개

    ※검무예※

    검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에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검도,검술,도법 등과같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혼용되어 불리어져 왔다.

    최근에는 검도앞에 제각각의 이름을 붙여 해동검도, 본국검도등 으로 많이 불리어지고 있다.

    원래 중국은 술, 일본 도, 한국은 예를 써왔다중국은 무술(검술,창술) 일본은 무도(유도,검도) 한국은 무예(24반무예,궁중무예,검무예)라 불리어져야할 이름이 일제강점기를 통해 들어온 검도,예도와같이 일본의 문화가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도자를 붙이게 만든 것을 이제라도 바꾸어 불러야하는 이유이다.우리가 검무예를 아무리 잘하고 해외에 나가도 검도 하면 일본 것으로 혼돈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제부터라도 민족수난의 굽이마다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구한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검도가 아닌 검무예가 바림직하다.각 단체들이 서로 전통무예를 표방하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 명칭이라고 본다.전통검무예를 표방하는 단체는 검도가 아닌 검무예로 불리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검무예연맹(해외법인)※

    세계검무예연맹은 검무예 창시자 일성 정복수 선생께서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복원한 복원검무예와 실전 검리에 입각한 실전검무예를 창시하여 우리 정서와 현대에 맞게 계단식 수련과정을 완성시킨 협회이다. 본 연맹은 반만년 역사와 함께한 한민족의 훌륭한 기상과 무예를 오늘날에 복원 전승하여 한국적 검무예 정체성을 지키며 그속에 담겨있는 문화적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무예의 도덕과 규범을 다시 세우고 검무예의 가치와 철학,검무예의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우리 조상들의 찬란했던 검무예를 전승 보급 하고자 한다. 세계검무예연맹은 세계법인으로 해외 여러나라에 보급되고 있다.



    ※한국해동검도연합회※

    한국해동검도연합회는 한국법인으로 정복수선생님의 검무예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한국법인 협회이다. 수련방식은 유급 초단 과정은 해동검도의 양생법과 화려한 수련과정으로 되어 있으며 고단자 과정은 검무예의 실전에 입각한 계단식 수련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해동검도연합회는 해동검도의 장점과 검무예의 장점이 하나가된 우수한 협회이다. 2013년 1월 1일 부로 경찰 공무원 가산점 인정단체로 선정된 협회이다.

    참고로: 이단체는 일본 이도류 단체였다

    일명 지관설립 장사 하는 유령단체다

    단증장사.지도자연수장사.지부장장사

    협회심사비장사.무술종교단체인가?

    무예생태계에 교란 단체인것이다.

    댓글

    24반2020.08.03

    헐~ 그럼 무예24반.무예24기분들이 해동검도수련자분들과 같이 활동중인가요?

    댓글

    해동검도무예24기2020.04.01

    해동검도란 정조14년 (1790)에 완성된 무예도보통지(조선 후기 무술 교본)를



    토대로 복원, 재 창조한 무예이며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검도 입니다.



    ​또한 해동검도는 평생운동 으로 할 수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 등

    온가족이 할 수 있는 가족무예이기도 합니다.

    출처:네이버지식.해동검도광고문구



    전통성세탁.역사왜곡.일제시민지자재

    칠일파 일본회 역사학회무예계.자본지원 및 포섭



    댓글

    주류학계반성하자2020.07.12

    문자그대로 역사를 왜곡해 시대의 흐름과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어떠한 나라도 여기서 자유로울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를 뒤집어엎는 그런 판타지적인 능력이 아니라, 각종 교차검증 등을 거쳐 명백하게 드러난 역사 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검증이 끝나지 않은 사료 등을 덧붙이거나, 아니면 막가파로 억지춘향을 부리는식으로 역사 기록을 일부러 변질하거나 또는 필요한 알맹이만 골라뽑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한 대로 재해석하는 등 역사를 변질시켜 수용하는 행위 전반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속임수가 예외없이 횡행하는데, 극소수 사학자 들이 주장하는 낭설 전반이 다름아닌 역사 왜곡의 대표적 예시다. 고증과 증명이 없는 모든 역사적 사실은 역사 왜곡이다. 야사 같은 것은 카더라식의 기록이 많으니 역사 그 자체로 인식하기보다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예화 같은 걸로 받아들이면 좋다. 게다가 야사는 조상님들이 기록한 사서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역사 왜곡'은 아니다.역사 왜곡'은 이후의 후손들이 한다. 물론 당대의 일화가 아니라, 한참 후대에 과거의 역사를 마음대로 적었다면 그건 역사왜곡이 맞다. 애초에 위서는 한국역사로 치자면 고조선 시대부터 만들어졌다.



    대개 역사왜곡은 학술적탐구가 아니라 현재의 국제 또는 국내정세에 써먹으려는 목적으로 창작하는 정치적 활동인 셈이다. 이런 공공과 주류학계, 교과서에서 조작하는 역사왜곡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가 아닌 대중매체가 감정적 목적으로 역사왜곡을 확대나 재생산하는 상당히 특이한 사례다.

    2020-08-14 09:29:2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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