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의 세계 챔피언들(2)
발행일자 : 2003-02-05 00:00:00
이승환 기자
포틀랜드의 세계 챔피언들(2)
너무 늦은 시간이고, 또 마지막 수업처럼 보여 다음날 아침 일찍 포틀랜드를 떠나야 하는 기자로서는 시간이 없었다. 도장에 들어가자마자 카메라를 들이대었는데, 김병철 사범의 머리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그것이 사라졌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해드셋이었다. 요즘 TV에서 가수들이 쓰고 나오는 무선마이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김사범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무토에서 오셨으면, 이거 한국, 미국에 계신 사범님들, 교수님들 다 보시고 계실텐데, 헤드셋 끼고 음악 틀어놓고 수업하는 거 보시면… 저놈 저거 이상하게 사이비처럼 변했네 하실 것 같아서 무토 기자님 오시자 마자 바로 숨겼습니다. 그런데 들켰네요. 허허허.”
미국생활이 10년이 된 김병철 사범은 아직도 한국에 계신 선배님, 후배님, 교수님들이 무서운(?)모양 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음악을 활용한 태권도 교육방법을 가지고 탓을 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금방 반색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제가 하는데로 그대도 보여드릴까요? 저는 음악을 많이 틀면서 수업을 하거든요. 그럼 수련생들도 좋아하고, 저도 수업지도를 요령 있게 할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그럼 눈치 안보고 우리가 하던 데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김병철 사범은 다음 수업의 학생들을 정열시키고, 한국의 무토에서 수련생들의 수업광경을 담기 위해서 오셨다고 소개시키며 기자를 학생들에게 인사시켰다. 인사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도데체 어떻게 수업을 하길래, 해드셋까지 숨기려고 했을까 하는 궁금중에, 점점 더 흥분이 되었지만, 그 긴장감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건 분명 나이트클럽의 굉음이었다. 폭발적인 사운드들은 앰프를 거쳐 천장스피커를 통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더욱 기자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 노래가 다름아닌 한국의 잘나가는 가수 싸이의 “챔피언”이 아닌가?
싸이의 노래가 도장을 울리면서, 관원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리듬에 맞춰 뛰다가 김병철 관장이 지시를 하면 지시에 따라 수련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점프를 하기도 하고 다리를 꼬아 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고, 수련생들은 너무 즐겁게 달리고 또 달렸다. 신기하게도 김병철 사범이 이야기를 할 때는 음악소리가 줄어들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음악 볼륨이 말을 할 때 마다 자동적으로 오디오 볼륨이 조절이 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사람들은 다시 정열을 하고 앉아, 조용한 동양의 음악을 들으면서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명상이 끝난 후 다시 다양한 수련이 시작되고 음악은 계속되었다. 김병철 사범이 수련생들에게 미트 발차기 연습을 시킬 때도 음악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1시간을 보내고 나니, 수련생들은 몸은 땀 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기자가 물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음악을 틀어놓고 하면, 힘든 걸 모르고 계속 운동을 할 수가 있고, 움직일 때 일종의 동기유발이 된다, 신나지 않는가? 너무 만족하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기자도 녹초가 되었다. 정신없이 수련생들과 같이 뛰면서 촬영을 하다 보니 지쳐버린 것이다. 한 수련생이 다가와 자기는 무토를 태권넷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 하며 왜 요즘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뜨끔한 마음을 감추고 개편중이라 3월중에 새롭게 단장한 영문사이트가 오픈할 것이라는 답을 주었는데, 어찌나 기뻐하던지, 당황스러웠다. 순간 많은 책임감이 가뜩이나 피곤한 어깨를 눌러왔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김병철 사범의 집에 도착했다.
넉넉하고 깨끗하며 포근한 집안 분위기가 느껴졌다. 밝은 웃음으로 김제경 선수와 기자를 맞는 부인은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한국여성 이었다. 정성껏 마련한 한식을 보고 혹시나 기자 때문에 준비하신 것 아니냐고 묻자, 김병철 사범은 우리집에서 한식 안했다가는 큰일납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랜만에 정갈하게 차려진 한식단 앞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김병철 사범은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10년 전 쯤에 미국에 들어와서 정말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했다면서, 지난 10년간의 힘들었던 이런 저런 미국 정착생활에 대해서 토로했다.김 사범의 부인이 옆에서 거들었다.
“정말 처음에는 악으로 버틴 것 같아요,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죠. 미국 생활할 때 한국에 돌아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 6개월에서 2년째가 고비인데 한 2년 정도 지나니까 그때 부터는 적응이 되더라구요. 미국 내에서 사범생활로 경력을 어느 정도 쌓고난 후 도장을 열었을 때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열심히 하면, 수련생들이 다 이심전심으로 알아주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요즘은 더 겁이나요, 이제 자리 좀 잡으니까 이제는 밑으로 다시 떨어질까봐 겁이 나더라구요.”
지금은 자리를 잡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사범은 “저는 자신 있습니다. 근처에 무술 도장이 들어와도 저는 별 신경 안씁니다. 제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경쟁상대는 휘트니스 클럽이라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좋은 시설과 영업력과 자본력으로 밀어부치면 좀 걱정이 되지요. 뭐 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휘트니스 클럽을 접목해 태권도 도장을 해보고 싶습니다.”
김제경 선수가 미국땅에서 빠르게 적응한 것이 김병철 사범과 부인의 역할이 컸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김제경 선수가 형수님이 초기에 도와줬던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화답하자, 김병철 사범은 “뭘요 제가 뭐 도와준게 있나요.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거죠, 사실 저는 제경이에게 수업에 진행 방법에 대해 제 방식을 강요하지도 않고, 또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그건 스스로 자신이 찾아가야하는 거죠. 제경이는 제경이 대로 색깔이 있고 저는 저대로의 색깔이 있는 겁니다. 제가 먼저 좀 정착했다고 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신만의 색깔과 운영방법이 나오지 않겠어요? 저는 사실 제경이 도장 오픈 하고 도장도 일부러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자리를 잡아가면서 잘하고 있으니까 든든합니다. 이제 와이프만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미국에서 특히 LA도 아니고 포틀랜드 같은 조용한 도시에서 가족없이 혼자 도장을 운영하려면 정말 힘들 것 같은데, 김제경 선수는 어떻게 버티냐고 묻자,
“아무래도 가족이 있으면 좋죠. 저도 빨리 장가를 가야 하는데.. 이거 여자가 없으니, 걱정입니다. 기자님이 소개좀 시켜주시죠.”
이야기가 깊어지고, 포틀랜드의 두 올림픽 챔피언들과 그 단란한 가족들의 이야기로 포트랜드의 밤은 깊어만 갔다.
포틀랜드의 챔피언들,..
김제경 선수와 김병철 선수의 도장 수업 방법은 동영상을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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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이국 땅에서 우리의 자랑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해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군요. 항상 건강하세요..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구요.. ^^2003-02-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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