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욱의 무인이야기] 이여송을 혼낸 노인
발행일자 : 2011-10-10 18:59:24
<무카스미디어 = 허인욱 전문위원>
임진왜란과 이여송 1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은 요동(遼東) 철령위(鐵嶺衛) 사람으로, 명에 귀화한 조선인 출신의 요동총병관(遼東總兵官) 이성량(李成梁, 1526~1615)의 아들이다. 무예도보통지 제독검조를 보면, 이성량의 5대조인 이영(李英)은 평안도 초산 사람이었는데, 명에 귀의했다고 한다. 명사 이성량전에도 5대조기 이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고려 말 조선 초에 요동지역으로 건너간 집안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견해에 따라서는 이영의 아버지를 이승경(李承慶, 1290~1360)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승경은 원에 벼슬하여 요양성참지정사를 역임했다. 이승경은 씨족원류를 찾아보면, ‘성주 이씨’ 조에 이장경(李長庚)-이천년(李千年, 1256~?)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천년은 고려말에 참지정사(參知政事)까지 오른 인물로, 형제로는 백년(百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록이나 명사 등에서는 이승경과 연결되는 사실은 보이지가 않는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26년(1593) 9월 임자 기록을 보면, 이여송이 조선에 올 때, 그 아버지 이성량이 글을 주며, “조선은 바로 우리 선조의 고향이니, 너는 힘쓰라.”고 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 글을 이여송이 개인적으로 자신과 함께 다니는 접반사(接伴使)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접반사는 서애 유성룡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조상이 조선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여송은 여백(如栢)․여장(如樟)․여매(如梅)․여오(如梧) 형제와 함께 조선에 4만의 병력을 이끌고 원군으로 왔다. 그러나 이여송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도와주러 왔다는 명분하에 거들먹거리며 갖가지 횡포를 자행하면서 정작 왜군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에 분개한 유성룡(柳成龍)과 이항복(李恒福), 이덕형(李德馨)은 이여송에게 트집을 잡아 제대로 싸울 것을 재촉하여, 1593년 1월 드디어 남하하여 유성룡 등이 이끈 조선군과 합세하여 왜군을 대파하여 평양을 탈환하였다.
당시 평양전투가 일어나기 전과 관련해서 계서야담(溪西野談)에 다음의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선조 임진왜란에 명나라 장수인 제독 이여송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도우러왔다. 평양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안으로 들어가 웅거하였는데, 이여송은 평양의 산천이 아름답고 수려한 것을 보자, 갑자기 다른 마음을 품어, 선조를 흔들어놓고 그 곳을 차지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는 막료와 보좌관을 많이 거느리고 평양 연광정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때 강변 모래 시장을 한 노인이 검정 소를 타고 지나갔다. 군교(軍校)들이 비키라고 크게 소리 질렀으나 득도고 못들은 척 하며 소고삐를 잡고 천천히 지나갔다. 이를 본 이여송이 몹시 노하여 그 노인을 잡아오게 하였는데, 소의 걸음이 빠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군교들이 따라잡지를 못했다.
이여송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몸소 천리마를 타고 칼을 찬 채 노인의 뒤를 쫓아갔다. 소가 바로 앞에 걸어가고 있어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가 이여송이 탄 말이 나는 듯 달리는데도 노인을 끝내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몇 리를 가서 한 산마을로 들어가니 검정소가 시냇가 수양버드나무에 매여 있었다. 그 앞에 띠로 이엉을 이은 초라한 집이 있었는데, 대나무로 만든 문이 열려 있었다. 이여송은 노인이 이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말에서 내려 검 하나만 차고 들어가니 노인이 마루 위에서 일어나 맞이하였다.
제독이 노하여 꾸짖었다.“너는 어떤 늙은이 길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이처럼 당돌하게 행동하느냐? 나는 황제의 명령을 받아 백만 군대를 거느리고 너희 나라를 구하려 왔으니 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감히 우리 군대 앞에서 말에서 내리지 않고 함부로 타고 지나느냐?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노인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제가 비록 산촌의 늙은이이나 어찌 천장(天將: 명나라의 장수)를 알지 못하겠나이까? 오늘의 제 행동은 오로지 장군을 보잘 것 없는 이곳에 왕림하게 하려는 계책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간절히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말씀드릴 방도가 없는 지라 부득이 이런 계책을 행했던 것입니다.”
제독 이여송이 물었다.“부탁할 일이 무슨 일이냐? 말해 보거라”
노인이 말했다.“저에게 불초자식이 둘 있는데 글 읽고 농사짓는 일에는 종사하지 않고 오로지 강도짓만 일삼으며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습니다. 어른과 어린이의 분별도 알지 못하니 이는 곧 하나의 화의 근원이 되나 제 기력으로는 이들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장군의 신과 같은 용력이 세상을 덮을 만 하다는 소리를 듣고 장군의 신령한 위엄을 빌려 이 패륜아를 제거하고자 합니다.”
이여송이 말했다. “이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후원 죽당에 있나이다.”칼을 차고 죽당으로 들어가니 두 소년이 함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여송이 큰 소리로 질책하였다.“너희가 이 집의 패륜아들인고? 너희 아버지가 너희들을 제거하고자 하니 너희들은 삼가 나의 칼을 받아라!”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둘러 소년을 내리치자 그 소년들은 목소리 하나 얼굴 빛 하나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손안에 있던 죽간으로 칼을 막아내니 찌르지 못하였다. 소년이 죽간으로 칼날을 맞아 치자 칼날이 쨍하는 소리를 한번 내면서 두 동강이나 땅에 떨어졌다. 이여송은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다. 조금 있으니 노인이 들어와 아이들을 꾸짖었다.“어린놈들이 감히 어찌 이리도 무례한가?”
노인이 소년들을 앉게 하자 이여송이 노인을 향해 말했다.“저 패륜아의 용력이 비범하여 당해낼 수 없으니 노옹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소.”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조금 전의 말은 장난이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비록 여력(膂力)이 있다고 해도 그들 10명이 늙은 제 몸 하나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장군께서는 황제의 뜻을 받들어 우리나라를 원조하려 오셨으니 왜구를 소탕하여 우리나라로 하여금 기업을 다시 안정되게 하고, 장군님은 개선가를 부르며 본국으로 귀환하여 이름을 역사에 남긴다면 이것이 곧 장부의 사업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이러한 사업은 생각지 않으시고 도리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장군님에게 바라던 것이겠습니까?
금일의 거사는 장군님으로 하여금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계책이었습니다. 장군님이 만약 계획을 고치지 않고 쓸데없는 꿈을 고집하신다면, 제가 비록 늙었으나 장군의 목숨쯤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니 일에 힘쓰십시오. 산촌에 사는 사람의 말이 매우 당돌하오나 오직 장군께서 이를 헤아려 주십시오.”
이여송이 반식경이나 아무 말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기운 없이 있다가 이내 “예, 예.”하며 나갔다.
노인의 가르침을 받은 이여송은 이후 평양성 전투에 나가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명나라의 총책임자인 이여송을 훈계하는 노인과 두 아들의 이야기는 이여송에 대한 민간의 반발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글. 무카스미디어 = 허인욱 전문위원 ㅣ heoinu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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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랑도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2011-10-1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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