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테 텃밭 프랑스에 핀 태권도
발행일자 : 2010-11-23 10:11:52
<무카스뉴스 = 한혜진 기자>


69년 이관영 사범에 의해 첫 보급, 1995년 가라테협회에서 독립
프랑스 태권도 보급사를 이야기 하면 ‘가라테’를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유럽과 아프리카, 미주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그 중 가라테 텃세가 가장 심한 나라로 프랑스는 정평이 나있다.
한 때 태권도 보급이 한 창일 무렵 당시 한인 태권도사범들에 대한 추방명령까지 받았다는 후문이다. 프랑스에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갔다가 심한 텃세에 참지 못하고 가까운 스페인으로 넘어가 정착한 사범도 한두 명이 아니다.
수십 년째 세계가라테연맹(WKF) 회장국을 맡았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강국이다. 유사 무술인 태권도가 설 곳은 좁았다. 방송국마저도 태권도를 ‘코리안 가라테’로 소개했다. 강한 텃세와 열악한 생활환경을 딛고 한인사범들에 의해 가라테 텃밭인 프랑스에도 태권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김용호 사범은 “프랑스 사람들은 동양무술을 매우 신비롭게 생각하며 좋아한다. 가라테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동양의 철학이 겸비되지 못해 수련생들의 이탈이 점점 늘어났다”며 “처음 코리안 가라테라고 갖은 텃세와 어려움을 겪던 태권도가 철저하게 빈틈을 파고들어 보급 활성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태권도가 처음 보급된 시기는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물세 살이던 젊은 이관영 사범(64)이 최초로 태권도를 개척했다. 이후 방서홍, 김용호, 이문호, 김종완, 故 이만우, 故 여승구, 이용선, 박문수, 강성식, 정삼두, 이원식, 이성재, 최윤수, 변경숙 등 한인사범 13여 명이 파리를 비롯해 리옹, 뚜르즈, 리스, 루왕 등 프랑스 전역에 보급했다.
프랑스에서 태권도가 꽃이 핀 시기는 1995년이다. 태권도의 역사적인 날로 ‘태권도의 날’이 지정된 배경이기도 한 1994년 9월 4일 파리 라데팡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정식종목에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이 계기로 프랑스 내 태권도는 가라테협회 산하에 한 분과에서 독립 할 수 있었다.
가라테협회에서 셋방살이 할 때만 해도 서러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태권도 보급이 활성화 되자 막지는 않았으나, 단증은 가라테 단증을 발급받도록 강제조치 했다. 그래서 95년 협회 독립 이전까지는 태권도 수련생이 승단심사를 보면 ‘가라테 단증’을 받았다.
“가라테협회 산하에 있을 때 서러움을 말로 다 하지 못한다. 95년 자체적으로 독립했을 때 식민지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해방을 맞는 기분 이었다. 태권도는 이제 프랑스를 대표하는 무술스포츠이다. 가라테든 유도든 어느 스포츠든 태권도를 우습게보지 않는다.”한 한인 개척 사범의 후일담이다.
2009년 기준 프랑스 내 태권도 수련인구는 약 5만여 명에 달한다. 매년 국기원을 통해 1천 여 명의 승단 자를 배출한다. 전국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는 도장과 클럽은 900여 곳이다. 수련생과 수련장은 모두 태권도협회가 관리한다. 협회 회원은 매년 32유로(한화 4만8천원)를 지불해야 자격을 갖출 수 있다.
프랑스태권도협회에 유일하게 한국인으로 활동 중인 김종완 사범(기술위원장)은 “프랑스는 가라테 중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유럽을 대표하는 태권도 강국이 되었다”며 “한인 사범들이 불모지에서 개척하지 않았다면 프랑스에는 아직도 태권도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30년 전만해도 태권도는 가라테에 비해 수련인구나 클럽 수 등에 모든 부분에서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가라테는 약 10만여 명으로 태권도에 비해 2배 가까이 수련인구가 많다. 눈여겨 볼 것은 태권도는 매년 수련인구가 늘어나는 반면, 가라테는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 태권도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유럽선수권 및 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해 유럽 내에서 ‘강국’으로 통한다. 특히 최근 장애인 태권도에 큰 관심을 갖고 지원한 결과 지난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1회 WTF 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부터는 태권도를 통해 한국과 우호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주불대사배 태권도대회를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와 자매결연 하여 매년 태권도 수련생이 한국을 방문해 태권도와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한혜진 기자 =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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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영 사범님 이전에 이유선 사범님이 최초입니다. 이유선 사범님이 최홍희 장군 부름으로 미국으로 가시면서 대타로 이관영 사범님이 오신거고요. 그리고 프랑스 개척에 힘든 이유는 당시 프랑스 대사와 최홍희 장군의 사이도 큰 문제가 되었고요. 최초 유럽 시범에서 프랑스를 안간 이유도 거기 있었죠.
2010-11-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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