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윤병인과 도야마 간켄의 관계에 관하여

  


하나. '5+1 구조'로 이루어진 태권도의 DNA

태권도 5대 도장의 하나인 YMCA권법부의 창시자 윤병인. 태권도의 역사는 윤병인을 포함해 청도관의 이원국, 송무관의 노병직, 무덕관의 황기, 조선연무관의 전상섭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이전에 '태권도'라고 불리는 무술은 없었다. 이것이 객관적인 사실(Fact)이다. 그러므로 바른 태권도의 역사는 이들 5명의 선생들로부터 시작되고 정립되어야 한다.

이들 5명의 선생 중 이원국, 노병직, 윤병인, 전상섭은 모두 일본에서 유학하며 가라테를 배웠다. 5명의 선생 중에서 가라테를 직접 배우지 않은 것은 일본에 유학하지 않은 황기 뿐이다. 황기는 가라테를 도장에서 직접 배운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황기의 무덕관에서도 다른 4개 관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라테의 형(가타)을 배웠다. 그러므로 무덕관 역시 가라테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태권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의 창시자 최홍희 역시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웠다. 최홍희가 만든 ITF의 뿌리가 된 것은 오도관이다. 표면적으로 최홍희가 오도관의 창설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 볼 때 오도관은 청도관 출신 남태희와의 합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태권도는 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YMCA권법부, 조선연무관의 5개 기간도장에 오도관을 더한 '5+1 구조의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태권도의 초기 역사는 이 5+1 구조의 태권도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태권도 초기의 역사를 정립하기에 앞서 YMCA 권법부의 창시자 윤병인(1920~1983)과 그와 관련된 작지만 중요한 오해 한가지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윤병인과 일본 슈토칸(修道館) 가라테의 창시자 도야마 간켄(遠山寛賢, 1888~1966)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둘. 윤병인과 도야마 간켄은 무술 교류를 한 사이다?

윤병인(좌)과 도야마 간켄(우)

윤병인은 만주에서 권법을,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웠다. 윤병인이 만주에서 배운 권법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배웠는지 등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윤병인이 가라테를 누구에게 배웠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도야마 간켄이다. 그런데 도야마 간켄과 윤병인의 관계는 태권도사를 다룬 일부 자료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 '서로 무술을 교류한 관계'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서술되어 왔다.

이러한 주장이 퍼진 이유로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이다. 윤병인이 일본 니혼(日本)대학에 유학하던 시절, 한국인 유학생과 일본인 학생들 간에 갈등이 있었다. 이때 윤병인은 가라테 수련생들인 일본인 학생들을 모두 제압했다. 이에 이들의 스승인 도야마 간켄과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에서 도야마 간켄은 윤병인의 실력을 인정하고 서로 무술을 교류하는 관계를 맺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도야마 간켄은 윤병인에게 가라테를 가르쳐주고, 윤병인은 도야마 간켄에게 만주 권법을 알려주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연 도야마 간켄과 윤병인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무술을 주고 받는 '교류'를 하는 사이였을까?

도야마 간켄과 윤병인이 만난 것은 1939년 경이었다고 알려져있다. 이 때 윤병인은 갓 스무살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였고, 도야마 간켄은 50대 초반이었다. 오키나와 출신인 도야마 간켄은 당시에 이미 일본 본토에 가라테를 전파하던 명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에 니혼대학 가라테부를 지도하고 있었다.

윤병인은 도야마 간켄에게 가라테를 배우기 이전에 이미 무술의 실력자였을 것이다. 아마도 실전 겨루기에 관해서는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0대 초반의 윤병인이 50대의 초반의 당대 최고의 가라테 고수 중 한 사람으로 꼽히던 도야마 간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서로 '무술 교류'를 하는 사이였다고 볼 수는 없다.

도야마 간켄은 이미 30대 중반의 시절에 대만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해서 살았던 적이 있다. 이때 그는 중국 무술도 두루 섭렵하며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남방 계열의 권법을 주로 접했을 도야마 간켄에게 윤병인이 보여준 북방 계열의 권법은 생소하면서도 흥미로웠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윤병인의 권법이 팔극권에 가까울 것이라는 추측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서로 교류한 수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도야마 간켄은 젊은 윤병인의 무술가로서의 재능을 인정하고 제자로 삼아 가라테를 가르치면서도 윤병인의 권법에서 배우고 느끼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이 배움의 연장이고, 제자에게도 배우는 점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를 사제지간이 아니라 마치 동급의 무술가가 서로 교류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도야마 간켄의 제자 목록에 있는 한국인으로는 윤병인 외에도 김기황, 윤쾌병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도야마 간켄의 슈토칸 도장의 제자 목록에 사범으로 올라있다. 윤쾌병은 조선연무관의 창설자인 전상섭이 행방불명된 후 조선연무관에서 이름을 바꾼 지도관의 관장을 맡았다. 김기황은 6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해 태권도를 전파한 초기 사범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렇듯 도야마 간켄으로부터 가라테를 배운 태권도 초창기 사범들 중에서 윤병인만을 스승과 대등한 관계로 추앙한다면, 윤병인과 윤쾌병, 김기황 등과의 관계는 애매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윤병인은 도야마 간켄과 무술 교류를 한 것이 아니라, 무술을 배웠다고 분명하게 서술하는 것이 옳다. 도야마 간켄의 제자 중에서 가장 인정 받는 제자 중 하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도야마 간켄과 윤병인의 관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에 가까울 것이다.

진정한 태권도의 역사는 이러한 태권도의 뿌리를 캐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글. 박성진 기자 / 무토미디어(현 무카스), 태권도조선 등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글로벌 영문태권도 뉴스매체 WTM(wtkmedia.com)에서 편집장을 맡고 있다.]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태권도역사 #윤병인 #도야마간켄 #YMCA #황기 #무덕관 #조선연무관 #가라테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
  • 북풍

    다들 알다시피 한국 4대 무술은 모두 일본에서 왔음.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 한국 사람들이 유도는 한국거라고 주장을 하지 않지만(여전히 그렇게 주장하는 또라이도 있긴 함), 검도는 한국에서 건너간거라서 우리꺼고, 합기도도 건너갔다 돌아왔으니 우리꺼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음. 건너간게 언젠데? 그럼 1000년전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은 한국 사람? 그럼,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한씨, 황씨, 조씨, 이씨, 김씨 등은 중국 사람?

    2012-0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끽도

    사범이 일본식 표현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사범은 일본적 요속 배제된 무술지도자를 말함,.
    왜래어가 아닌 일반명사가 된 시점임, 하자만 노사라는 말은 중국식을 떠나서 무술지도자는 노사가 아니고 노사는 중국식 사용에서 그냥 선생님일뿐,. 간혹 일부 무술가들이 노사가 무슨 무술의 고급경지를 이른 무술사범을 이야기 하는듯 착각하는 모양.. 그리고 주안파. 아랫글처럼 "권"이란 중국발음 quán 이라 읽으며 法 fǎ 로 한국식으로 순화되서 주안파로 된걸로 볼수도 있슴 . 이건 내 생각도 그렇다는거지 정확한건 아님

    2012-01-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청풍

    주안파(Chuan-fa)는 권법(拳法)의 중국 발음. 특정한 무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 일본에서는 켄포(Kenpo)라고 읽음. 즉 주안파=권법=켄포. 노사(老師)라는 말은 아래의 지적처럼 라오스라고 발음하는 중국식 표현. 사범(師範)은 시한, 관장(館長) 칸초라고 발음하는 일본식 표현.

    2012-0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김사부

    창풍님 ^^ 제가 박철희 사범님 성함이 기엇나지 않았답니다

    물론 직계 제자는 아니시더라도 윤병인 관장님의

    명맥이시니 그렇게 말씀 드린것입니다 ^^

    실례였다면 송구스럽습니다 ! 아직 윤병인 관장님의

    제자분들이 계신데......기사의 내용은 좀.......객관적이지는

    못한것 같습니다.

    2012-0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끽도

    아랫글에 윤병인 노사님이라는데 노사(老師)는 중국식 표현이죠..병음으로 lǎoshī (라오스)라고 읽습니다 ... 우리말로는 그냥 선생님입니다. 무술사범이 노사도 될수 있지만 정확히 말해선 노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수학 선생들한테도 아니면 젊은 선생님한테도 중국에서 스승은 전부 라오스(노사)라 부릅니다..노사보다는 사범님이 바른 표현아닐까요?

    2012-01-2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박한

    윤선생님의 생전에 함께 수련을 하셨거나 얘기를 나눈 분들의 말씀이나 본인이 직접 하신 말씀도 있는데....미흡한 문헌적 언급자료에 의존하여 추측으로 역사를 논단해서는 아니 됩니다.그리고 무술을 직접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탁상공론으로 수련자들간 교류자들간 도반들간의 미묘한 관계를 예단하는 것 또한 웃기는 일입니다....그저 자신의 사고체계나 수준속에다 짜 맞추기일뿐...그 이상의 논란가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12-01-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창풍

    /김사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만... 제가알기로 김병수 관장님은 윤병인 노사의 제자가 아니라, 윤병인 노사의 YMCA권법부 초대 사범이신 박철희 노사님의 제자로 파사류를 전수받으신걸로 압니다.
    이에 자료를 보면 박철희 노사님의 장권과 김병수 관장의 장권이 매우 흡사합니다

    2012-01-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태권좋아

    가라데를 고집하신 분들이 어떻게 태권도의 역사의 시작점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최홍희가 없었다면 현재 태권도라는 명칭이 없었거나. 그들의 반대에 의해 생겼던
    태수도(또는 공수도) 라는 명칭으로 계속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2012-01-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김사부

    약간 오류가 있으시군요 ^^ 팔극권이 아니라 윤병인 관장님은 토조산 권법과 만주 주안파
    무술입니다(이것은 juanfa 라고 검색하면 유튜브에도 뜰 정도로 자료들이
    있습니다 가라데랑 상당부분 유사합니다) 좀더 자료를 알아보시면 좋을텐데요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자연류 가라데의 김병수 관장님이 그분의
    제자셨던걸로 압니다 .....좀 잘 알아보시구요 ^^ 그리고 무덕관은 태권도 이름을 굉장히
    반대했던 문파로.....태권도의 역사에선 제외해야 할것입니다...

    2012-01-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김사범

    바른 태권도의 역사는 이들 5명의 선생들로부터 시작되고 정립되어야 한다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분들은 카라테를 하신 분들이지 태권도를 시작하신 분들이 아니자나요. 태권도의 시작은 오도관으로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2-01-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