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욱의 무인이야기] 도적을 제거하다 - 전일상2
발행일자 : 2011-12-27 10:52:24
<무카스미디어 = 허인욱 전문위원>
<수산집>과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연경재전집, 硏經齋全集>에는 그가 나주영장이 되었을 때 도적을 제압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가 나주영장이 되었을 때는 영조 3년 4월이었다.
나주는 옛날부터 도둑이 많았는데, 전일상은 도둑 다스리기를 매우 혹독하게 하였다. 뇌물을 받거나, 주는 자는 모두 죽였다. 도적이 돈을 바치는 않는 상황에 대해 크게 우려를 하고, 밤마다 금성산(錦城山)에 모여 전일상을 욕하였다. 감히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일상이 자신을 시종드는 사람이 잠자는 것을 기다려 몰래 편한 옷에 철퇴를 가지고 그 소리를 좇아 왼쪽 산등성이로 갔다. 그리고는 오른쪽 산등성이에 올라 왼쪽 언덕의 도둑들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욕하였다. 왼쪽 언덕의 사람이 그 소리를 좇아서 산중간 지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전일상이 도둑에게 말하기를 “저는 순창(淳昌)의 도둑입니다. 나의 무리가 전일상에게 죽었는데, 화가 장차 내게도 미칠 것입니다. 내가 그의 배에 칼을 꽂고자 하나 힘이 홀로 하기는 불가능합니다.”라고 하였다.
허리를 풀어 사이에 꽂아져 있는 돈을 그 도둑 졸개에게 주며 말하기를, “술과 안주를 사오시오”라고 하였다. 도둑 졸개가 여러 술동이를 메고 한 마리 개를 끌고 왔다. 나무를 잘라 불을 피우고 전일상이 그릇 하나를 뒤집어 놓고 손으로 개를 반으로 쪼개 뼈까지 다 먹자, 도적이 절하며 말하기를, “장사요 나의 스승이 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전일상이 말하기를 내일 밤에 다시 만나자하여, 다음 날 다시 모이니 도적 여러 명이 늘어났다. 전일상이 말하기를, “말로 죽이는 것은 실제 손으로 죽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무리 중에 어찌 장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 수십 명의 무리가 함께 한다면 전일상을 죽이는 것은 손을 뒤집는 것 같이 쉽습니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밤에 다시 모이니 전일상이 더욱 술과 고기 안주를 더 많이 가져왔다. 모인 도둑이 다시 수인이 더해졌다. 전일상이 “내 무리가 수십이나 각각 7~8인을 모으면 곧 어찌 일상뿐이겠습니까. 나주성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대 무리와 더불어 약속하면 내 옛 무리가 몇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들을 모두 불로 오겠소이다. 그대 패거리가 아무 날로 기약하겠습니까”라고 하자, 도둑 무리가 “알겠다”라고 하였다.
이때 전일상이 그 요령을 도둑들에게 모두 알려주었는데, 도둑 무리가 두려하고 의심했다. 매번 모임을 마치고 돌아갈 때마다 번번이 속여 말하기를 “내가 어느 마을에 머물고 있으니 영으로부터 수십 리 떨어져 있소이다.”고 하였다. 도둑과 길을 나눠 영으로 돌아왔는데, 오고 가는 것이 거의 40리였다. 대개 9시부터 11시 사이인 을야(乙夜)에 나가서 새벽 1시부터 3시인 정야(丁夜) 혹은 3시부터 5시인 무야(戊夜)에 들어왔다. 그를 모시는 자들은 처음처럼 자고 있었고, 성을 지키는 이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일상은 몰래 성안의 장사를 뽑아서 약속한 날까지 각희(角戱)를 익히게 했다. 약속한 날 밤이 되어 모두 편한 옷에 철퇴를 숨기게 하였다. 그리고 몰래 속삭여 말하기를, “나를 따라 갈 곳이 있다. 너희들은 반드시 나를 너라고 하고 삼가 위아래를 나누지 마라. 어기는 자는 돌아와 반드시 곤장을 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염탐꾼을 뽑아 날랜 병사를 산의 네 곳에 숨기고 약속하기를 휘파람 소리가 들릴 때를 기다려 체포하라고 하였다. 일상을 따라 10여 인이 이르니, 모인 자가 6~70인이었는데, 모두 건장한 도둑이었다. 각자 검과 추를 휴대하였는데, 분위기가 매우 흉흉하였다.
전일상이 말하기를 “대장부의 무리가 모두 이르렀으니 내일 밤 먼저 부유한 한 집을 털어 시험해봤으면 합니다. 다음 날 밤 장사 6~7인이면 족히 전일상을 도륙하고 그 내장을 밟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다만 모두 함께 취해봅시다.”라고 하였다. 무리들이 “그럽시다”라고 하였다. 소를 여러 마리 잡고 술이 다시 돌았다.
전일상이 말하기를, “사내들이 취하였는데, 즐거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무리 가운데 노래할 수 있는 자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출 수 있는 자는 춤을 추고 수박(手拍)과 각희 중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도적이 좋아하고 모두 검과 철퇴를 풀어놓고 심하게 취해 시끄럽게 소리를 칠 정도가 되었다. 전일상을 따라온 자들이 검과 철퇴를 모두 숨겨버렸다.
전일상 또한 일어나 춤추기를 오래 하다가 홀연히 휘파람을 부니 종자도 따라서 모두 휘파람을 불었다. 숨어있던 병사들이 일어나 도둑들의 팔짱을 켜 체포하였다. 도둑 가운데 용감한 자가 빠르게 도망가지 전일상이 철퇴로 수 인을 때려 쓰려 뜨리니 무리 중에 감히 달아난 자가 없었다. 이로부터 나주를 둘러싼 여러 군에 도적이 없어져 개짓는 소리가 사라졌다.
'승정원일기' 영조 3년 10월 임인 기록에는 이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가 보인다.
나주영장 전일상은 올해 27인데 용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납니다. 몸에 전립을 쓰고 혼자 계곡 가운데 들어가 적의 정세를 탐지하였는데, 적이 전일상의 소리를 듣고 와, 한 번에 4합(合)을 겨루니 일상이 겨우 죽음을 면했다고 합니다. 일상의 일은 진실로 아름답습니다.
전일상이 도적 무리와 싸워 죽음을 겨우 모면했다는 기록이지만, 수산집이나 연경재전집이 훨씬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좀 더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말을 한 이중관(李重觀)도 내용을 자세하게 알지 못한 듯하다.
승정원일기 영조 4년 8월 을축 기록에, “일상이 말하기를, ”신이 노령(蘆嶺)의 적들에 대한 많은 보고를 들었는데, 내려갔을 때, 포장(捕將)과 서로 의논하여 관할 하에 있는 13읍에 영을 내려 각자 별도로 꾀로 사로잡게 하였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혼자서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 번은 나주 관할의 남평(南平)현의 백성의 집에 좋은 매가 있었는데, 전일상이 빌려서 수일동안 즐겼다. 그 후 돌려주려 할 때에 백성이 남평현령에게 전일상을 고소하였다. 남평현령은 대신의 아들로, 때마침 현령이 나주에 있었다. 그가 전일상을 맞아 의자에 앉아서 꾸짖었다. 그러자 전일상이 말하기를, “나는 비록 무부(武夫)이나 (그대의) 상관으로 그 위치에서 직분을 다하고 있는데, 그대가 여러 사람 앞에서 상관을 욕 먹이는 것이 가한 것인가.”라고 하더니, 종자를 불러 매를 가져오게 해 산 채로 찢어서 수령에게 던지고는 평소처럼 명하여 수레를 타고 나가버렸다. 앉아 있던 사람이 크게 놀랐다. 전일상이 매를 좋아했음은 그의 한가로운 일상을 그린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전일상은 절도사에까지 올라 죽었는데, 그 때 나이가 53세이고, 묘는 충남 홍천군 은하면 대율리에 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수산집과 연경재전집에는 도적들이 수박과 각저를 했다고 하여, 나주 지역에 수박과 각저가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글. 무카스미디어 = 허인욱 전문위원 ㅣ heoinu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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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해 묵묵히 맡은바 직무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여지네요...
고위 관료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며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자신이 있어야 나라도 백성도 존재하는법, 자신을 관리하는데 있어 조금은 부드러운
대인관계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2014-05-1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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