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 태권도 韓 주정훈 ‘동메달’이 값진 이유?


  

[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장애인 태권도 첫 올림픽 무대

한국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주정훈이 2020 도쿄 패럴림픽 패부활전에서 터키 선수를 상대로 뒤차기로 반격하고 있다.

‘패럴림픽’ 최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 종목에 한국 유일의 참가자 주정훈이 극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주정훈(SK에코플랜트, 27)은 지난 3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홀B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 75kg급 K44등급(손목 전체 또는 손목 위, 단일 절단 또는 마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16강 첫 경기에서 장애인 태권도 강국 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 이살디비로프에 31대 35로 석패했다.

 

첫 경기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패자부활전에 나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 8강 패자부활전에서 세계랭킹 7위인 터키 파티흐 셀리크를 잡고, 4강에서는 아제르바이잔 아불파즈 아부잘리를 46대32로 꺾고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했다.

 

16강 패배 안긴 러시아 이살디비로프 동메달 결정전서 설욕… 동메달!

 

상대가 기가 막혔다. 16강 첫 경기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겼던 이살디비로프와 다시 만나서다. 준결승에서 멕시코 후안 디에고 가르시아 로페스에 12대14로 패해 동메달 결정전에 재도전으로 서로 만난 것.

 

눈앞에 ‘동메달’을 놓고 펼쳐진 동메달 결정전. 물러날 수 없는 상황. 주정훈은 1회전부터 공세를 퍼부었다. 1회전 8대2로 기선을 제압하더니 2~3회전까지 주도권을 이어갔다. 3회전 상대의 반격에 나섰지만 후반 오히려 주정훈이 연속 발차기로 승기를 완전히 잡았다. 24대14, 10점차 완승으로 감격의 동메달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4강 패자부활전에서 맞붙어 승리한 주정훈이 아제르바이잔 선수와 인사를 하고 있다.

꿈만 같은 동메달을 획득한 주정훈은 감격했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상대는 주정훈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챔피언”이라 외쳤다. 품격 넘치는 드라마틱한 경기가 끝이 났다.

 

한국 패럴림픽 동메달에 환호하는 이유!

주정훈이 천신만고 끝에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후 감격의 포효를 하고 있다.

혹자는 태권도 강국 대한민국이 장애인올림픽에 단 한 명뿐이 출전을 못 하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명마저도 천신만고 끝에 마지막 아시아 대륙 선발전에서 출전 기회를 얻었다. 다른 경쟁국에 비해 장애인 태권도 저변확대가 지지부진 하고, 국가차원에서 지원이 최근에서야 시작해서다.

 

한 명의 선수가 출전한 만큼 반드시 주정훈이 색깔과 관계없이 메달만이라도 획득하는게 목표였다. 첫 경기 패배로 그 목표가 무산되는 듯했지만 기적 같은 패자부활전으로 메달획득까지 선수단에는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은 하나같이 모두 각별한 사연이 있다. 주정훈도 다르지 않다. 만 두 살 어린 시절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지내던 어느 날. 소여물 절단기에 오른 손목을 잃는 끔찍한 사고가 났다.

 

초등학교 2학년 태권도를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 태권도가 별도로 분류되지 않아 비장애인과 경쟁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 사춘기가 오면서 운동을 그만뒀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꿈꿨다.

 

그러던 중 태권도가 패럴림픽에 정식종목에 채택되었으니 패럴림피언에 도전해보면 좋겠다는 주위에 권유로 2017년 다시 도복을 입게 되었다. 후발주자였던 주정훈은 더욱 많이 훈련하고 준비했다. 마침내 지난 5월 암만서 열린 패럴림픽 아시아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주정훈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러시아 이살디비로프를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동메달을 획득한 직후 그는 “이제 상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며 “태권도로 돌아오길 잘했다”고 이제야 밝게 웃었다. 본인만큼 곁에서 큰 힘이 되었던 가족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들이 세계 3등을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 아들 자랑 많이 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에게도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도 부모님과 메달을 들고 뵈러 갈 것이다. 손자가 할머니 집에서 다치긴 했지만 할머니 덕에 이 대회 나올수 있었다”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자라면서 할머니께서 자책을 많이 하셨다. 이젠 그 마음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해 주위를 감동케 했다.

 

주정훈은 또 패럴림픽을 통해 많은 장애인에게 꿈과 용기를 주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패럴림픽을 마친 후 SNS를 통해 “동정받는 삶보다 동경 받는 삶을 살자”라고 말한 그는 인터뷰에서 “솔직히 장애가 있어 남들과 틀리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선수촌에 들어가서 장애는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뒤늦게 알았지만, 장애가 있는 유년기 청소년기 여러분도 내가 남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밖으로 나와야 동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이 도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권도는 이번 도쿄 패럴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첫 선을 보였다. 2015년 1월 31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집행위원회에서 배드민턴과 함께 도쿄 패럴림픽 정식종목에 채택됐다.

 

패럴림픽 태권도는 겨루기 종목으로 절단 지체장애인이 겨룬다. ▲남자 -61㎏, -75㎏, +75㎏ ▲여자 -49㎏ -58㎏ +58㎏급 등 6체급이다. 양쪽 팔 모두 팔꿈치 아래 장애가 있는 K43과 한쪽 팔 또는 다리 기능에 제약이 있는 K44 등급을 통합해 진행한다.

 

WT 회원국은 전세계적으로 210개국에 이르지만 아직 장애인 태권도 프로그램이 진행된 나라는 100여개국이 채 안 된다. 한국 역시도 다른 나라에 비해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번 주정훈의 동메달을 계기로 한층 선수 발굴과 육성에 박차를 가하게 될 전망이다. 다른 나라 역시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자키아 쿠다다니가 극적으로 탈출해 패럴림픽에 출전 전 세계에 조명을 받았다. 16강 첫 경기에서 패했다. 

한편, 이번 패럴림픽에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 종목은 단숨에 세계에 큰 조명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아프가니스탄 자키아 쿠다다니(23)가 있다. 대회 직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정권에 장악되면서 패럴림픽 출전이 좌절됐기 때문. 그는 SNS를 통해 국제사회에 자신을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세계태권도연맹(WT)은 국제사회와 태권도인들과 합심해 그녀를 패럴림픽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부룬디 출신으로 현재 난민이 된 파르파이트 하키지마나(33)도 어려움을 딛고 올림픽에 나섰다. 지난 96년 반군 공격으로 어머니를 잃고, 본인은 왼팔 장애를 얻었다. 태권도는 재활 목적으로 시작했다. 2015년 르완다 난민 캠프에서 본인이 직접 난민에게 태권도를 지도했다. 본인도 함께 수련을 이어가던 중 이번 패럴림픽에 난민선수단으로 출전 기회를 얻었다.

비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의 덴마크 리사 기에싱이 질병으로 손목을 절단한 후 패럴림픽을 준비해 44세 노장 투혼으로 초대 패럴림픽 태권도 챔피언에 등극후 감독과 감격하고 있다.

비장애인 올림픽 노메달의 아쉬움을 40대 노장 투혼으로 패럴림피언 챔피언도 탄생했다. 덴마크 국가대표 출전한 리사 기에싱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을 끝으로 은퇴한 뒤 골수암 판정을 받은 후 종양 때문에 왼쪽 손목을 절단했던 기에싱. 패럴림픽 정식종목 채택된 소식을 듣고 기에싱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다시 도복을 입고 오늘을 준비했다. 여자 58kg급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편의 드라마를 썼다.

 

한국의 주정훈과 여러 나라의 패럴림픽 출전선수는 하나같이 태권도를 통해 희망의 발차기로 장애를 날려 버렸다.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패럴림픽 태권도가 이들을 통해 많이 소개되어 2024 파리 패럴림픽에는 더 많은 나라에서 더 많은 선수들이 도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뒤늦게 뛰어든 한국 역시도 장애인 태권도에 더 많은 지원과 관심으로 3년 뒤에는 더 많은 선수가 꿈의 무대에 올라서길 기대해 본다.

 

(사진 = 세계태권도연맹)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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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태권도 경기인 출신의 태권도, 무술 전문기자. 이집트에서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26개월 활동. 20여년 동안 태권도를 통해 전 세계 60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태권도 보급 과정을 직접 취재로 확인. 취재 이외 다큐멘터리 기획 및 제작, 태권도 대회 캐스터, 팟캐스트 등을 진행. 현재 무카스미디어 운영사인 (주)무카스플레이온 대표이사를 역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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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부

    좋은기사 감사합니다.
    태권도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게 더 이상 나쁜 점만 있는게 아니군요..

    2021-09-10 00:00:3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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