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의 고장 `이가`의 참극

  



닌자의 고장인 이가는 핫도리, 쯔게, 가와이, 나가따 등의 집안이 분할해서 다스리고 있었다. 이들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에는 모두가 단결해서 대항하기로 약조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이가를 정복하려던 다이묘들은 번번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가의 주민들은 거의 모두가 닌자들인데다가 자기 고장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군사를 동원해도 그들을 격파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이가도 쑥밭이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1578년 2월 한 사람의 이가모노(=이가의 주민)가 눈쌓인 산길을 넘어 기따바따께 노부오라는 장수가 지키는 이세마쯔 게시마 성의 문을 두드렸다.

기따바따께 노부오는 당시 일본 천하를 통일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이다. 이가를 배신한 사나이는 지금 이가는 손발이 맞지 않아 각 집안의 단결이 느슨해졌으니 이가를 치려면 바로 지금이 기회입니다라고 일러 바쳤다. 이 한마디로 이가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기따바따께 노부오는 때를 놓칠새라 군사를 이끌고 이가를 쳐들어 갔으나 첫번째 침공은 이가세의 완강한 반격에 막혀 실패하고 말았다.

무엇이라? 노부오가 이가의 조무래기들한테 당했다고?
성미가 격하기로 소문난 오다 노부나가는 아들의 참패와 이가세의 반항에 분노가 치밀어 기노시따 도오끼찌로(=뒷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젊은 시절 이름)등과 작전을 짜고 두번째 침공에 나섰다.

오다 노부나가의 이가 2차 침공작전이 세워진 며칠 뒤 고오가 닌자들이 변장해서 이가의 땅에 나타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맹을 맺고 있던 이가와 고오가의 닌자들이 이 침공을 계기로 갈라서게 된다.

1581년 9월 오다 노부나가는 5만의 대군을 이끌고 이가 닌자의 몰살에 들어갔다. 이가의 병력은 고작 합쳐야 몇 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우람한 거인과 자장걸음의 어린이가 대결하는 꼴이었다.

신식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오다의 군대에게 이가세도 많지는 않았으나
조총을 쏘면서 게릴라전으로 맞섰다. 그러나 워낙 수적으로 우세한 오다군에 밀려 7일만에 대세는 기울고 말았다.

그래도 약 한달을 버텼으나 가시와라성의 함락으로 이가의 반항은 끝나고 말았다. 잔인하기로 소문난 오다 노부나가는 가차없이 이가의 아녀자들까지도 참살했기 때문에 이가의 땅은 살육과 초토. 지옥이었다.

어느 다이묘도 굴복시키지 못했던 이가를 그야말로 잔혹하게 쑥밭으로 만든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부하인 아께찌 미쯔히데의 반역으로 목숨을 읽고 만다. 그 아께찌 미쯔히데를 무찌르고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천하통일을 이룬다.

과대망상증에 걸린 도요토미는 명을 치겠으니 길을 빌리자는 억지명분을 내세워 임진왜란, 정묘왜란 등을 일으켜 피차간에 많은 사람을 죽이고 세상을 떠나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만을 기다렸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쳐 없애고 일본천하를 빼앗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도쿠가와 막부(=무사가 이끈 정부)는 대대로 닌자들을 고용해서 각지방의 다이묘들의 움직임을 정탐시켰다.

정탐하는 이유는 첫째 다이묘들의 반란 음모를 미리 알아내는 것이고, 둘째는 다이묘와 그 집안의 비리가 드러나면 영지(=영유하고 있는 땅)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쓰러지고 소위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통치권이 천황에게로 돌아간 뒤 영토확장을 위해 조선반도와 중국대륙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닌자들의 후예는 남아있었고, 그들은 조선에 건너와 정체를 숨기고 침략의 선봉으로 활약했다.

일본의 국익을 위해 동학군이 더욱 확산될 때까지 민비의 암살부대로부터 전봉준을 지키라는 밀명을 받은 것은 바로 조선에 건너왔던 닌자들이었다.
#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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