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 -17]명승부의 산실-한일전 2부
발행일자 : 2009-12-09 17:13:14
<글 = 황현철 前 한국권투위원회 총무부장>
<1990년대 28전 16승(8KO) 11패(3KO) 1무승부>
1990년 1월 13일과 14일 두 체급의 타이틀매치가 한일전으로 벌어졌다. 국내 경량급과 최중량급의 슈퍼스타로 군림하던 유명우와 백인철은 각각 일본인 도전자를 맞아 7회 KO승으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1990년대 복싱계의 시작을 힘차게 열어젖히는 순간이다. 그러나 한 달 후인 2월 7일 WBC 스트로급 챔피언 최점환이 일본 원정에서 오하시 히데유키에게 보디블로우를 맞고 9회 KO패로 타이틀을 상실한다.
장정구에게 두 차례 패했던 오하시의 당시 승리는 1987년 10월 이후 2년 4개월 동안 일본 복서의 세계타이틀 도전 21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일전이 되었다. 같은 해 7월에는 WBA 플라이급 챔피언 이열우가 레오파드.다마쿠마에게 10회 KO패 당하며 타이틀을 풀어야했다. 최점환과 이열우는 모두 두 체급을 제패한 챔피언이었고, 오하시는 장정구에게, 다마쿠마는 김용강에게 각각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을 가진 복서들이어서 국내 복싱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이듬해인 12월 17일,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강의 챔피언 유명우는 WBA Jr.플라이급 타이틀 18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이오카.히로키에게 2대 1로 판정패했다. 충격적이었다. 두 번의 판정 번복 끝에 결정된 이오카의 타이틀 획득은 일본에서조차 거의 불가능하다는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었다. 프로 첫 패배의 아픔을 겪은 유명우는 오랜 장고 끝에 재기, 11개월 후의 리턴매치에서 시원한 승리를 거두며 타이틀을 되찾아 온다. 이오카에게 "그동안 챔피언벨트를 가지고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긴 유명우는 아직도 국내 프로복싱 역사상 유일하게 자신을 이긴 상대에게 설욕하고 타이틀을 재탈환한 챔피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쉽지만 홍수환(알폰소.사모라), 박찬희(오구마.쇼지), 김환진(도카시키.가쓰오), 서성인(김지원), 변정일(야쿠시지.야스에이), 이형철(아리미.고이치아), 김봉준(최희용), 박영균(엘로이.로하스), 조인주(도쿠야마.마사모리) 등 기라성 같은 챔피언들이 패한 후 재도전에서 모두 실패한 바 있다.
1993년을 기점으로 국내 프로복싱은 1차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7월에 유명우가 호소노 유이치와의 방어전을 끝으로 명예롭게 은퇴했고, 11월에는 문성길이 호세 루이스 부에노에게 한 차례의 다운을 빼앗고도 석연치 않은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상실한다. 12월 4일 박영균 역시 홈 링에서 엘로이.로하스에게 찜찜한 판정패로 9차 방어에 실패하더니 12월 23일 변정일은 일본 원정에서 야쿠시지 야스에이에게 판정패했다. 하나 남은 타이틀마저 상실하고 만 것이다. 변정일과 야쿠시지의 경기는 야쿠시지의 홈 링인 나고야에서도 도둑판정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편파판정으로 적어도 변정일이 5점 이상 이긴 경기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프로복싱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위태로워지면서 불과 40일 사이에 세 개의 타이틀이 이상한 판정으로 모두 날아가고 졸지에 국내 프로복싱은 무관으로 전락했다.
9개월 후인 1994년 추석, 일본에서 이형철이 오니즈카 가쓰야를 통렬한 9회 KO로 꺾고 낭보를 전했다. 출중한 외모로 현재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니즈카는 이형철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명예롭게 은퇴할 계획이었다. 1995년 10월에는 동양챔피언 최용수가 아르헨티나에서 WBA Jr.라이트급 타이틀을 획득하고 일본으로 원정, 학사복서 미타니 야마토를 1차 방어전과 3차 방어전에서 연달아 판정으로 꺾고 적지 방어에 성공했다.
1997년 5월 국내에서 마쓰모도 고지의 도전을 뿌리친 뒤 5개월 후에는 일본에서 숙적 하타케야마 다카노리와 무승부로 6차 방어전을 마쳤으나 11개월 후의 재대결에서 간발의 차이로 판정패, 결국 타이틀은 하타케야마에게 넘어갔다. IBF Jr.라이트급 세계챔피언 유환길 등 유명선수들을 여러 명 배출한 전 와룡체육관장 유화룡씨가 도일하여 지도한 하타케야마.다카노리와 최용수의 2연전은 1990년대 한일 양국의 최고 명승부로 첫 손에 꼽힌다.
이듬해인 1999년 9월에는 WBC S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가 일본에서 2체급 챔피언을 노리던 야마구치 게이지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판정승으로 1990년대의 한일전 대미를 장식했다. 1990년대에는 한, 일 양국이 총 28번 겨뤄 한국이 16승(8KO) 11패(3KO) 1무로 승률에서는 앞섰지만 최점환, 이열우, 유명우, 최희용, 변정일, 최용수 등 무려 6명의 챔피언이 일본에서 타이틀을 풀어야만 했다. 또한 유난히 편파판정이 많았던 시기로 임재신 vs 오니즈카, 이승구 vs 오니즈카의 시합은 변정일 vs 야쿠시지의 1차전과 더불어 대표적인 편파판정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000년대 5전 2승(2KO) 3패(1KO)>
1998년 8월 조인주가 WBC S플라이급 챔피언에 등극한 후 1999년 10월 최요삼과 백종권이 2주 간격으로 세계타이틀을 획득했다. 국내 프로복싱은 1993년 이후 6년 만에 트로이카 챔피언을 보유하게 됐다. 2000년 5월 백종권이 미국에서 호엘 카사마요르에게 5회 TKO패한 뒤, 같은 해 8월 조인주도 일본에서 도쿠야마 마사모리(한국명 홍창수)에게 판정패로 6차 방어에 실패한다. 북한 국적의 재일한국인 3세 홍창수의 승리는 이오카가 유명우에게 승리한 것과 버금가는 이변이었다. 조인주는 이듬해 5월 도쿠야마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설욕전을 펼치지만 강력한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방에 5회 KO패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2월에는 영원한 챔피언 최요삼이 적지에서 야마구치 신고에게 10회 TKO승을 거둬 WBC L플라이급 3차 방어에 성공했다. 2004년 7월에는 지인진이 스가마 에이이치에 역시 10회 KO승, 영국에서 쟁취해온 WBC 페더급 타이틀을 지켜냈다. 그러나 2006년 1월 후쿠오카에서 노장 코시모도.다카시에게 아쉬운 판정패로 타이틀을 넘겨주고 만다. 같은 해 12월 지인진은 코시모도를 7회에 녹아웃 시킨 새 챔피언 로돌포 루디 로페스(멕시코)를 국내로 불러들여 판정승, 재관에 성공했다. 2000년대에는 현재의 복싱 인기를 반영하듯 10년 동안 불과 다섯 차례의 세계타이틀매치 한일전만 벌어졌고 2승(2KO) 3패(1KO)로 일본이 한 발 앞섰다.
2010년대에는 양국 복싱팬들을 열광시킬 세계타이틀 한일전이 많이 양산되기를 기대한다.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작성하기
-
김강ㅅ..씨..애들에게...빌려달라.마시요.60세가.대서.....taekodo.애들다사긲덜......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어리버리띄이다.......백씨.김씨에게...500띄이다..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상금..300백.띄이다..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상대들이..격기.참프..킥박싱8차방어.참프애들상대...어라...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상대에게..발차기.사용이..ko...패...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상대.일참프.상대....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킥박싱.세계참프.참가.실패..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스파링.상대..8차방어....기득...아...슬프다...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 -
.박싱..스파링...참어리버리..ko,패...1억팔려...
2009-1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