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철 칼럼] 도복 한 벌 남기고 가져갈게 없는 인생


  

[정준철의 태권도 바로가기]태권도 사범으로서 고민해야하는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

내 유년시절은 꽤 가난했다.

 

한 달 동안 라면만 먹은 적이 있었다.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내 기억 중 유일한 기쁨 하나는 한 달에 한번 어머니가 검은 비닐에 사가지고 온 고추장 돼지고기였다.

 

그때는 그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고추장 돼지고기라는 게 가장 싼 부위를 고추장으로 버무려 맛을 감췄다는 것을 어른이 돼서야 알았다. 그런 까닭에 유치원이니, 학원이니, 햄이니, 24색 크레파스 같은 자본을 통해 만들어진 형상들은 내게 생소했었다.

 

한 번은 학급 반장이 되었는데 다른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회가 갖는 상징성을 통해 일어나는 여러 상황들 앞에서 나는 큰 절망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운동회 날에는 관례처럼 학급 반장, 부반장 부모님들이 항상 음료수와 빵을 사가지고 학교에 방문 했다. 그런 음식들은 그 반의 자부심이었다. 

 

내가 반장이 되고 운동회가 있었던 날 아침. 어머님께 엄청난 반항을 했다. 교문 앞까지 울면서 등교 했다. 운동회가 중반쯤 지날 때, 교문 너머로 어머니께서 검은봉지를 양손에 들고 힘겹게 들고 오고 계셨다. 직감적으로 저 봉지 안에는 음료수와 빵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 어머니는 회사 사장님께 목을 조아리고 결국 조퇴를 하시고, 철없는 막내 운동회를 참석 하셨을 것이다. 구멍난 팬티를 입으셨던 어머님이 그 많은 캔 콜라와 빵을 사셨을 때 어떤 마음이드셨을까?

 

하지만 가난이라는 중력은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있었고, 어렸을 때 종종 듣던 “이놈 참 장군감이네” 혹은  “머리가 참 좋네!" 라는 말들은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되어지지는 못했다.

 

인도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손으로 변을 닦던 아이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위로가 되어야지 극복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악조건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가능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된 것이다. 그걸 의지로 해석하는 것은 자기당착이라 본다. 그런 까닭인지 내 인생의 마디마다 강한 열등감이 출렁이고 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법전도 만져보고 의대는 어떤 곳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세상에서 좋은 가치로 인정받는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 했던 것 같다. 

 

지방대지만 4년 동안 학업 성적 1등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우수 졸업생으로 선발이 되었어도 그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호주 교환학생으로 선발이 되었을 때도 유학생들한테 열등의식을 느꼈고, 군대에 가서는 육사출신 동기들에게 열등의식을 가졌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열등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순간이 있었다. 바로 태권도장을 하고서 부터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태권도장을 하게 된 까닭은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드러내기 위한 자만심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였다.

 

'희망이 없는 아이들도 몸이 건강해지면 희망을 갖고 삶의 목표를 가질 거라는 확신'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도장을 개관하고 전단지를 돌리기보다는 인근 학교에서 장학생을 선발한다는 공문을 보낸 사실이 내 최선의 전부였다.

 

태권도장을 하면서 심신이 약했던 수련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이사를 포기하거나 이사를 갔어도 직접 출퇴근 시키는 학부모님들을 보면서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 이전에 태권도가 갖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중 수련생 가족 중 생사의 고비에 놓인 분들이 이제껏 두 분 계셨다. 마음이 아팠다. 위로를 드리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도복을 드리고, 빨리 건강을 찾아서 도복을 입으시고 수련하시라는 편지 같은 상장을 보냈다. 큰 감동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한분이 그 도복을 입으신다.

 

그리고 관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그분에게는 내가 준 도복이 생사의 기로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이다.

 

나의 가난들, 나의 열등감들이 한 순간에 내리는 비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태권도장 사범으로서 변해버린 정체성의 낡은 때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수련비를 받지 않거나 할인해준 것 역시 위로의 마음이 있었지만, 왠지 순수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리의 선한 행위들 모두가 어떠한 목적들을 가지고 있는데, 유일하게 그런 목적들이 파쇄당하고 순수한 위로의 마음으로 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의 끝자락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도복 한 벌 남기고 가져갈게 없는 인생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다시 고민을 해본다. 그리고 울고 있을 수련생이 걱정된다.

도복을 입는 순간 수련이 시작된다.

도복을 입는 순간,

그리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순간,

우리가 줄 수 있는 거라곤 위로가 전부일지 모른다.

 

도복을 입는 순간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평등의 상징인 낡은 도복 한벌을, 대대손손 물려줘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기대해본다.

 

[글 = 정준철 관장 | bambe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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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철
긍휼태권도장 관장

브랜드발전소'등불'대표
대한태권도협회 강사
TMP격파팀 소속
<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정준철 #칼럼 #이행웅 #이규형 #태권도복 #태권도 #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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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

    지도자로서 저를 다시 되돌아 보게 되었던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6-23 22:11:39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화이팅 입니다^^

    2019-06-22 05:18:34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태권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연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도자로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 다시한번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2019-06-21 15:01:45 신고

    답글 0
  • 태권도사랑

    글 잘읽었습니다.
    나를 다시 돌아보게하는 글입니다.
    진정한 사범님 이시네요..

    2019-06-21 14:36:29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