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관 초대 관장 이원국, 파란만장한 태권도 인생
발행일자 : 2010-10-29 17:17:37
<글 =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 소장>


[이경명 칼럼] 이원국의 태권도교범

그의 저서‘태권도교범(1968)’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필자가 처음으로 우리 한국에 태권도를 보급 시킨 지 어언간 20여개 성상(星霜·햇수)을 보냈다. 돌이켜보건대 1944년 당시 일제의 포악한 최후발악의 독아(毒牙)에서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하는 길은 오직 자라나는 이 나라 청소년들을 심신단련에 의한 정신무장과 아울러 육체의 무장이라는 것을 절실히 통감하고(이하 생략),”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 탈고한 후 귀국하여 간행케 됐다. ‘태권도의 유래’에서 이원국은 “태권의 기원을 어떤 특정한 인물이 언제쯤 창시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인류가 발생한 이후 오늘날까지는 많은 사람에 의해 연구 첨가되어 계승된 끝에 현대의 태권으로 발전한 것이다”라 한다.
태권도의 특징과 가치에 대해 그는 이렇게 썼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수련할 수 있다. 장소,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수련할 수 있다. 도구가 필요 없고 신체상의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 등이 특징이다. 태권의 가치는 이상적 호신단련법이 그 하나요, 이상적 건강장수법이 그 두 번 째요, 이상적 정신수양법이 세 번째다.
태권은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인도(正義人道)를 수호하기 위해 항상 온공(溫恭) 겸양의 미덕으로서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말이다. 이것이 곧 태권의 올바른 정신으로서 이는 태권의 모든 형(품새)에서 여실히 표현되어 있다. 기술이란 그 정신을 체득하는데 요하는 긴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술(術) 즉 도(道)란 기술을 통해서 정신을 체득한다는 것에 있다.
이원국의 태권도교범
‘태권도교범(1968)’ 부록에 대한태권도협회 제정형(이하 품새)이 보인다. 팔괘 1장부터 8장까지와 유단자 품새가 그것이다. 유단자 품새는 지금의 품새 이름과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있다. 지금의 고려, 평원, 일여 품새는 원래 평원은 백제, 일여는 신라 품새(이름)이었던 것이 ‘나라 이름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바뀌게 되었다. 제작 당시 고려의 품새선은 ‘|’ 자, 15품수였던 것이 지금의 고려는 품새선은 선비 ‘士’ 자 품수는 30개로 구성돼 있다.팔괘 품새는 품새명(名)과 품새선 등 여러 측면에서 합리적이 않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폐기되고, 태극 품새가 새로이 제정된 것이다. 현 태극 품새는 역시 1장부터 8장으로 구성돼 있다. 태극 품새선의 왕 ‘王’자는 ‘하나로서 천지인 셋을 꿴 것’을 뜻한다.
태극 품새가 ‘王’자 품새선이라 하지만. 품새선 상의 동작 배치는 일률적이지 않고 각 장(場)은 괘의 음효와 양효(陽爻)에 따라 다르다. 그로인해 동작의 장단(長短·길고 짧음)이 결정되는 것이다.
태극 품새의 각 장은 건(乾·하늘), 태(兌·못), 이(離·불), 진(震·우레), 손(巽·바람), 감(坎·물), 간(艮·산), 곤(坤·땅) 순서의 여덟 현상을 말한다. 품새에서 리듬인 속도(‘이어서’)를 결정짓는 연계동작(1~5개 동작의 연계)과 음효 선상(線上)의 동작의 짧음 등, 각 장의 뜻과 상징적 선율을 같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극 2장은 ‘팔괘의 태(兌·☱)’를 의미하며 태는 못을 나타내며 속으로 단단하고 겉으로는 부드럽다는 뜻이다 태극 2장은 모두 18품수에 23동작수이다.품새선 ‘다3 라3’ 방향은 음효로 동작(순서 11~12)이 짧다. 그리고 순서 8~9. 16~18 품은 연계동작으로 ‘이어서’ 빨리 해야 한다. 특히 순서 16~18(‘나’방향)은 못(호수)에 바람이 일면 잔잔한 물결이 일듯 유연하면서도 빠르게 하는 것이 태극 2장의 진수이다.
앞서 이원국이 썼듯 “기술을 통해서 정신을 체득”한다는 것에 술 즉 도의 철리(哲理)가 있듯 품새에 담겨 있다. 해서 공인 교본에는 품새의 의미, 품새선, 품새설명 요약 순으로 정리되고 있다.
지은이가 강조하고 있는 ‘태권의 가치’는 점진적 수련 체계로서, 먼저 이상적 호신단련법에서 이상적 건강 장수법으로 나아가고 결국은 이상적 정신수양법이 최고의 가치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원국의 일생도 역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1951년 1·4후퇴 이후에 일본으로 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63년 3월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청도관 창설자 이원국은 그의 생존 시 명함은 “한국태권도 창시주(創始主), 총재 이원국(李元國)”으로 새겨져있다.
(사진 출처 : http://cafe.naver.com/woorimuye.cafe)
이경명 칼럼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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