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痛恨)에서 통한(通韓)으로… 이대훈, 2028 LA 올림픽 코트에 다시 선다!
발행일자 : 2026-03-05 10:19:48
수정일자 : 2026-03-05 10:31:23
[한혜진 / press@mookas.com]

〈한혜진의 人사이드〉 EP.2 - 태권도 레전드 이대훈, Team USA 코치로 2028 LA 올림픽을 향해 도전장

올림픽 금메달. 태권도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자리. 이대훈은 12년이라는 긴 선수 생활 동안 그 자리에 세 번 도전했다. 2012 런던, 2016 리우, 2020 도쿄. 매번 올림픽 코트를 누볐고, 매번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금메달은 그의 목에 걸리지 않았다. 은메달, 동메달, 그리고 노메달.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그 어느 선수보다 많은 것을 이긴 남자가 정작 가장 원하는 것 하나는 끝내 손에 쥐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훈은 그 아쉬움을 가슴에만 묻어두지 않았다. 선수로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제 지도자로 이룬다. 그의 무대는 다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올림픽 코트. 장소는 2028년 로스앤젤리스(LA)이다.
태권도 신동(神童), 전설이 되기까지
이대훈의 이야기는 태권도장에서 시작됐다.
태권도장 관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다섯 살부터 형과 함께 도장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유치원 대신 도장이었고, 방과 후 도장이었다. 그렇게 태권도는 그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숨 쉬듯 체득한 언어가 됐다.
한성고 재학 중이던 만 18세, 이대훈은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고교생의 시니어 국가대표 선발, 그것만으로도 태권도계를 술렁이게 했다. 그런데 첫 국제무대에서 그는 무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0년 광저우. 태권도 역사에 '이대훈'이라는 이름이 처음 새겨진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2년. 그는 단 한 번도 국가대표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세계선수권 3회 우승, 월드태권도 그랑프리 12회 우승, 아시안게임 3연패, 올림픽 3연속 출전, 세계 및 올림픽 랭킹 1위 최장 기간 유지. 숫자만 나열해도 숨이 막힌다.
"일반 호구로 시작해, 전자호구 1세대와 2세대를 거쳐 모두 세계를 제패했다.
시스템이 바뀌어도 그는 정상에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재능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수촌에서 그와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쉬는 시간에도, 휴일에도 이대훈의 취미는 '운동'이었다고. 그의 미트를 잡고 나면 두통이 온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발차기의 파워가 압도적이었다.
체력은 선수촌에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했고, 그와 함께 생활하는 것만으로 대표팀의 훈련 분위기가 바뀌었다. 세대교체가 일어나도 새로 들어온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이대훈의 리듬에 맞춰 훈련 중심으로 생활을 재편했다.
그러나 이 모든 찬사의 이면에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는 세계 최강.' 이대훈 본인도 그것이 통한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한다.
은퇴 이후, 새로운 문을 열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직후 이대훈은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의 행보는 놀라웠다. 방송, 해설, 대전광역시청 코치, 세계태권도연맹 선수위원, 한국 국가대표팀 코치. 그리고 박사과정 마무리.
은퇴 이후 그는 매일같이 세종대학교 체육 연구실에 나가 밤샘 작업을 반복하며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4차 산업기술을 통한 태권도 경기력 발전 방향'을 주제로 2023년 세종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운동하느라 공부가 서툴다고 스스로를 낮추던 그였지만, 논문만큼은 어떤 흠도 남기고 싶지 않아 어느 연구자 못지않게 매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2025년, 마침내 꿈꾸던 자리가 열렸다. 동아대학교 태권도학과 전임교수 임용. 이해우 총장의 '동아가족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받던 순간을 이대훈은 오래 기억할 것이다. 선수 시절부터 그의 최종 목표는 늘 '태권도 교수'였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런데 임용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에게 또 다른 문이 열렸다.
Team USA, 그 선택의 무게
2026년 3월 5일(현지 시각), 미국 태권도 대표팀은 이대훈의 코치 합류를 공식 발표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즉각 반응이 폭발했다. 미국 팬들의 환호, 팬아메리카 지역 태권도 관계자들의 기대, 그리고 놀라움. 이대훈이라는 이름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크게 울렸다.
그는 지금 신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전화 인터뷰로 미국행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단했다.
"갑작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도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소속된 동아대에 대한 미안함을 먼저 꺼냈다. 임용된 지 1년 만에 자리를 비우게 됐고, 학교가 휴직 처리까지 해주어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도자로서 더 큰 무대에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왜 미국이었을까.
"미국의 태권도 프로그램과 스포츠 사이언스는 세계 정상급 수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자로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2028년, 자국 땅에서 열리는 LA 올림픽. 미국에게 이 대회의 상징성은 남다르다. 개최국으로서 태권도 금메달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선수만큼이나 코치가 중요한 이유다. Team USA가 이대훈을 선택한 것은 그의 화려한 커리어만이 아니라, 그 커리어 뒤에 숨겨진 분석력과 전략적 통찰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코치 이대훈이 그리는 그림
이대훈은 '코치의 철학'에 대해 명확한 언어를 갖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결과보다 과정을, 통제보다 방향 제시를 강조했다.
"결과를 쫓기보다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제 기여가 될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코치의 세 축은 전술적 지능,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팀 문화다. 선수로서 수없이 경험한 '큰 무대의 압박'을 이제는 선수들이 스스로 다룰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다는 것이 그의 역할관이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에 대한 그의 시선도 흥미롭다. 한국의 체계성과 미국 선수들의 개성, 어느 한쪽이 더 우수한 것이 아니라 두 강점이 잘 결합됐을 때 새로운 시스템이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식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Team USA에 맞는 새로운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뜻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시스템이 계속해서 강한 선수들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LA 2028 이후를 이미 보고 있었다. 2032 브리즈번 올림픽. 선수로서의 꿈이 지도자로서의 꿈으로 이어지는, 더 긴 호흡의 여정이다.
두려움을 안고 가는 법
선수로서 해외를 누빈 이대훈이지만, '취업'의 형태로 낯선 나라에 정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어, 문화, 생활. 모든 것이 다르다. 아내와 아들 세 가족의 가장이기도 하다.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솔직히 두려움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낯선 환경을 찾고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그 말이 울림이 있었다. 18세에 성인 대표팀 코트에 섰던 소년도, 그 두려움을 발전의 연료로 삼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대훈이라는 사람의 본질은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가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기자 한혜진의 시선 – 16년 현장에서 본 이대훈이 특별한 이유
이대훈은 태권도 신동이었다. 보통 신동은 일찌감치 뜨고, 빨리 진다. 자기 관리 실패가 큰 원인이다. 그러나 이대훈은 달랐다. 한성고 재학 중 국가대표 1진에 선발돼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시작된 그의 여정은,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성실함과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일반 호구로 시작해 전자호구 1세대, 2세대를 거치며 모두 세계를 제패했다. 시스템이 바뀌어도 그는 정상에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재능이 아님을 증명한다.
선수촌 입촌 이후 훈련 분위기도 그가 바꿨다. 쉬는 시간에도, 휴일에도 취미가 운동이었던 그와 함께 생활하는 대표팀은 자연스럽게 훈련 중심으로 문화를 재편했다. 체력은 압도적이었고, 그의 미트를 잡고 나면 지도자가 두통을 호소할 정도였다.
12년의 세계 정상, 연애 활동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면서도 그는 늘 초지일관 겸손했다. 운동하느라 공부가 서투른 그였지만, 박사 논문만큼은 후일에 흠이 되면 안 된다며 은퇴 이후 매일같이 연구실에 나가 밤을 새워 완성했다. 영특하고 분석적이다. 경기 선수 분석도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자리인 교수직을 얻고 정년이 보장된 강단에 서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태권도의 살아있는 보물이 들끓는 열정이 있을 때 국제 지도자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돌아와, 완벽한 영어 실력과 미국의 첨단 스포츠 과학을 체화하여 한국 태권도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그림이라 생각한다.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선수 생활을 '미완성'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지난 16년간 태권도 현장에서 이대훈을 지켜본 기자로서, 이대훈이 지도자로 완성시킬 이야기가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통한(痛恨)에서 통한(通韓)으로. 이대훈이 미국에서 가르치는 태권도는 곧 한국이 세계에 내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가 될 것이다."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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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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