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타이 집중조명] ① 드바라바티 시대의 무에보란


  

중세 태국 무에타이의 역사, 드바라바티 시대에 대하여...

[무에타이 집중조명] ① "드바라바티 시대"

'드바라바티'(Dvaravati)는 기원후 6세기경에서 11세기경까지 태국에 처음 전달되어 주류를 이룬 특정 불교문화의 양식 또는 고대 왕국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불교문화 양식으로써 논하겠다. 기원후 6세기경부터 11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우리 역사에서 삼국시대 중반쯤부터 고려가 문벌귀족의 폐단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시기까지다.

 

이렇게 놓고 볼수록 그 시간의 길이는 단일 국가의 존속보다는 문화 양식의 존속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방콕국립박물관의 드바라바티 시대 유물 "Wheel of the Law and a crouching deer" [사진 출처 : 권석무]

태국의 초기 불교문화로 인식되는 드바라바티 불교양식은 태국 중부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발전했다. 중국 당나라의 승려, '히우안-창'은 '파간', '타가웅', '할린', '마잉마우', '빈나카', '베익탄노', '스리 크세트라', 이렇게 '퓨' 지역의 7개 도시와 '첸라' 사이에 위치한 '트오로포티' 왕국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국 사학계에서는 이를 드바라바티 왕국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의 기록과 더불어 현재의 태국 중부지역에서 발견된 은화에 적힌 문장에 따르면 '드바라바티 국왕의 위대함' 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드바라바티는 하나의 국가보다는 특정 지역에 걸쳐서 나타나는 불교문화 양식의 일종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욱 일반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트오로포티 왕국은 당시 태국의 고대 국가였던 '라보' 왕국의 일부 도시국가 또는 다른 이름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드바라바티 문화 양식은 출토된 유물들의 분포를 통해 유추해보았을 때, 태국 중부지역을 시작으로 동부, 동북부, 그리고 일부 남부와 북부에 순서대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드바라바티 문화는 당시 인도의 불교문화를 수용하여 발전했는데, 전달된 인도 불교문화는 시간이 지나, 태국만의 독특한 예술 양식으로써 재창조되었다.

 

드바라바티 양식의 예술품들은 주로 태국의 상좌부 불교에 영향을 끼쳤고, 중생들의 개인 수양과 신앙심이 반영되었다. 이러한 상좌부 불교문화는 근대의 시암, 현대의 태국 사회와 문화의 근간을 이룬다

 

드바라바티 시대 이전 혹은 동시대에 제작된 조형물들에서는 힌두교와 대승불교 문화의 흔적 또한 발견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도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다. 기원후 11세기까지를 드바라바티 문화가 지속된 기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기원후 12세기까지도 태국 최북단 지역에서는 드바라바티 방식의 불교 수행이 이루어졌다.

 

드바라바티 문화권에 속한 대표적인 태국의 고대국가로는 '라보', '우통', '하리푼차이' 왕국 등이 있다. 태국 중부 지역에 위치한 라보 왕국보다 북부에 위치했던 하리푼차이 왕국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드바라바티 문화에 속한 대표적인 국가는 라보’ 왕국이다. 중국에서는 '라과'(羅渦) 또는 '역라곡'(或羅斛)이라고 불렀다. 이 왕국은 기원후 5세기경부터 13세기경까지 존재한 '몬' 족의 왕국이다. 라보 왕국의 존속 연도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도가 기록된 현지자료가 있으나, 해당 자료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라보 왕국은 드바라바티 문화에 속해있는 국가였으며, 이후에는 크메르 제국의 지배를 받아 크메르 풍의 롭부리 문화에도 속하게 된다.

 

우통 지역은 본디 라보 왕국에 속한 지역 중 하나였으나, 8세기경에 라보 왕국이 '스리비자야', '첸라' 왕국과 같은 외부세력에 의한 침략, 내부적 갈등으로 여러 도시국가들이 분열되면서 우통 또한 그 중 하나의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우통에서는 로마 제국에서 분리된 갈리아 제국을 기원후 269부터 271까지 다스렸던 빅토리누스 황제의 동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10세기에 이르러서는 분열되었던 과거 라보 왕국 지역이 크메르 제국의 식민지로써 정복됨에 따라 '롭부리' 혹은 라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당시 수많은 도시 국가들 중 우통 지역을 구태여 따로 이야기하는 것은 후에 건국되는 아유타야 왕국의 초대국왕인 라마티보디 1세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유타야 왕국은 우통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들이 건국한 국가다. 우통 지역은 '황금의 땅', '금의 도시' 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라보 왕국의 우통 지역과 관련된 사료를 조사해본 결과, 드바라바티 시대에 찾아볼 수 있는 무에타이와 관련한 직접적인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당시 무예 수련과 관련한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인도와의 문화적, 종교적 교류에서 인도권법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드바라바티 시대 이후에도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인도의 '팔리' 문화와 스리랑카의 '랑카' 문화와 같은 남아시아 지역의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특히 후술할 스리비자야 시대에는 이와 같은 남아시아 지역과의 교류가 더욱 확대된다.

 

더욱이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이었던 크메르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만큼, 크메르 제국 군대 무예의 영향 또한 받았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크메르 제국 또한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자바' 지역을 통해 인도 문화를 수용했던 만큼, 태국이 지난 수 세기에 걸쳐 반복해온 외침과 정복, 그리고 평화로운 교역의 내면에는 인도문화가 뿌리 깊게 뻗어있었고, 그 문화의 방대한 유입과 융합을 짐작케 한다.

 

훗날 태국 중부에 위치했던 수코타이 왕국에서 정치적으로 은둔 중이었던 '수카 탄타 루에시'는 '수데바 루에시'의 절친한 벗이었다. 수데바 루에시는 왕족들에게 다르마와 교양과목을 지도하는 국사(国師)였다. 수카 탄타 루에시는 친구의 도움으로 '라바푸라' 시내에 위치한 '카오 사모르 콘'에 자신의 사설 교육시설을 설립했다.

 

이 교육시설에서 수업하는 과목에는 신체가 건장한 남성들이 배울 수 있는 '마이야 사스트라'가 포함되었다. '마이야 사스트라' 과목에서는 맨손 무예와 검술, 궁술 그리고 코끼리 조련술을 배웠다.

 

수련에 참가한 남성들은 전쟁에서 사용하기 위한 무예를 매우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서 교습소에서 수련했다이러한 교습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왕족 학교와 대중 공용 학교로 구분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당시 무예에는 현대 무에타이 형태의 맨손 무예뿐만 아니라 무기술까지 포함되었다. 잦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당시의 왕과 신하들, 군인 그리고 일반 백성들까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방어를 목적으로 무예를 수련했다. 이 당시 격투 경기 대회들은 불교사원에서 각종 축제와 행사의 형태로 개최되었으며, 여러 교습소의 수련자, 지도자들이 상금과 명예를 목적으로 참가했다.

 

<위 내용은 권석무 기자가 집필한 「태국의 혼, 무에타이」(2020)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객원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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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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