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체대 동갑내기 서은수·김향기...  로마 월드태권도GP 나란히 시상대!

  

로마 그랑프리 마지막 날 은·동메달 추가… 한국, 은 2·동 3개로 마무리

2분 3회전 대접전을 펼친 끝에 남자 -58kg급 대역전승을 거둔 홈팀 이탈리아 비토(홍)가 자축의 박수를 아쉽게 우승을 놓친 서은수(청)는 승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치고 있다.  

2026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본선 티켓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 로마 포로 이탈리코 특설 태권도 경기장의 마지막 날.

 

한국체대 1학년 동갑내기 서은수와 김향기가 나란히 시상대에 올랐다. 같은 학교, 같은 학번, 같은 날 로마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둘 다 아쉬움은 남지만, 둘에게는 값진 경험을 쌓은 대회이기도 하다.

 

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 포로 이탈리코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 주최로 열린 '로마 2026 월드태권도 그랑프리 시리즈1' 마지막 날, 한국은 남녀 경량급을 이끌 차세대 기대주 남자 -58kg급 서은수가 은메달, 여자 -49kg급 김향기는 동메달을 수확하며 사흘 간의 대회를 마무리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남달랐다. 이탈리아 팬들은 홈 스타 비토 델라퀼라의 이름을 연호하며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그 함성 한복판에 한국 차세대 기대주 서은수가 섰다.

 

2025 우시 세계선수권에서 퍼펙트 우승과 남자부 MVP를 거머쥐며 단숨에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서은수 였지만, 로마행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세계선수권 이후 부상과 국가대표 선발 좌절 등으로 슬럼프를 겪어왔고, 이번 대회도 뼈조각 제거 수술을 앞둔 오른 발목 부상을 안고 뛰었다. 수술을 대회 이후로 미뤘다. 심적으로 부담이 됐다. 기대 이상 활약하며 지난 우시의 활약을 연상케 하며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 상대는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탈리아의 비토 델라퀼라. 시작부터 경기장은 비토를 위한 곳이다. 홈 관중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서은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패기와 체력에서 만큼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반에는.

서은수(청)가 1회전에서 비토 머리 공격을 하고 있다.

1회전부터 숨막히는 난타전이었다. 서은수가 근접 머리 선취점을 뽑은 뒤 머리와 몸통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15대 8로 달아났다. 뒤차기까지 성공시키며 33대 24까지 점수 차를 벌렸다. 경기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비토가 거세게 몰아치며 순식간에 추격해 왔다. 종료 직전까지 세 차례 한계선 이탈 감점(10초 전부터는 감점 2점)을 받으며 49대 47로 간신히 1회전을 챙겼다. 태권도 경기에서 보기 드문 포인트로 손에 땀이 쥐어지는 2분이었다.

 

2회전은 흐름이 바뀌었다. 초반 0대 4로 끌려갔다가 12대 10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경기장이 다시 술렁였다. 그러나 비토의 뒤차기를 허용하며 재역전을 내줬고 근접에서 몸통과 머리를 연달아 허용하며 12대 19까지 벌어졌다. 끝까지 추격했지만 종료 10초를 남기고 뒤차기를 허용하며 18대 34로 2회전을 내줬다. 함성이 다시 경기장을 뒤덮었다.

 

3회전, 경기장은 더욱 달아올랐다. 서은수가 공격적인 움직임으로 몸통 선취점을 뽑은 뒤 연달아 추가 득점하며 10대 2까지 달아났다. 중반 비토의 뒤차기에 걸려 12대 9까지 추격당했지만 뒤차기와 몸통으로 18대 14까지 다시 벌렸다.

 

후반 들어 비토는 흔들렸다. 체력이 바닥난 것. 서은수의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비토와 세컨석은 노련했다. 명분을 들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2분여 시간 동안 숨을 고른 비토가 그 사이 다시 살아났다.

 

다시 응원을 받고 체력까지 회복한 비토에게 몸통을 연달아 허용하며 점수차는 21대 18로 좁혀졌다. 종료 15초를 남기고 기습적인 뒤후려차기와 머리를 허용한 뒤 설상가상 넘어져 2감점까지 받아 순식간에 24대 27로 역전을 허용했다. 마지막 결정적인 몸통까지 내주며 26대 31로 분패했다.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터졌다. 서은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비토(홍)이 큰 점수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서은수를 상대로 공격을 하고 있다.

이번 대회서 서은수의 패기와 체력은 세계 정상급임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홈 관중의 열기 속에서 흐름을 끊는 비토와 같은 노련함, 결정적인 순간의 관록 앞에서는 아직 경험의 차이가 있었다. 3회전 내내 앞서다 종료 15초를 남기고 무너진 장면이 그것을 말해줬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서은수에게 독보다 약이되는 시간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결승까지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발목 부상을 안은 채 치른 준결승에서 2024 파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2대 0으로 꺾었다.

 

1회전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초반 몸통 공격 세 차례를 연속 성공시키며 11대 6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종료 39초를 남기고 넘어지면서 오른 발목을 삐었다. 부상 부위 그대로였다. 감점까지 받으며 흔들렸고 후반 16대 17 역전을 허용했다. 그 순간 모두가 패배를 예감했다. 그러나 종료 0.23초, 상대가 한계선 밖으로 나가며 18대 17. 기적 같은 1회전이었다. 2회전은 달랐다. 근접거리 머리 연속 득점으로 점수 차를 벌리며 18대 9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경기 직후 서은수는 담담하게 "발목에 뼈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번 대회를 위해 보류했다. 최근에 계속 경기가 풀리지 않아 첫 경기에 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것 같다"라면서 말했다.

 

결승전에 대해서는 웃으며 "잊지 못할 큰 경기 경험을 한 것 같다. 졌지만 너무 재미있었고, 다음에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같은 날 동갑내기 김향기(올림픽랭킹 7위)도 시상대에 올랐다. 첫 성인 메이저 세계 무대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며 동메달을 수확했다.

 

준결승 상대는 지난해 21세 이하 세계선수권 여자 -46kg 우승자 러시아의 알리사 안젤로바(올림픽랭킹 27위). 상대는 신장에서 크게 열세였지만 근접 상황에서 뒤로 공략하는 변칙 머리 공격으로 경기 내내 김향기를 괴롭혔다.

김향기(홍)가 준결승에서 오른발 내려차기를 적중 시키고 있다.

1회전 근접 상대에서 몸 뒤로 올라온 기습적인 머리 공격을 잇달아 허용하며 6대17로 내줬다. 속수무책이었다. 2회전은 곧바로 전략을 바꿨다. 근접 상황을 철저히 차단하며 12대 7로 따냈다.

 

3회전 3대 3 동점까지 추격했지만 종료 14초 결정적인 내려차기를 허용하며 11대16으로 무너졌다.

 

피지컬과 기술적 완성도에서는 우위였지만 거친 경기 운용과 변칙 기술을 구사하는 유럽 선수 특유의 경험 차이가 결과를 갈랐다. 

 

김향기는 경기 후 "결과가 조금은 속상하다. 성과라면 8강에서 중국 선수를 이긴 것"이라며 "네 번 경기에서 매번 졌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겨 너무 좋았다"고 했다. 준결승에 대해서는 "상대가 잘 하는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강했다. 1회전에 당황해서 2회전에서 전략을 바꿨는데 조금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더 준비해서 다음에는 꼭 정상에 서겠다"고 각오도 덧붙였다.

 

한편 2024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준(경희대)은 8강에서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탈리아의 비토와 올림픽 챔피언끼리의 맞대결을 펼쳤다. 역시 경기장은 결승전을 방불케 하는 홈 관중의 열기로 가득 찼다.

 

1회전 초반 리드를 잡으며 흐름을 가져갔지만 비토의 집요한 압박에 종료 직전 역전 몸통을 허용하며 9대 10으로 내줬다. 2회전에서도 끝내 흐름을 되찾지 못하며 6대 10으로 패해 입상권 진입에 실패했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은메달 2개(김유진·서은수), 동메달 3개(홍효림·강상현·김향기)를 수확했다.

 

기대만큼의 메달 수확에는 미치지 못했다.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향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만큼 전략 선수에 대한 집중 훈련과 랭킹 포인트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앞으로 9월 무주 시리즈2, 10월 파리 시리즈3, 11월 아스타나 파이널을 거치며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향한 경쟁 레이스는 계속된다.

 

이날 모든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인근 폰테 델라 무지카 광장에서 이탈리아태권도협회가 주최한 태권도 60주년 기념 갈라쇼가 열렸다. 1966년 이탈리아 내 첫 태권도장 개관을 기념하는 자리로 폐막식을 대신했다. WT 태권도 시범단은 이탈리아에 처음 태권도를 보급한 고 박선재 회장과 고 박영길 회장을 회상하는 스토리로 시범을 선보였다.

 

[무카스미디어 = 이탈리아 로마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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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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