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의 강호이야기>"진정한 협객은 칼이 필요없다"

  


영화 동사서독(東邪西毒)을 보면 임청하가 1인2역을 하는 모용연, 모용언 남매가 나온다. 동사 황약사는 오빠 모용연과 술을 마시다가 자네를 닮은 누이가 있다면 내 결혼하겠네라고 무심히 얘기를 하는데 모용연은 그 말을 귀담아듣고 누이 모용언을 동사에게 소개를 한다.

문제는 원래 모용연, 모용언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모용연이 모용언이고 모용언이 모용연이라는데 있다. 남장을 하고 다니던 모용연이 동사에게 반한 나머지 동생이라고 속이고 자신을 소개한것이다. 결국 사랑에 실패한 모용연은 상심하여 떠나게 되는데, 몇 년 후 강호에 고수가 나타났는데 그 이름을 독고구패라 한다했다.

김용(金庸)의 신조협려(神雕俠侶)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대목에서 "어?"하고 몸을 일으킬만하다. 신조협려에 나오는 독고구패는 검마(劍魔)라는 이름으로 무림을 횡보한 초절정 고수요, 나중엔 검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검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공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왕가위 감독의 독특한 해석이 따르긴 했겠지만 독고구패라는 사람은 여러가지로 무협사에서 의의가 있는 사람이다.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르는 절정의 보검들이 난무하고 그러한 보검을 얻기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무협세계의 협객들에게 "칼은 필요없다"라고 처음 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이 마흔에는 나뭇가지나 풀잎, 대나무와 돌로도 모두 보검과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하였으니 간장, 막사검이나 어장검 같은 명검을 만든 장인들이 무덤에서 탄식을 금치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무협소설에서 사용되는 무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도, 검, 도끼, 창, 봉류의 기본무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무거운 쇠가 달린 추(鎚)나 손목에 끼고 사용하는 권(圈)이 사용되는가 싶더니 나중엔 담배피우는 곰방대, 물고기잡는 어망, 식당의 주판, 우산, 피리까지 모두 무기가 된다.

무기의 이름도 매우 다양하여, 천룡검(天龍劍), 도룡도(屠龍刀), 호차(虎叉), 사편(蛇鞭) 등의 동물 응용편과 다정검(多情劍), 무정도(無情刀), 정절봉(情絶棒) 등의 다분히 감정적 색채가 짙은 무기도 등장한다. 피를 보지 않으면 멈추지 않는 혈견휴(血見休), 상대의 힘과 피를 모조리 빨아내는 흡성대법(吸星大法)에 이르게 되면 무협의 멈추지 않는 상상력에 절로 감탄을 금치 못하게되는 것이다.

사천당문(泗川唐門)의 암기 중에 월루(月淚)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일종의 반지인데 반지를 만들던 당문의 여고수가 타성(他性)의 남편이 변심을 하자 만들던 반지로 그를 죽인 후 스스로 자결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달의 눈물. 이쯤 되면 무기의 이름이 아니라 낭만파 고전문학도 만들어낼 수 없는 최고봉의 감성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작가 나청(羅靑)의 다음과 같은 시(詩)는 무협이 한계가 없는 문학이라는 것을 잘 나타낸 글이라 할 것이다.

"사람 하나에 칼 한 자루(一人一劍),

손과 발을 쓰지 않고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않고 앉지도 눕지도않는 가운데,
(棄手廢足不進不退不座不臥之中)

마침내 칼은 있으되 사람은 있지 않고 사람은 죽어도 칼은 죽지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終至劍在人不在 人亡劍不亡之境)
#무협소설 #야설록 #강호 #동사서독 #신조협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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