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장사 공성배의 모래판] 1914년 부산항의 여장비(釜山港의 女張飛)
발행일자 : 2022-12-27 16:23:08
[공성배 교수 = 용인대학교 / ]
아래만 속옷으로 가리고 씨름한 부산항의 여장비! 그녀는 조선 여자인가?
1914년 조선총독부의 일간지 매일신보에는 ‘부산항의 여장비(釜山港의 女張飛)’라는 기사가 올라온다. 여기에는 조선 여자로 가늠되는 씨름꾼 ‘여장비(女張飛)’가 보인다.
여성이 남자 씨름꾼과 같이 아래만 속옷으로 가리고 씨름을 했다고 하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다. 그러나 신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미심쩍은 점이 보인다.
첫째, 서로 달려들어 ‘용양호투’로 싸움하는 모양이라는 것과 둘째, ‘배 위에 다가 일천 오백 근 되는 쌀과 흙을 너끈히 십여 석을 싣고 위에다 널을 놓고, 그 위에 절구를 놓고 인절미를 쳐서 구경꾼에게 돌려줬다’는 부분이다.
서로 달려들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스모를 상징하고, 배 위에 절구를 놓고 인절미를 쳐서 구경꾼에게 돌려줬다고 하는 것을 보면 서커스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일제 강점기라 해도 조선의 사회 환경상 결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때 조선에서는 남자들조차 옷을 입고 ‘씨름’을 했다. 그런데 아래만 속옷으로 가렸다고 한 것을 보면 일본의 ‘스모’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필자도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주변 내용을 좀 더 찾아 조사해본 결과 이것은 ‘씨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 때 ‘여자 스모 차력 쇼 전문공연단(일명 서커스단)’이 부산 인근을 중심으로 이와 유사한 공연을 하였고, 1936년 부산일보에는 이와 유사한 기사가 또 나온다.
여자씨름을 했다고 하는 경기장은 일본 스모의 ‘도효(土俵)’이고, 여자들은 언제든지 스모를 할 수 있는 복장을 하고 있다. 옷만 벗으면 바로 여자스모선수로 바뀌게 된다. 즉 성을 상품으로 전문공연단을 만들어 돈벌이한 일본의 상술에 불과하다.
외설에 가까운 여자스모에 관한 기록과 사진은 더 많다. 그리고 메이지 22년(1889년) 여자스모가 발생한 땅 야마가타겐 덴도시(山形県 天童市)의 키요이케하치만진자(清池八幡神社; 청지팔번신사)에 이시야마 효시로(石山兵四郎) 등 3명이 봉납한 그림을 보면, 일본의 여성 스모선수들은 상의를 벗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 매일신보 ‘부산항의 여장비(釜山港의 女張飛)는 일본의 ‘여자스모’를 우리 조선의 ‘씨름’으로 오해할만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조선의 최초 ‘여자씨름 대회’는 전라북도 옥구군(현 군산시) 대야면에서 1937년 10월 5일 여장사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는 기록이 동아일보 1937년 10월 9일 자에 전해진다.
[글. 공성배 교수 = 용인대학교 ㅣ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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