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는 한마디로 말해 남자 영화다.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수컷의 영화다.

머리 좋고, 돈 많고, 매너 좋은 성공한 남자들의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에 실패하고, 마누라에게까지 버림받아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인생막장에 몰린 남자와, 혈기 방장한 20대의 나이에 세상에 무서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까불며 동네 애들 삥이나 뜯다가 결국엔 강도혐의로 교도소에 갇힌 양아치의 이야기다. 막가는 인생, 그러나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남은 희망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복싱. 이 복싱이라는 레일 위의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해 오는 두 사나이가 바로 강태식(최민식 분)과 유상환(류승범 분)이다.

류승완, 최민식, 류승범의 조화


이 영화는 감독을 맡은 류승완, 강태식 역할의 최민식, 유상환 역할의 류승범 중에서 하나라도 다른 것으로 교체되어서는 안되는 영화다. 오로지 이 세 사람의 만남을 통해 완성될 수 있는 캐릭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캐스팅을 통해 이 영화는 절반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감독 류승완은 2000년 <죽거나 나쁘거나>를 통해 데뷔한 이래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등의 필모그래피를 이어왔다. 그러나 데뷔작의 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후속작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 류승범 감독은 비로소 이 영화를 통해 데뷔작 <죽거나 나쁘거나>에서 보여줬던 재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강태식 역할은 한국의 어떤 배우를 생각해도 최민식 만큼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 힘들다. <올드보이>에서 보여준 강렬한 이미지는 차치하더라도, <파이란>에서 3류 양아치의 모습을 가장 절묘하게 재현했던 것처럼, 최민식은 강태식을 가장 잘 표현해 낸다. 최민식 필모그래피에서 3부작을 말한다면, 단연코 <파이란>, <올드보이>, 그리고 <주먹이 운다>가 될 것이다.

20대의 양아치 역할을 류승범보다 더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배우가 한국에 있던가? 배역에 자신을 맞추는 배우가 있고, 배역을 자신에 맞추는 배우가 있다고 할 때, 류승범은 후자에 속한다. 그만큼 기존의 각인된 이미지가 부담이면서도, 그것은 배우로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유상환 역할은 류승범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이고, 류승범은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 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하레루야 아키라와 서철


영화에서 인간샌드백 역할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강태식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의 하레루야 아키라가 그 주인공.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에까지 신문,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아키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발간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유상환의 모델이 된 인물은 현재도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서철이다. 한국의 타이슨이라고까지 불리는 서철은 복싱, 그리고 격투기를 통해 지난 삶과는 다른 삶을 설계하고 있다. 헤비급의 층이 엷은 한국격투기계에서 서철에게 거는 기대는 적지 않다.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이 너뿐인 줄 아느냐."


제 각각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강태식과 유상환은 복싱을 통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로서의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강태식과 혈육으로 유일하게 남은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복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유상환의 대결은 이 영화의 예정된 엔딩씬이다.

강태식의 이야기와 유상환의 이야기가 음악의 대위법처럼 어울어 지다가 하나로 융합되는 장면. 이 영화의 절정이다. 과연 쓰러지는 자는 누구인가? 영화의 결말은 기자의 예상, 또는 기대와 조금 어긋났다. 류승완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예상한 결말도 고려해보기는 했으나, 많은 고민 끝에 지금 같은 영화의 결말을 맺었고, 그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결말이야 어찌되었건,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쉽게 침체기에 빠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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