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기 위대한수업] 사범이 수련생을 두려워 해야하는 이유?


  

<4강>사범으로 산다는 것

캐나다와 미국을 가로지르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곳, 미국의 땅 끝, 버팔로 시티. 그곳엔 태권도장 성공신화의 주역, 세계적인 명문 태권도장 '월드클래스'가 있다. 맨 손으로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태권도장 성공 신화를 이룩한 정순기 관장은 <위대한 수업>을 통해 그가 그동안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공개한다. [편집자 주]

 

 

예전에 태권도는 일사불란, 상명하복, 절대복종이 전부였던 통제교육이었다. 지금도 수련생들에게 명령조로 대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수련생의 눈에 사범은 딱딱거리는 훈련소 조교가 아니라 절제되고 온화하면서 힘이 있는 캐릭터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수업시간에 쓰는 언어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

 

“자, 이제부터 수업 시작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눈 똑바로 떠! 가슴 쫙 펴!” 이런 강압적인 언어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분이 가슴을 활짝 펴고 반짝이는 눈으로 사범에게 집중하는 것을 보니 모두 흥미진진하게 수련할 준비가 되어 있군요! 자, 그럼 신나는 수업을 시작해 봅시다!” 이런 언어가 훨씬 낫다.

 

“야, 더 세게 차! 그게 뭐야? 아니, 몇 번을 말해줬는데 그걸 못 알아들어?” 역시 나쁘다.

 

“이번엔 무릎을 좀 더 굽혔다가 차 보자. 아주 잘했어! 그것 봐, 더 빠르고 세게 찰 수 있지?” 사범이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면 수련생에게도 긍정의 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다.

 

이것은 앞차기 기술 하나를 잘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하다.

 

수업 중에 딴짓 하는 수련생을 콕 집어 면박을 주고 핀잔을 주기보다 그 옆의 잘하는 수련생을 칭찬해 준다.

 

“와~! 쟈니를 보세요. 사범이 말할 때 반듯이 서서 듣는 자세가 대단히 보기 좋습니다. 이번엔 수잔을 봅시다. 수잔의 눈빛을 보니 집중력이 대단한 걸 알겠네요!” 이렇게 친구들을 칭찬해 주다 문제의 수련생에게 눈을 돌린다.

 

“자, 이제 토니 차례다. 토니도 다른 친구들처럼 잘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집중하지 못하던 토니가 ‘자신도 봐 달라’는 듯 잘 따라하게 된다. 그때를 기다려 더 큰 칭찬을 해 준다. “와, 토니 역시 아주 잘하고 있네요!” 그렇게 조금씩 잘하는 대열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준다.

 

우리는 태권도를 가르쳤을 뿐인데 어떤 수련생은 너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거나 평생 못 잊을 관계를 맺기도 한다. 각자가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잘 발휘하도록 인내하며 용기를 주고 함께 부딪혀 가다 보면 그 과정에서 말 못할 끈끈한 연대의식이 생기고, 결국 재능이 알을 까고 나오는 것이다.

 

수련생을 너무 친근하게 대하다 보면 사범의 권위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우리 한인 사범들에게는 투박하지만 저돌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영어가 조금 달리더라도 수련생을 잘 끌고 간다. 그중엔 군대 훈련소 조교처럼 “인사 똑바로 안 해? 움직이지 마! 어디 눈을 돌려?” 하며 카리스마적 권위로 수련생을 휘어잡는 사범도 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수련생을 일사분란하게 잘 다루니까 잘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성질도 부리고 기합도 주어 사범만 보면 기가 죽어 어쩔 수 없이 말을 잘 듣게 만드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다.

 

수련생을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방법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범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사범의 기분에 따라 오늘 수업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수련생들이 전전긍긍해서는 안 된다. 리더십은 권위로 눌러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에서 나온다.

 

월드클래스에서는 사범들이 정말 열심히 수련생을 존중하며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월드클래스에 사범으로 오려면 대단한 실력과 스펙을 갖추어야 되는 줄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도장에 오는 인턴사범 중엔 태권도학과의 훌륭한 교수님들이 추천한 사범도 있고, 먼저 와 있는 사범이 추천한 후배도 있지만, 나는 스펙 좋은 사람만 선호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범을 원한다고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사고방식이 나와 너무 달라 마음에 안 드는 일도 있다. 그럴 때면 ‘아이고~! 나도 젊었을 땐 한참 모자랐는데 뭐.’ 하며 기회를 주고자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배우려는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와 수련생을 진심으로 대하는 자세만 갖추면 된다. 그런 자세만 있으면 누구든 좋은 사범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사범인데 이런 것쯤은 괜찮은 거 아냐?’ 하거나 사범이니까 수련생을 고압적으로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지시를 잘 따르지 못한다고 수련생에게 성질을 부리는 태도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사범이니까 도장에선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싫다!

 

한국에서 오자마자 바로 수련생들이 “Yes sir!” 하고 대접하니까 권위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사범도 있다. 사범이니까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한 줄 알면 안 된다. 사범은 수련생을 어려워해야 한다. 아니 수련생은 정말로 어려운 존재다. 수련생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잘 못하는 수련생들로 하여금 용기를 가지고 잘 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인도하는 사람이 사범이다.

 

월드클래스에서 추구하는 리더십의 본질은 솔선수범이다. 월드클래스 사범들은 수련생을 가르칠 때는 말로만 하지 않고 시범을 보여주되 최고의 동작을 통해 동기부여를 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수련생들이 앉아 있는 방향에 따라 왼쪽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지, 오른쪽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지까지 고려해 역동감이 전해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매번 좋은 수업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경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솔선수범으로 수련생들의 신뢰가 쌓이게 된다. 사범이 먼저 최선을 다하고 수련생 하나하나에 진지한 관심을 갖는 것보다 강렬한 리더십은 없다.

 

월드클래스 따라잡기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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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스미디어는 '정순기 관장'의 도서 [위대한 클래스]를 공유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도서의 목차 순서대로 연재합니다. 무카스는 태권도, 무예인의 열린 사랑방 입니다. 무카스를 통해 일선 태권도장 지도자 및 수련생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주

 

[글. 정순기 사범 | 미국 월드클래스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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