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치빈, 한가지에만 집중해라

  




한국 입식 타격기의 절대강자 임치빈 선수가 아쉽게도 마사토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경기는 임선수 개인에게도 뼈아픈 패배를 남겼겠지만 한국의 격투기 팬들에게도 세계 수준과 한국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며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전일본 킥복싱의 간판스타이던 고바야시 사토시를 2003년 3월에 간단히 KO로 꺾어버린 바 있던 임선수이기에 팬들이 이번 시합에 거는 기대는 아주 컸고, 태국 무에타이 무대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올렸던 그가 마사토와 호각의 승부를 내 줄 것이라고 관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초 국내 팬들은 임선수에게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경우가 제법 있었고, 특히 매니아 층에서는 임선수가 마사토를 이길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편이었다. 그것은 역시 남삭노이와의 경기, 신비태웅과의 경기, 그리고 태국에서의 무에타이 수행 등을 통해 임선수가 자신의 강함을 충분히 각인시켜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사토가 평가절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사토는 그동안 월드MAX에서 1위 2위 3위를 한번씩 거머쥐며 최강급의 파이터로 불리기에 조금도 손색없는 기량을 보여왔다. 그러나 쁘아가오와의 대전에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았고 거기다 편파판정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이미지는 굉장히 나빠졌다. 그러나 마사토를 그 한경기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좀 우스운 일이다.

미국, 유럽을 석권한 일본격투기 무시 못할 존재


사실 태국의 무에타이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국내의 무에타이 관계자들도 MAX를 태국의 룸피니나 라자담넌 무대에 비해 쉬운 곳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룸피니와 라자담넌의 챔피언들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절대적인 강함과 초인적인 타격능력 때문에 생긴 무에타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다. 사실 태국 내에서도 룸피니 파이터들은 라자담넌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라자담넌 파이터들을 바보취급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태국도 아닌 일본에서 열리는 MAX를 쉽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이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남삭노이의 매니저인 껫펫씨의 경우를 보면 다분히 감정적이다 싶을 정도로 K-1을 무시하고 있었고(룸피니의 파이터들-웰터나 라이트급-이 나간다면 MAX가 아니라 K-1 헤비급도 쑥대밭이 될 거라고 호언한 적이 있다.) 라자담넌의 선수들을 3류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라자담넌에서 챔피언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카오클라이에 관해서도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 3류 선수가 휘젓고 다니는 K-1이라면 룸피니 전사들의 상대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라며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그것은 초인적인 강자들을 수도 없이 배출해낸 태국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나 관계자에게 국한 된 것이고 우리나라에 해당되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아직까지 MAX 무대는 우리에게 힘든 무대인 것이다. 물론 임선수가 처음으로 상대한 것이 마사토였으니 좀 더 쉬운 선수들과 붙는다면 쉽게 이기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올수도 있다. 그러나 MAX의 선수층은 생각보다 두터우며 일본 킥복싱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1960년대부터 시작되는 가라데인들에 의한 킥복싱의 등장은, 사와무라 타다시, 후지와라 토시오등의 걸출한 인재들을 양성해내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뻗어나갔고, 피터아츠, 어네스트 후스트등의 천재 파이터들을 양성해냈다.

전세계의 킥복싱의 원류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한가지는 일본 극진 가라데의 쿠로사키 겐지 선생으로 부터 시작되는 일본 킥복싱, 그리고 미국의 슨도메 가라데인들이 만들어낸 어메리칸 풀 컨택트이다. 그리고 한 때는 둘이 서로 맞서기도 했지만 현재는 어메리칸 풀 컨택트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사실 어메리칸 풀 컨택트는 룰 자체도 무에타이 룰을 그대로 채용한 일본의 킥복싱에 비해 너무 안전했고, 팔꿈치는 물론 로킥과 무릎도 금지되어 있어 결국에는 펀치공방으로 가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3류 수준의 복싱 경기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런 경기 진행은 미국식 킥복싱의 경쟁력을 점점 죽여버리기 시작했고 결국은 팬들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괴물새라고 불렸던 어메리칸 풀컨택트 사상 최강의 초인 베니 유키데즈의 경우는 좀 달랐다. 대단한 발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동작도 아주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그도 일본에서 무에타이 룰을 제시하자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아메리칸 풀컨택트가 낳은 특급 천재라고 불리던 릭 루퍼스가 K-1에 참전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현재는 북미에서도 카터 윌리엄스나 마이클 맥도날드 처럼 일본식의 킥복싱을 익힌 파이터들이 주류로 등장하는 추세이다.

유럽과 미국, 거기다 남미까지 석권해버린 일본의 킥복싱이 지닌 세력은 태국의 무에타이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본고장인 일본에서 최고의 선수를 가리고 가려서 싸우는 MAX 무대는 태국의 무에타이 무대에 비해서 결코 질적으로 뒤지는 곳이 아니다. 또한 룰도 다르기 때문에(MAX는 무에타이와는 달리 팔꿈치가 금지되어 있으며 빰 공격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 그 룰에 최적화된 파이팅 스타일을 수년간 연마한 선수들을 무에타이 룰에 익숙한 선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MAX와 무에타이 무대는 엄연히 다른 무대이며 다른 룰과 다른 격투 방식이 존재한다. 쁘아가오나 가오란 같은 선수들이 MAX에서 단기간에 엄청난 힘을 보여줬던 것은 역시 태국 본고장의 전사들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MAX가 무에타이 무대보다 쉽다는 증거는 결코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임치빈 선수는 기본적으로 체중도 마사토보다 훨씬 가볍다.

임선수가 MAX를 태국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통과점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MAX에서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는 무에타이는 일단 접어야한다. 무에타이식의 격투방식을 버리고 MAX에 최적화된 싸움법을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가다듬어야하는 것이다. 카오클라이도 쁘아까오도 K-1에 온 이후 무에타이 시합을 자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K-1은 K-1나름의 트레이닝과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무에타이 시절의 그들과 MAX 참전 이후의 그들의 파이팅 스타일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쁘아까오의 경우, 태국시절에서 쓰던 스텝과 MAX진출 이후의 스텝에서 확연할 정도로 차이가 날 정도이고 특히 카오클라이의 경우 K-1MAX에 참전하면서 전혀 새로운 선수로 탈바꿈했다. 일본의 이하라 도장에서 일본 스타일의 킥복싱 스킬과 K-1에 최적화된 격투방식을 철저하게 익힌 것이다.(물론 카오클라이는 K-1파이터이지 K-1MAX 파이터는 아니다. 그러나 둘의 룰은 거의 같은 편이다. 물론 이번 K-1MAX 일본 대표 선발전처럼 목잡기에 이은 무릎은 1회로 제한한다는 특별 규정이 들어가는 경우 때문에 룰 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빰 공격과 팔꿈치가 봉쇄되어 있는 MAX 룰에서는 빠른 스텝과 펀치를 이용한 파이팅 스타일이 크게 유리하다. 채점방식도 무에타이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트레이닝도 되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입식타격의 지상 최강이라고까지 불리는 무에타이의 본고장인 태국에서 온 전사들 조차도 MAX에서 싸우기 위해서는 혹독한 트레이닝을 소화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선수는 근래까지 무에타이 시합을 했었고 무에타이 트레이닝을 했다. 거기다가 5월 21일에는 지옥의 풍차 라몬 데커 선수와 격돌할 예정으로 있었다. MAX에 집중할만한 상황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준비기간도 너무 짧았고 제대로 MAX 스타일의 격투 스타일을 전수해 줄 사람도 부족했다. 국내에는 무에타이 시합을 치뤄본 선수들은 많지만 K-1에서 제대로 경기를 해 본 사람은 극히 적었던 것이다. [MAX에서도 싸울 수 있다.]는 것과 [MAX에서 싸울 줄 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MAX와 무에타이는 엄연히 다른데, 제대로 가르칠 사람까지 없으니 아무리 입식 타격의 천재라고 불리는 임선수라고 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MAX의 채점방식에 따른 격투스타일을 전수받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사토와의 대결에서 임선수는 계속해서 무에타이 스타일을 고집하고 있었다.(물론 완전한 무에타이 스타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임치빈, 무에타이냐, K-1 MAX냐 확실한 선택과 훈련필요


원래 임선수는 상당한 펀치 스킬을 가진 선수로 발차기만큼 펀치 공방에도 아주 능한 선수다. 그러나 근래의 임선수의 플레이 패턴을 보면 그렇게 뛰어난 펀치기술을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든다. (MAX는 임선수의 펀치 테크닉이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곳이다. 쁘아까오의 플레이를 보면 펀치보다 발차기의 비중이 큰데 임선수도 이런 스타일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펀치의 비중이 큰 MAX에서 발차기 중심의 쁘아까오가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역시 그의 차기가 워낙에 무지막지하게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알버트 크라우스의 카운터 작전에 말려들어 패배했고, 다케다 고조와의 대결에서도 굉장한 고전을 하면서 이미 일본 선수들 뿐만 아니라 MAX의 모든 선수들에게 철저히 분석되어버린 상태이다). 마사토는 이런 임선수의 스타일을 철저하게 분석했고 시합 전의 인터뷰에서 했던 "임선수는 상당히 전통적인 킥복서"라는 발언은 마사토가 임선수의 무에타이 스타일에 관해 이미 숙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킥복싱이란 결국 무에타이 룰로 치뤄지는 신일! 본등의 일반적인 킥복싱 시합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사토시와의 대결(K-1룰이었음)당시의 임선수의 펀치 활용능력을 감안하면 마사토와의 대결에서는 그런 부분이 무척이나 아쉽다.

결국 MAX 스타일만 중점적으로 연마해온 마사토와 무에타이와 MAX를 병행하려고 했던 임선수의 대결은 어찌보면 처음부터 임선수에게는 가혹한 시합이었을 수도 있다. 체중의 차이, 홈과 어웨이의 차이, 그리고 MAX룰에 대한 적응정도의 차이 등 이런 부분을 모두 염두에 두었더라면 최소한 MAX 참전이 결정된 그 순간부터 MAX에만 몰두했어야 한다. 게다가 임선수는 얼마 안있어 또다시 코마-무신에서 시합을 뛰어야 한다. 스케쥴 상으로도 너무 가혹한 것이다.

물론 임선수가 KOMA나 국내 입식 타격 대회에서 가지는 위치와 상품성은 절대적이다. 그가 빠지고서는 제대로 대회를 열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임선수의 MAX 참전을 계속 추진하고 있었다면 다소 무리수를 둬서라도 K-1MAX룰에 최대한 가까운 것으로 시합을 치루게 했어야한다는 것이 필자 개인적인 견해이다.

이번 패배는 임선수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번 경기를 통해 MAX 무대의 분위기와 룰에 대해 확실히 적응이 되었을 것이고 그 나름의 파해법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무에타이냐 K-1이냐를 신중히 고려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선수의 자질과 능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국내 최강이다. 임선수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선수들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임선수가 MAX에의 도전을 계속하든, 아니면 무에타이에만 전념을 하게되든 팬들의 지지와 믿음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둘중 하나를 확실히 선택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선택했다면 그 쪽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다. 두가지를 다 소화하면서 싸우기에는 태국이건 일본이건 그 벽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이다.
#임치빈 #마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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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무

    후후후! 결구구 룰이문제이군요!
    깊이들어가면 이러한데 무슨 태권도.택견 합기도.유도등등 실전성에서는 안되구하는 기사를 적는 기자님들 기사 잘 관리해서 쓰야되겠지요? 인기에만 연연하지말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5-09-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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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흠..

    그러니까 태국 스타일론 태국을 못이긴다는 얘기~

    2005-05-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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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ck

    태국에서의 무에타이 수행.. 마사토는 이미 옛날에 거쳤었고, 마사토의 트레이너는 태국사람입니다만, 그 트레이너는 마사토의 장점을 잘 살린 것입니다,,, 태국인들의 신체리듬과 일반동양인.. 우리나라, 일본, 지나족들..은 탄력차체가 틀립니다, 태국인들은 무릎으로 카운터를 칠정도입니다만, 우리는 펀치가 더 셉니다 펀치, 킥위주로 해나가는게 더 적합합니다 물론 체형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요

    2005-05-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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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브최

    최기자님 무토로 가신거예요? 좋은 기사 많이 부탁해요.

    2005-05-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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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ssAway

    좋은 내용의 기사 잘 읽었습니다.
    너무 공감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2005-05-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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