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순례]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아픔 '동사서독'

  


<동사서독>은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아픔과 기억에 대한 영화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 때문이지만, 그러나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는 영화 속의 대사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동사서독>은 무협영화다. 무사들이 등장하고 강호의 검객들이 검법을 뽐낸다. 그러나 칼과 칼이 맞부딪치며환상적인 검술의 향연이 보여지는 그 이면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과 그 기억으로 고뇌하는 사람들의 인생사가 펼쳐진다.

구양봉(장국영)은 살인청부업을 하는 퇴물 무사다. 어느 해 경칩에 그의 친구 황약사(양가휘)가 찾아와 술을 권한다. 취생몽사라는 이름을 가진 그 술은 마시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술이다. 그러나 버림받기 싫어서 사랑한 사람을 버리고 떠나온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구양봉(장국영)은 그 술을 마시지 않고 황약사(양가휘)만 마시고 모든 기억을 잊은 채 떠난다.

황약사(양가휘)는 옛 친구인 맹무살수(양조위)를 만나러 간다. 그러나 그는 없고 그의 아내 도화삼랑(유가령)을 찾아가나 그녀는 황약사(양가휘)을 외면한다. 둘은 과거에 사랑을 나눴었다.

황약사(양가휘)는 다시 맹무살수(양조위)를 찾아가 취생몽사를 권하지만 맹무살수(양조위)는 황약사(양가휘)를 다시 만나면 죽이려던 생각을 나빠진 시력 때문에 접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난다.

어느 날 모룡연(임청하)이 구양봉(장국영)을 찾아와 황약사(양가휘)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는 황약사(양가휘)가 자기의 동생을 버렸기 때문이다. 황약사(양가휘)는 과거에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모룡연(임청하)에게 "네게 여동생이 있으면 내 처로 삼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룡인(임청하)이 구양봉(장국영)에게 와 자기 오빠인 모룡연(임청하)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유는 오빠가 황약사(양가휘)를 못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모룡인과 모룡연은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룡연은 황약사가 술 먹고 한 말을 기억하고 그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슬퍼하고 또 그것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여덟 가지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구양봉(장국영)이 사랑했지만 지금은 형수가 되어버린, 자애인(장만옥)이 바로 황약사(양가휘)를 통해 취생몽사를 보냈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물론 이 영화도 무협영화인 만큼 화려한 액션이 등장한다. 구양봉을 비롯한 주인공들은 모두 뛰어나 검객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액션은 화려하긴 하지만 사실적이지는 않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강조하고 있는데 느린 화면으로 처리된 장면이나 실루엣으로 처리된 장면들은 검객들의 칼부림(?)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검객 홍칠(장학우)이 태위부 검객들과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결투 장면 중에서 백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장면은 그리 길지 않고 영화 전체적으로 볼 때도 결투 장면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보면 홍콩의 액션스타 홍금보가 무술지도를 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동사서독>만 놓고 본다면 무술지도를 뭐하러 뒀냐고 생각하게 할 정도로 결투 장면이 드물다.

그러나 애초에 왕가위 감독이 무협영화 전문 감독도 아니고 정통 무협영화를 표방하고 내놓은 작품도 아닌 만큼 크게 아까워 할 일은 없을 듯하다. 무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무협영화든 총잡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서부영화든 그 안에는 사람 사는 얘기가 담겨 있기 마련이고 어떻게 보면 사람 사는 얘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때 더 많은 감동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사서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애써 잊으려 하면서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사시라.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으로 가득 찬,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동사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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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가위최고

    왕가위는 정말 훌륭한 감독입니다.
    아비정전, 열혈남아, 타락천사, 중경삼림, 동사서독, 부에노스아이레스, 화양연화 등 모두 모두 돈 아깝다는 생각도 한번도 안하게 한 영화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보다는 몸을 더 많이 쓰는 우리 무도인들한테는 더더욱 많이 필요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화들입니다. 집에서 심심할 때 집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 빌려다 보세요.

    절대 후회 안 합니다.

    2001-01-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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