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욱의 무인이야기] 이여송과 일본 자객

  

임진왜란과 이여송 2


평양성탈환도 중 이여송으로 보이는 인물


<계서야담>에는 평양성 전투 이후 이여송을 위험인물로 느낀 일본군이 자객을 보내 이여송을 해 하고자 하다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명의 장군 제독 이여송은 임진왜란 때 5천 병사를 거느리고 조선을 도와 평양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왜의 추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 조금 물러나자 이여송은 승승장구하여 청석동(靑石洞)에까지 이르렀다.

청석동은 험하고 곁에 장애물이 많이 있었으며 수목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었고 계곡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갑자기 전면에 하얀 기운이 하늘까지 뻗치며 찬 기운이 사람에게까지 미치니 제독이 말했다.

“이는 왜인 검객 무리이다.”

이여송은 마침내 군대를 한번 잡고 한번 둘러싸고 한번 묶는 방법인 일자아(一字兒) 형으로 열어 주둔시키고, 말 위에서 쌍검을 뽑아 몸을 솟구쳐 창공으로 날아갔다. 군인들이 우러러보니 칼의 고리 소리만 쟁쟁하게 하얀 기운 안에서 울려나올 뿐이었다.

조금 있으니 왜인의 몸과 머리가 분분이 떨어졌고 냉기도 곧 걷히었으며 이여송은 유연히 말 위에 있었다. 이여송이 이끄는 군대는 북을 치며 행진하여 청석동 입구를 나왔다.

이여송이 벽제(碧蹄)에서 패한 뒤 군사를 개성부(開城府)로 퇴각시키고는 진군할 뜻이 없었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접반사(接伴使)로서 제독에게 나아가 군무에 관한 일을 의논하였다.

이여송은 그 때 마침 머리를 빗으며 말을 하였는데, 멀리 하늘가에 한줄기 흰 무지개가 먼 곳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제독은 서둘러 상투를 틀며 말하였다.

“검객이 오고 있소.”

이여송은 벽 위의 쌍검을 뽑아들고 침실로 피신해 들어간 뒤 문을 닫지 않은 채, 유성룡으로 하여금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동정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삽시간에 흰 무지개의 기운이 침실로 날아 들어오더니, 쟁쟁하는 소리만 연속해서 끊어지지 않고 들릴 뿐이었으며 냉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유성룡은 마음과 정신이 두렵고 두근거려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갑자기 방밖으로 발 하나가 쑥 나오더니 문지방을 차고 도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유성룡은 그 발이 제독의 발이라고 생각하였고, 또 발이 문을 차고 도로 들어간 것은 문을 닫으려는 의도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하여 드디어 일어나 문을 닫아주었다.

잠시 후 이여송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아름다운 미인의 머리를 들어 땅에 던졌다. 유성룡은 그 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조금 안정되어 축하하기를 마지않았다. 이여송이 말하였다.

“왜인 중에는 원래 검객이 많았었는데, 청석동에서 다 섬멸했었소. 이 미인은 왜인 중에서도 제일 고수여서 검술의 신통함이 천하무적이었다오. 내가 마음속으로 늘 그 생각에만 매여 있었는데, 지금 다행히 목을 베었으니 이제 다시 근심할 것이 없소. 그런데 그대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유성룡이 말하였다.
“문을 차고 도로 들어가시기에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여송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내 발인 줄 알고 문을 닫았소?”
“왜인의 발은 작은데 지금 보니 발이 크더이다. 그러니 어찌 장군의 발인 줄 모르겠습니까?”
“조선에도 인물이 있구료!”
“문을 닫고자 했던 까닭을 감히 묻나이다.”
“미인은 바다 위 공중의 광활한 곳에서 검술을 배웠기 때문에, 일부러 내가 작은 침방으로 들어가 그녀로 하여금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오. 칼싸움을 수십 합 동안 하다보니 미인이 점점 힘을 잃고 있었소. 혹시라도 그녀가 문을 나가 멀리 도망갈까 염려된 까닭에 문을 닫고자 했던 것이오. 만일 한번 문을 나가버린다면 벽해만리(碧海萬里)이니, 어느 곳에서 그녀를 잡을 수 있겠소? 오늘 일은 그대가 문을 닫았던 공이 진실로 크오.”

이로부터 이여송은 유성룡을 더욱 공경하고 중하게 여겼다.

󰡔계서야담󰡕의 저자인 이희준(李羲準)은 “내가 보건대 검술은 예로부터 숭상되었다. 원공(猿公)은 벽을 뚫는 재주가 신에 통할 지경이었고, 형가(荊軻)는 비수를 던졌으나 기둥에 맞았으니 계획이 허술하여 실패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들 모두는 제독(이여송)의 신통한 술법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평을 적고 있다.

실제 이여송의 무예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승정원일기󰡕 인조 26년(1648) 10월 13일(갑진)을 보면, 이시백(李時白)이 인조에게 이여송(李汝松)이 맨 주먹으로 홀로 수십 명의 적을 대적해 그들을 쳐서 도망가게 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 참조된다.

[글. 무카스미디어 = 허인욱 전문위원 ㅣ heoinu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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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한편의 소설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선 외교관 유성룡은 가만히 있고 중국장군과 왜놈이 서로 싸워대는 이야기가 참 재미 있네요.

    2011-10-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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