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현철의 복싱인사이드-15] 관장님은 ‘챔피언’
발행일자 : 2009-11-05 17:28:44
<글 = 황현철 前 한국권투위원회 총무부장>


박환영, 윤석현, 김용선, 유명구, 곽경석 은퇴 후 재기 노력
서글픈 현실
한국챔피언 그리고 프로복서는 운동만으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세계에 즐비한 강자들과의 대결에서 살아남아 정상을 정복하려면 24시간 운동만 생각하고 훈련에 몰두해도 부족하다. 정신과 신체의 모든 리듬을 시합에 맞춰 컨디션을 조절해야 한다. 직업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그럴 수가 없다. 동양챔피언이 되어도 생활은 넉넉하지 못하다. 경기가 자주 있거나 정기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최고의 자리인 한국챔피언이 되어도 변변한 스폰서조차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선수들은 대부분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복싱은 두 번째가 될 수밖에 없고 고된 일과를 마친 후 샌드백을 두드려야만 한다.
세계챔피언이 된다면야 경제적 어려움들이 한 방에 해결되겠지만 실력 외에도 비즈니스가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기약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당장의 생계문제에 직면한 선수들 중에는 좋은 자질을 갖고도 운동을 포기하는 유망주가 많아졌다.
몇 년 전부터 체육관을 인수하여 직접 운영하면서 현역을 병행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링을 떠나야 했던 많은 선수들이 다시 컴백하는 발판이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본인의 전공을 살려 생계를 유지하면서 선수생활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될 수도 있다. 매일 수십 명의 관원들을 지도하고 자신의 운동을 챙기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지만 다른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 안정된 체육관 경영과 챔피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관장 겸 선수들을 소개한다.

PABA 챔피언 시절 박환영 평촌체육관장
지도자를 병행하는 선수들김정범과 더불어 국내 프로복싱 중량급의 간판스타인 박환영(31)은 평촌체육관장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은 후 링에 복귀했다.
작년 5월 4년 만에 재기 후 5연승(4KO)을 거뒀고, 코리안 콘텐더 웰터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오는 27일 호주에서 OPBF(동양태평양) 타이틀 도전을 앞두고 있다. 낮에는 태양체육관에서 전 WBA Jr.미들급 챔피언 유제두 관장의 지도하에 훈련을 하고, 밤늦게까지는 자신의 체육관에서 관원들을 지도한다.

코리안 콘텐더 MVP로 선정된 윤석현 관장
은퇴 6년 만에 재기, 코리안 콘텐더 미들급에서 우승한 윤석현(37)도 윤석현복싱클럽의 관장이다. 역시 낮에는 소속인 대원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이후 시간에는 후진을 양성한다. 적지에서 동양타이틀을 두 차례나 획득했던 베테랑답게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재기 후 4연승(3KO)으로 코리안 콘텐더 MVP까지 거머쥐었다. 경량급 넘버 원 손정오(28)도 생활고로 은퇴한 뒤 체육관 경영으로 기반을 닦고 컴백을 선언했다.
한국 라이트헤비 초대챔프 김용선 BHA관장
한국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김용선(39)은 1993년 은퇴했다가 무려 14년 만인 2007년 6월 복귀하여 한국타이틀까지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수지BHA체육관장으로 두 명의 외국인 신인왕을 배출하는 등 지도자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다 챔피언의 꿈을 위해 재기한 케이스다. 수원위너스복싱클럽 최용석(36) 관장은 슈퍼미들급 동양챔피언 출신으로 8년 만에 재기하여 3연승을 기록 중이다.
한국랭킹 1위 유명구 관장
2003년도 우수신인왕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유명구(30, 본명 배영길)도 고향인 김해에서 체육관을 개관하고 컴백했다. 경량급 선수층이 워낙 얇은 탓에 2년이 넘도록 1위에 랭크되고도 공석인 한국타이틀의 결정전조차 갖지 못했던 그는 11월 6일로 예정되었던 한국타이틀매치가 스폰서 부족으로 취소되는 등 불운이 계속되고 있다.전 PABA 슈퍼웰터급 챔피언 윤인영(35), 전 한국 웰터급 챔피언 황준철(29) 역시 관장님 겸 선수로 활동하면서 챔피언벨트까지 차지했다. 현재는 나란히 슈퍼웰터급 1위와 2위에 랭크된 상태다. 미들급 3위의 김병훈(36), 7위 김용우(32)도 부산과 대구에서 각각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남체육관tj 코치로 재직하는 PABA 챔프 곽경석
또한 자신이 소속된 체육관에서 코치로 근무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선수들도 많다. 현재 PABA 슈퍼웰터급 잠정챔피언인 곽경석(32)은 한남체육관에서 관원들을 지도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기량이 더욱 성장하고 있다. 작년 9월 진도에서 PABA 타이틀을 획득한 후 금년 5월에는 터프가이 김현일에게 그림 같은 원 펀치 KO승을 거두는 등 상승세다. 지난 7월 기적적인 승리로 한국 슈퍼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김성태(25) 역시 안양미래체육관에서 코치로 재직 중이다.아마추어 스타 출신의 전 한국챔피언 권일(33)은 더블에이치복싱클럽에서, 투타임 밴텀급 챔피언 김성국(28)은 대구달서체육관에서 각각 코치 겸 선수로 활동한다. 이 외에도 박성우(복싱히어로), 정재광(정재광복싱클럽), 임흥식(부천풍산체육관), 김주태(팀제이티복싱짐) 등은 은퇴 상태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현역 복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천안업복싱클럽 김연집 관장은 이재명, 정재섭 등 두 명의 한국챔피언을 보유하고 있어 작년 12월 컴백전에서 승리를 거두고도 체급이 겹치는 제자들을 위해 다시 은퇴하기도 했다.
관장 겸 선수들은 주로 낮에 본인의 훈련을 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관원들과 씨름한다. 일반 회원과 선수로 육성할 회원을 구분하여 지도하다 보면 몸은 금세 파김치가 된다. 체육관을 정리하고 문 닫는 시간은 보통 밤 11시가 넘는다. 이때부터는 인근 지역에 체육관 홍보물을 돌리고 새벽 2~3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체중 조절을 해야 하므로 관원들과의회식이나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관원들을 관리해주며 자기 자신도 관리해야 하니 그 생활이 얼마나 고될지 쉽게 짐작이 간다.
프로복싱의 황금기였던 70~80년대에는 관장 겸 선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몇몇 특급선수들이 간혹 셀프 매니지먼트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거의 모든 선수들은 고용된 트레이너와 함께 훈련에만 전념한다. 링에서는 선수, 링 밖에서는 관장이 늘어나는 현상은 프로복싱의 오랜 침체가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복싱과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분명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관장 겸 선수들의 멋진 투혼을 기대한다.
* 황현철의 복싱인사이드는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번주는 편집부의 사정으로 지연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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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잘 보았습니다. 많은 제도들이 선수들에게 좋은 쪽으로 개선이 되었으면 좋을텐데요......
2009-11-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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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개혁돼면 좋은선수들이 많이 쏟아져나올텐데요~
2009-11-0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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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철 기자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 현실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어요
어떻게보면 답답하고 어떻게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관장이면서 전에 관장에게 시합끝나면 화이트 머니를 줘야 한다는 우리 복싱이 답답합니다
이런 모순을 빨리 정리해야할것 같은데요2009-11-0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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