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단련하는 것은 技術이고, 몸과 마음을 모두 단련하는 것은 道다

  



예전에 장수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전장에서 베어진 장수들의 목을 쭉 늘어 놓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중 가장 장수답게 죽은 이는 누구인가?"

각각의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장수다운 사람의 얼굴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이래서 장수답고 저 사람은 저래서 장수답고 하며,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리곤 누구의 말이 맞는가 결정을 내려달라는 듯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승은 만면에 웃음을 띈 장수의 목을가리키며

"저사람이 바로 진정한 장수다 저 모습을 보라 얼마나 죽음에 초연해 있는가!"란 이야기가 있다.

하루를 살아도 후회없이 웃으며 죽을 수 있는 삶, 이것이 바로 도의 시작이란 의미의 글이다. 스승이, 전장에 나가 내가 살고 남을 죽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기 전, 진정한 삶에 대해 가르친 것도 도에 가까움이다.

한의학에선 심신일여(心身一如)-몸과 마음은 하나-란 말을 참 많이 쓴다.
몸만 단련하면 마음 공부가 저절로 되고 마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몸 단련은 저절로 된다는 뜻이 아니라, 몸과 마음 어느 하나 올바른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결국 기술(技術)은 몸기운이고 도(道)는 몸과 마음기운이란 소리다.

얼마전에 본 영화중 식스센스(Six Sens 육감)란 영화가 생각난다. 장자에 나오는 호접몽이란 글이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는데 참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육감이란 오감(味-맛, 色-색깔, 聲-소리, 香-냄새, 觸-촉각)을 넘어선 또다른 감각이란 뜻인데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말중에 하나이다. 한의학에선 오감에 혼(魂)신(神)의(意)백(魄)지(智)라 하여 오감에도 모든 정신적 감각을 이미 연결시켜서 생각해왔다. 우리에겐 상당히 일상적인 것들이 서양에서는 신기하게 보이나보다.

그럼 도는 어떻게 닦을까?

하나의 물건이 있다 가정하자. 빛이 있는 한 그 물건에 대비한 그림자는 생길 것이다. 빛을 외부의 자극으로, 물건은 사람(자아)으로, 그림자는 사람의 어두운 면으로 대치시키면 도의 끝은 그림자가 없어짐이다.

자아가 강해질수록 외부자극에 대한 왜곡이 심해지고 그림자가 어두워지며, 자아가 없어질수록 외부자극을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그림자가 없어진다. 곧 나를 버려가는 과정이 도를 닦는 과정이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더라도 훈수둘 때 수가 많이 보이듯 혼란의 와중에 스스로를 관조하여 중심을 잡고, 멀리서 바라보듯 상황을 즐길줄 알면 이미 도는 다 닦은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아무것에나 무슨 무슨 도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태권도는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몰라도 정말 이름 한번 잘 지었다. 한국에서 나서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세계적이 되어버린 태권도.

이미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적 도가 세계에서 먹힌다는 말도 되리라. 하지만 태권도를 관심깊게 바라보는 사람의 하나로, 이즈음의 태권도가 과연 도자를 붙일만한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현란한 손기술 발기술에 열광하는 대중을 위해 기술을 배우는 것 보다는, 한 동작 한 동작마다 열과 성을 다하는 소수가 진정한 태권도인이라 생각한다.

가치관이 혼란되고, 이렇다할 가치관마저 없어진 현실에서 우리에게 삶의 기준을 정해주는 그 것. 태권도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 2001년 새해에 태권도에 바라는 조그만 소망이다.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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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성수

    세상을 살면서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게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아들녀석 이름은 아무도 안갖은 이름 지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했구요. 하지만 똑같은 것은 무엇인가 가진 사람들이 그리워 지기도 합니다.
    아뭏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세상에 가장 싫은 사람을 꼽아라 하면 자신하고 똑같은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길을 가다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만 봐도 게면적은게 사실인데 하는 짓까지 똑같다면 정말.......

    도에 대해 관심이 많다하니 동명이인으로 반가움을 금할수 없네요.
    세상에서 가장 갈등을 느끼는 것은 선택할것이 2개일때 라고 생각합니다.
    이러고도 싶고 저러고도 싶고, 아주 간단하게 도란것은 이럴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죠.
    너무나 결정이 어려울때 점을 칩니다.
    일반적으로 점장이 한테 점을 치는 것이아니라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보는 것이죠.
    몸을 깨끗이 하고 정좌하여 앉아 이것이 옳은가 저것이 옳은가 선택해봅니다.
    동전 하나만 있어도 가능한 일이지요.
    스스로의 길을 선택한것이니 스스로의 책임이 아닐까요.
    이미 정해진 길이라면 아무 후회없이 열심히 그길로 가보는 거지요.

    도의 길은 쉽기도 하고 여럽기도 합니다.
    결국 자신의 길이기에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지요.
    죽으며 웃울수 있을때 이세상에서 도 한자락 얻어간다 생각하십시요.
    영원한 오른손 잡이일수 밖에 없는 문성수 배상

    2001-01-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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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성수

    저랑 이름이 같슴니다..
    저또한 태권도 를 수련하고 있슴니다..만..하신 말씀 무척 마음에 와 닿네요
    굳이 태권도 만이 아니라...나름대로..도를 닥는 수련생이 거던요
    벌써..20대 중반이 되었슴니다..궁금한건..요..
    도란 얘기를 하셨지만..전 와닿지를 않단 말임니다..말이야..저도 얼마든지
    할수 있고...이론도 빠삭하게 머리속에 있건만..제가 깨닫는게 순서겠지요?
    그 방법을 좀 알수있을가요?..쩝..아셨다면..그쪽이 도인이라는 얘기도 되고해서..좀 무리한 부탁인가요?...그냥..궁금해서요..반가웠슴니다..

    2001-01-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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