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빈 독하게 슬럼프 탈출… 퉁퉁 부은 부상에도 “이겨낼 것”

  

지난해 그랑프리 연승 후 올해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예선 탈락 후 바닥까지 떨어진 감정

이다빈이 준결승에서 8강에서 다친 발목 부상 때문에 기권을 한 후 상대과 악수를 하는데 패자의 아쉬운 표정이 아닌 매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나라 여자 태권도 간판 이다빈이 긴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부상까지 당한 어려운 상황에서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작년에 두 번이나 우승했던 그랑프리에서 동메달 획득이 확정되자 이다빈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이다빈(서울시청)은 3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근교 르발르와페레에서 열린 ‘파리 2023 세계태권도연맹(WT) 월드 태권도 그랑프리 2차 대회’ 여자 67㎏ 이상급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준결승에 들어서는 이다빈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1회전 경기 중 기권했다. 아쉬움이 컸을 텐데 얼굴 표정은 매우 밝았다. 발목 부상 때문에 기권했다. 절뚝이며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심각해 보였다.

 

부상은 앞서 8강전에서 일어났다. 터키의 강호 나피아 쿠스를 상대로 1회전 오른발 발 빠른 내려차기에 이어 왼발 깊숙한 돌려차기로 추가 득점을 올리며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중반 스텝을 뛰던 중 왼 발목을 접질려 갑자기 쓰러졌다. 1분여 경기장에 쓰러졌던 이다빈은 다시 일어났다.

 

7대1로 크게 앞선 상황에서 부상을 당한 이다빈은 흔들렸다. 뒤차기를 허용하면서 역전을 당했다. 초반 분위기와 달라진 양상이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다잡은 이다빈은 다친 발을 차가며 점수를 만회해 11대10으로 극적으로 1승을 먼저 쟁취했다.

 

2회전에 들어선 이다빈의 눈빛이 강렬했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며 승리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었다. 심상치 않아 보였던 부상 상태가 호전된 것 마냥 경기장을 누비며 최고의 경기력을 펼쳤다. 오른발 내려차기로 선취점을 낸 후에 상대를 일방적으로 압박하면서 추가 머리와 몸통 공격을 몰아 부치더니 순식간에 13대1 점수차승으로 경기를 끝냈다.

 

경기장에 빠져나온 이다빈은 최진미 코치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최근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는데 이번 대회 동메달을 확보하면서 성취감을 얻어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상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확인했다. 전자호구 발목양말을 벗고, 테이핑을 제거하니 왼 발목이 퉁퉁 부었다. 복숭아 뼈 부위가 아기 주먹만 하게 부었다. 이미 인대 봉합과 뼈 조각 제거, 신경계 수술로만 세 번이나 한 왼 발목이라 더 심각했다.

 

이쯤 되면 당연히 기권해야 마땅했다. 소속팀 서울시청 이창건 감독과 최진미 코치는 준결승 출전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다빈은 단호하게 출전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기권을 하더라도 경기장에서 뛰어 보다 하겠다는 의지에 결국 준결승 무대에 오른 것이다.

8강 경기중 접질러 왼 발목이 심하게 부었다.

역시나 무리였다.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데 겨루는 것은 더 큰 부상으로 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자처하는 결과가 뻔했다. 아쉽지만 포기를 선언했다. 비록 기권해서 경기를 포기했지만, 이날 전체적인 경기 내용과 결과로 아직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스스로 느꼈는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다빈은 우리나라 여자 태권도 간판 주자이다. 메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이다. 지난해 6월 로마 그랑프리에 이어 파리 그랑프리까지 2회 연속 우승으로 개인 통산 그랑프리 4회 우승을 달성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11월 과달라하라 세계선수권대회 경기 중 손가락 골절 부상을 딛고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문제는 그 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 해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리야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첫 경기에 패했다. 세계선수권 2연패 도전에 나섰던 바쿠 대회에서는 예선 탈락했다. 허무할 정도였다. 올해 첫 로마 그랑프리에서도 16강 탈락, 오세아니아 프레지던트컵과 호주 오픈에서도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바쿠 세계대회 이후로 많이 힘들었다. 마음처럼 안 되니까 무너지고, 힘들고, 그냥 바닥까지 내려간 감정이었다. 계속 메달을 못 따게 되니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경기력도 떨어졌다. 너무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발차기 하나하나가 소중해졌다. 그러다보니 머뭇 거리는게 많아 졌고, 경기는 안 풀렸다”

 

이다빈은 최근 수개월간 부진한 성적으로 온 슬럼프를 겪으며 선수 생활 중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그랑프리는 1년 만에 메달을 목에 건 기쁨은 금메달만큼 만족도가 높았다.

 

“이번에 준비하면서 뭔가에 이번 시합을 계기로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면 했다. 다행히 슬럼프를 이겨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아직 내가 도전하는데 괜찮구나, 희망이 있구나 자신감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소득이다”

 

주로 경쟁하는 상대는 평균 20대 초반인데, 이다빈은 올해 스물여덟 살이다. 태권도 선수로서는 노장이다. 젊은 선수들 특히 주로 경쟁하는 유럽, 아프리카 선수들은 키가 크고 힘이 세다. 지독한 노력 없이는 이들과 경쟁이 쉽지 않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이 든다. 상대 선수와 비교하지 않고 내 경기를 봤을 때 스스로 작년보다 지치는 것 같다. 발이 조금씩 아껴지게 되고, 발차기 횟수에도 차이 느껴진다. 체력운동을 많이 한다고 늘지는 않더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을 유지를 해주는 것 정도. 향상은 안 되는 것 같다. 내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도록 유지와 컨디션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다빈에게 이번 대회 목표는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었다.

 

“이번 목표는 다시 경기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을 되찾는 거였다. 경기가 재밌어져서 빨리 다시 싸우고 싶도록 경기 자체를 즐겨보자라는게 거다. 자신감을 찾는 거다. 솔직히 메달 욕심도 났다. 메달 따본지도 오래됐고. 그럼에도 먼저 즐기고 싶은 마음의 경기를 뛰고 싶었다”

이다빈이 8강에서 승리하자 최진미 코치에게 안겨 울고 있다.

8강전 부상을 당하고서 극적으로 이겨낸 후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이다빈. 왜 울었는지 물었다.

 

“그냥 내가 잘하고 있구나, 세계적 선수들과 싸워도 아직 경쟁력이 있구나. 지금까지 간절함 마음으로 세계선수권과 로마 그랑프리 때까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도 있구나라고 했는데,,,. 그런 노력들이 이전에 했던 노력들까지 이제야 빛을 발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이다빈은 “당장 아시안게임이 2주 남았다. 부상 치료 빨리해서 내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좋은 결과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부상에 정도가 심해 보이는 것에 대해 “다 치료는 안 되겠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이제 내게 더는 포기란 없다”고 말했다.

 

이다빈은 ‘독종’이었다. 그런 독한 마음이 있었기에 여러 부상과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1년여 앞으로 훌쩍 다가온 파리 올림픽, 이다빈은 그날을 위해 다시 뛴다.

 

[무카스미디어 = 프랑스 파리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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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 - 무예 전문기자. 이집트에서 코이카(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26개월 활동. 20여년 동안 태권도 전문기자로 전 세계 65개국 이상 현지 취재. 취재 이외 다큐멘터리 기획 및 제작, 태권도 각종 대회 중계방송 캐스터, 팟캐스트 등을 진행.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사인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도 계속 현장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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