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문진호 레전드 장준 꺾고 우승... 이예지 2대회 연속 제패!

  

한국, 방콕 그랑프리 챌린지 첫날 남녀 금 2개 휩쓸고, 은 1개 추가하며 산뜻한 출발

 

문진호가 우승 직후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방콕 그랑프리 챌린지 첫날, 192cm 고교생의 전광석과 같은 발길이 레전드를 무너뜨렸다.

 

한국 태권도 대표팀은 21일 태국 방콕 인도어 스타디움 후아막에서 열린 '2025 방콕 월드태권도 그랑프리 챌린지' 첫날 남자 -68kg에서 고교생 문진호(서울체고, 18)가 경량급 최정상 장준(한국가스공사, 25)을 결승에서 2-0으로 꺾는 대이변을 만들었다.

 

여자 -49kg에서 이예지(인천동구청, 24)가 두 대회 연속 우승을 확정했다. 한국 선수끼리 결승 대결로 은메달도 추가하며 금 2개, 은 1개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남자 -68kg 결승은 시작 전부터 뜨거웠다. 경량급을 10년 가까이 지켜온 장준과 올해 국제무대에서 혜성처럼 떠오른 고교생 문진호의 대결. 현장은 결승전 이전부터 술렁였다.

 

192cm 장신의 문진호는 긴 다리로 거리를 틀어쥐고, 상대가 파고들려는 순간 머리를 먼저 가격하는 패턴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오른발 앞발로 공간을 압박하고, 빈틈이 보이면 몸통을 때려 넣는 감각적인 기술까지 더해지며 강력한 경기력을 유감없이 뽐냈다.

 

1회전부터 문진호가 주도권을 잡았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앞발로 거리를 주도하며 장준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장준이 탐색전을 이어가는 사이, 문진호는 오른발로 먼저 머리를 맞히며 4-1 선취점을 만들었다. 이후 앞발로 공간을 압박하고 빈틈이 보이면 곧바로 몸통을 때려 넣는 패턴으로 6-1까지 점수를 벌렸다. 장준의 반격으로 8-7까지 좁혀졌지만 1회전 전체 흐름은 문진호가 끝까지 주도했다.

 

2회전은 서로 조심스러운 탐색전이 이어졌다. 큰 점수 교환 없이 팽팽하게 흘렀다. 경기 종료 17초 전 장준이 몸통을 성공시키며 0-2로 끌려갔다. 그러나 11초를 남기고 문진호가 기습적인 2점을 올려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두 선수 모두 승부수를 던지며 난타전으로 넘어갔고, 가장 중요한 순간 문진호의 오른발 돌려차기가 머리에 정확히 들어가며 5-2를 만들었다. 감점이 있었지만 흐름은 이미 넘어온 상태였다. 문진호가 5-4로 2회전을 잡으며 2-0 승리를 완성했다.

 

올림픽랭킹 79위의 신예가 레전드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문진호는 준결승에서도 카자흐스탄 사미르콘 아바바키로프(Samirkhon Ababakirov)를 2-0(5-4, 16-9)으로 제압했다.

 

올해 우시 그랜드슬램에서 국가대표 2진 정우혁(한국체대, 20)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푸자이라 오픈 우승까지 기록하며 국제무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전혀 긴장하지 않고 즐기는 '특급 루키'답게 거침없었다.

문진호(홍)가 결승에 장준(청)을 상대로 몸통 기술을 펼쳐 보이고 있다.

문진호는 우승 직후 "장준 형은 어릴 때부터 내게 우상과 같은 선수였다"며 "처음으로 경기에서 맞붙었는데, 내게는 큰 영광인 순간이었다. 져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전혀 긴장은 안 됐다.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내년에 대학 가서 국가대표에 최종 선발되어 그랑프리를 비롯한 여러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계속 이어가 꿈 같은 LA올림픽 출전하는 게 꿈이다"고 덧붙였다.

 

결승에서 아쉽게 패한 장준은 올해 주 체급을 한 체급 올린 뒤 호주 오픈과 우시 세계선수권에서 연속 동메달을 확보하며 안정된 체급 전환을 보여왔다. 이번 대회에서도 스페인 아드리안 비센테 윤타(Adrian Vicente Yunta)를 2-0(5-5, 9-0)으로 완벽히 꺾으며 결승에 올랐다.

 

같은 체급에 출전한 정우혁은 첫 경기에서 개인중립국가(AIN) 막심 오신(Maxim Ocin)을 2-0(12-0, 5-0)으로 제압했지만, 16강에서 장준을 만나 0-2(0-6, 1-7)로 패해 메달권 진입에는 실패했다.

 

우시 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 성유현(용인대, 22)은 중국 청 첸(Cheng Chen)에 1-2로 역전패했다. 1회전 머리 공격으로 12-10을 잡았지만 이후 연속 실점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베스트를 펼치지 못했다.

2회 연속 그랑프리 챌린지를 제패한 이예지가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여자 -49kg 결승은 이예지(인천동구청, 24)와 중국 푸 샤오루(Fu Xiaolu)의 3회전 역전 드라마였다.

 

초반 샤오루의 속도에 이예지가 리듬을 빼앗겼다. 1회전에서 샤오루의 왼발 받아차기와 빈 공간을 노리는 돌려차기에 연속 실점하며 0-4로 끌려갔다. 감점으로 2-4까지 좁혔지만 샤오루의 속도 우위가 돋보인 라운드였다.

 

2회전도 초반엔 샤오루 페이스였다. 이예지가 공격을 시작했지만 되려 빈틈을 내주며 3-4까지 좁혀가는 상황. 그러나 이예지가 왼발 앞발로 먼저 몸통을 적중해 5-4로 역전하며 흐름을 가져왔다. 이후 샤오루의 머리 공격을 맞고 5-7로 다시 흔들렸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근접전에서 머리를 정확히 맞히며 9-9 동점을 만들었다. 기술 우선으로 2회전을 가져가면서 경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3회전은 이예지가 완전히 흐름을 장악했다. 2회전을 따낸 뒤 움직임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샤오루가 단번에 크게 공격하려다 균형이 무너지는 사이, 뒤로 물러서는 타이밍을 읽은 왼발 돌려차기와 반대 상황에서 오른발 공격을 연속 성공시키며 점수를 차곡차곡 벌렸다. 샤오루는 급해지면서 잡기·밀기 등 반칙이 늘어 감점이 쌓였고, 이예지가 다시 몸통을 적중시키며 10-0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라운드 점수 2-1 역전승이었다.

 

무주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그랑프리 챌린지 우승을 확정한 이예지는 "지난 무주 그랑프리 챌린지에서 우승한 후에 기대가 많이 됐다"며 "그런데 직전 우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팀 감독님(김정규, 인천동구청)까지 모두 응원을 왔는데 32강전에서 탈락해 스스로 너무 실망했다. 그래서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와중에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게 돼 너무 다행스럽고 기분이 좋다. 특히 결승에서 맞붙은 샤오루에 대해 코치님(최진미)이 디테일하게 분석을 잘 해줘 위기를 잘 넘겼다. 잠시 쉬고, 내년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향기(서울체고, 18), 김민서(한국체대, 19) 등 한국 유망주들은 모두 이날 이예지와 결승에서 맞붙은 중국 샤오루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향기는 예선 첫 경기를 2-0으로 잡았지만 8강에서 0-2로 패했고, 김민서는 첫 경기에서 0-2(4-14, 2-8)로 밀렸다.

 

고교 1학년이자 이번 대회 한국 최연소 출전자인 차정은(대구보건고, 16)은 미국 마야 마타(Maya Mata)를 상대로 선전했으나 1-2로 역전패했다.

 

이번 방콕 챌린지는 29개국 241명이 참가했으며, 세계태권도연맹(WT)이 직접 주최·주관하는 대회로 새 전자호구 시스템 '웨이챔프(WAYCHAM)'가 처음 도입됐다. 전자호구만 교체됐을 뿐 득점 기준과 경기 방식은 동일하게 적용됐다.

 

국가별 최대 4명씩 출전할 수 있고, 한국은 남녀 8체급에 32명을 모두 채워 최다 선수단을 구성했다. 국가대표 1·2진을 기본으로 국내 랭킹과 성장 가능성을 반영해 전략추천 선수를 포함했고, 문진호 역시 전략추천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전략 카드는 이미 앞선 무대에서 성공을 증명했다. 첫 무주 챌린지에서 박태준(경희대)이 전략추천으로 출전해 우승했고, 이후 그랑프리 시리즈 본선과 우승, 그리고 파리올림픽 금메달까지 이어지며 '전략 선발의 상징적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대회는 WT G-2 등급으로 우승 20점, 준우승 12점, 3위 7.2점의 랭킹포인트가 부여된다. 우승·준우승·3위까지 상금이 지급되고, 3위까지는 내년 프랑스에서 열릴 WT 그랑프리 시리즈 본선 출전권이 주어진다.

 

22일 둘째 날에는 남자 -58kg과 여자 +67kg 경기가 이어진다. -58kg에는 배준서(강화군청), 박태준(경희대·파리올림픽 금메달), 양희찬(한국가스공사), 김종명(용인대·샬롯 챌린지 우승)이 출전한다. 여자 +67kg에는 송다빈(울산시체육회), 오승주(경희대), 배아리안(대구보건고), 정은빈(문학정보고)이 나선다. 첫날의 흐름을 한국이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카스미디어 = 태국 방콕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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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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