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였던 난민 캠프의 기적... 포기할 수 없었던 ‘태권도 교육의 힘’
발행일자 : 2024-05-06 07:21:22
수정일자 : 2024-05-06 07:47:12
[한혜진 / press@mookas.com]
한국난민기구(KRP) 이철수 교장 “태권도는 ‘전인교육’의 시작점... 무질서한 난민 시민의식 바로잡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동쪽으로 70여㎞ 떨어진 시리아 국경지대. 철조망 안으로 철판으로 만들어진 임시 거처가 빼곡하다. 여의도 3개 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인 시리아 난민 보호구역 ‘자타리 캠프’이다.
캠프 입구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요르단 경찰 검문소가 가로 막고 있다. 그 안에는 한때 세상과 단절된 13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생활했었다.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약 1만7천2백 가구, 8만3천여 명이 거주 중이다. 이들은 특별한 사유 없이는 외부 출입할 수 없다.
태권도 주도로 ‘호프앤드림스’ 스포츠 페스티벌 일환으로 이날만큼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사전 UNHCR 허가를 받고 출입했다. 경찰차 안내로 도착한 곳은 우리에게 낯선 태극기가 내걸린 ‘자타리 태권도 아카데미’였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이듬해 생긴 자타리캠프에 우여곡절 끝에 2013년 설립된 공식 태권도 교육센터이다.
현관을 넘어 들어서자 300여명의 태권도 수련생이 외부 방문객을 반갑게 맞았다. 아랍어를 구사하는 시리아 난민 아동, 청소년 태권도 수련생이 일제히 “차렷, 경례”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데 절도가 넘쳤다.
세계태권도연맹(WT)과 태권도박애재단(THF) 조정원 총재와 요르단태권도협회 등이 태권도 교육을 자발적으로 실천해온 한국난민기구(KRP)와 이곳 수련생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두 단체는 이날 방문을 계기로 3일 MOU를 체결해 이곳 수련생들의 태권도 용품지원은 물론 지도사범도 파견하기로 했다.
사막 한가운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난민 보호구역에 태권도가 보급된 지 11년. 이곳에 태권도를 뿌리를 내린 장본인은 태권도와 전혀 연관이 없는 이철수 교장이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미술교육, 한국어, 내전 트라우마 치료, 유치원 등 다양한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모든 교육은 당연히 무상으로 이뤄진다. 이철수 교장과 더불어 여러명의 한국인, 요르단 자원봉사가 함께 이끌어 가고 있다.
자타리캠프 내에서 인기 있는 교육을 갖춘 이곳에서 교육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건이 있다. 다름 아닌, 태권도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난민 보호구역 특성상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기본 질서를 모르는 대상에 ‘전인교육’을 위해 태권도 수련과 교육과정이 기초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
지금은 이 태권도 아카데미가 자타리 캠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초기 설립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그 과정을 소개하는데 하루도 모자랄 정도라고 이철수 교장은 설명했다.
그런데 이곳에 어떻게 태권도가 시작됐을까.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2012년 자타리캠프가 생겼을 때 이철수 교장은 구호품을 싣고 이곳을 방문했다. 캠프 내 누군가 말을 걸어 창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 모든 구호품을 강도당했다. 방탄조끼에 헬멧까지 쓰고 생활할 정도로 무법지대였다.
이철수 교장은 “처음에는 구호품 전달을 자타리캠프에 첫 방문했다. 차에 구호품을 챙겨 갔다. 누군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어주니 순식간에 위협하더니 모두 훔쳐갔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당시 캠프 내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시달렸다. 정말 무질서 그 자체였다. 심지어 내전을 피한 난민 보호구역인데도 서로 방탄조끼와 헬멧 쓰고 생활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철수 교장은 이대로 한국을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더 큰 세계 재앙이 되겠더라. 적어도 아이들에게 먼저 교육과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이곳에 남아 헌신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우리도 과거 난민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와주자고 결심했다.”
그는 곧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를 만났다. 자타리캠프 난민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질서와 시민교육이 지금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큰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며 태권도 아카데미를 통한 전인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거절’ 통보를 받았다. 가뜩이나 폭력과 강도가 빈번한 무질서한 곳에 태권도 같은 무예를 가르치면 더욱 위험해 질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길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천만하던 시절이다. 피의 보복이 계속됐고, 내전 트라우마로 정서적으로 불안 증세가 컸다.
이 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 칼리안 대표에게 자신이 비슷한 환경에 놓인 대상을 교육한 경험과 노하우,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열정, 구체적인 교육 방법을 설명하며 설득에 임했다.
힘겹게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단, 3개월 시범운영을 통해 중간평가 후 지속여부를 판단하겠는 것. 그래서 급하게 영국 난민지원 국제단체에 대형 텐트를 빌려, 모래를 깔고 맨땅에서 태권도 교육을 시작했다.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난 후 UNHCR 담당자를 초청해 그간의 태권도 교육 수련생들의 공개수업을 선보였다. 그들은 난민캠프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절도와 반듯하게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한 담당자는 제대로 해보자고 손을 잡았다.
그렇게 KRP는 UNHCR로부터 자타리캠프 내에 7천8백 평의 토지를 제공받았다. 그곳에 태권도 훈련센터와 정신교육센터, 영어교육과 한국어교육, 미술, 유치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갔다.
이철수 교장은 태권도와 전혀 연관이 없었다. 레슬링 선수 경험이 전부다. 그럼에도 태권도 교육을 강조한 것은 태권도만이 모든 교육에 앞선 가장 중요한 ‘질서’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곳 교육과정은 태권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숙련기간이 필요하다. 먼저 시작한 태권도 수련생들 교육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흰 띠를 받는데 최소 3개월이 걸린다. 천방지축도 승급을 거듭하면서 질서 있는 성숙아로 자연히 성장한다. 그 후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태권도 지도는 지난 2014년부터 자원봉사로 자타리에 합류한 김문수 사범이 맡는다. 한때 경주시태권도협회을 역임하고, 2011 경주 WT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을 맡아 세계대회를 치렀던 김 사범은 “10년 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태권도로 얻은 은혜 태권도가 필요한 곳에 봉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에 온 것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 비극의 땅에서 내가 가진 재능으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타리캠프 태권도 아카데미가 11년째 운영되면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초기 수련생은 태권도 사범이 되어 요르단 암만 야간대학에 진학해 간호사로 취직했다. 비극적인 환경 속에서 끈기와 인내로 공부를 해 난민캠프에서 벗어나 취업해 시민사회 일원이 된 수련생이 여럿이다. 태권도를 통한 교육으로 꿈과 희망이 없었더라면 이들은 기약 없이 난민캠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태권도를 특기로 미래의 꿈과 희망을 꿈꾸는 수련생도 적지 않다. 3일 암만에서 열린 호프앤드림스 스포츠 페스티벌에서 선천성 지체장애 청소년 모하메드 마헤르 케르만(Mohamad maher kerman, 16)은 비장애인과 겨뤄 2연패를 달성했다. 태권도로 자신감을 키운 그는 다음 패럴림픽 무대에 서는 꿈을 꾸고 있다.
호프앤드림스 태권도 경기장에서 눈에 띈 또 한명인 여성 태권도 수련생 하자르 알 나빌스(Hajar Al-nabilsi, 19). 열두 살이 되던 때 태권도를 배워 지금은 검은 띠 유단자이다. 아홉 살 때 자타리캠프에 입소했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태권도를 시작했다.
태권도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감이 생겨났다. 이는 곧 공부 집중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태권도 덕분에 건강한 심신을 갖춰 자타리캠프 내 고등학생 중 전체 수석이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난민 장학금 프로그램(Student Refugee Program)으로부터 캐나다 유학 대상자로 선정돼 의대 입학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훌륭한 의사가 되어 자신이 처한 난민과 같은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이철수 교장은 작년부터 WT와 THF가 주최한 ‘호프앤드림스 스포츠 페스티벌’에 대해 “먼저 WT와 THF 그리고 조정원 총재께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이날 행사를 1년 내내 기다려왔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외부에 얼마나 나가고 싶겠는가. 나갈 수도 없고, 비용도 많이 나가고, 나가게 되도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어렵다. 특별히 관광을 안 해도 그저 캠프 바깥에 나와 세상을 마주하는 게 아이들은 그저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프앤드림스는 행사명 그대로 우리 난민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그 자체이다. 경쟁이 목적이 아닌 격려를 받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캠프 수련생들과 태권도로 우정을 다질 수 있고 동지애를 느끼는 특별한 시간”이라고 장점을 강조했다.
KRP는 여러 재능 자원봉사로 어렵게 운영 중이다. 더 많은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무법지대였던 난민 보호구역에 태권도 교육으로 꿈과 희망을 안겨준 KRP는 2016년 12월 스포츠분야의 노벨 평화상으로 평가받는 ‘세계스포츠평화상’ 올해의 프로그램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제사회가 내전과 전쟁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그 피해는 평범한 삶을 살던 일반인에게 어느날 닥친다. 지난해 전 세계 난민수가 1억 명을 넘어섰다. 2011년 3천8백만 명에 비해 4개 이상 증가한 수치다.
2011년 3월 아시아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시리아에 내전이 발발했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출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시작됐다. 곧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종파갈등, 주변 아랍국과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등으로 수년간 격화됐다. 여기에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정부군과 반정부군 그리고 IS 등이 대치하면서 사실상 국가가 붕괴됐다.
시리아인권관측소(본부 영국, SOHR) 집계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으로 사망자는 최소 38만명에서 최대 59만 4000명에 달한다. 간신히 생존한 사람도 난민이 돼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시리아는 지리적으로 서쪽으로 레바논,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동쪽으로는 이라크, 그리고 북쪽으로는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시리아 내전으로 피란민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요르단이다. 한때는 최대 130만 명까지 늘었으나 현재는 약 5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은 시리아 국경과 맞닿은 곳에 요르단 정부 지원으로 시리아 난민구역 ‘자티리캠프’를 마련했다. 최대 13명이 머물렀다. 한국난민기구(KPR)은 현재 약 1만7천2백 가구, 8만3천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
[무카스미디어 = 요르단 암만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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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 |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무예 전문기자. 이집트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 섰으며, 20여 년간 65개국 300개 도시 이상을 누비며 현장 중심의 심층 취재를 이어왔다. 다큐멘터리 기획·제작,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진행 등 태권도 콘텐츠를 다각화해 온 전문가로,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과 콘텐츠 제작 및 홍보 마케팅을 하는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국기원 선출직 이사(언론분야)와 대학 겸임교수로도 활동하며 태권도 산업과 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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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이게 진정한 태권도네요2024-05-06 21:40:07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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