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무관 노병직은 도대체 몇 단일까...?


  

역사속의 태권도근현대사 15편 - 노병직 2회

역사를 바라볼 때 한가지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의 평화로운 공존이 있어야 한다. 필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 컬럼 역사속의 태권도역사”는 펙트를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참고문헌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태권도역사를 격동의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현재 태권도가 가고자 하는 올바른 길을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간혹 이 컬럼이 다른 이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하며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도 나오길 기대한다. [필자 주] 

 

당시 쇼토관(松道館) 수련생 중 조선인은 노병직 한 명 밖에 없었다. 1936년 당시는 중일전쟁과 민족말살통치로 조선인을 탄압하던 시절이었으니 일본 본토에서는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을 지 짐작이 간다.

쇼토관(松道館)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노병직의 아들 노희상(현 송도관 관장)인터뷰를 보면, 도장 입관 6개월동안 '조센징'이라는 이유만으로 청소와 신부름 등 허드렛 일을 했다. 노병직을 괴롭힘을 당했지만, 꾹 참고 시키는 일을 묵묵히 했다고 한다.

 

6개월쯤 지나 후나고시 선생이 청소만 하는 젊은 청년을 보고 자초지종을 물어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을 듣더니 "너 앞으로 운동을 재대로 배워 보겠느냐"라고 물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쇼토관(松道館) 카라테 수련을 시작했다.(박규태 2019)

 

현대 태권도 원류 송무관 창립에 대한 연구(김영선 2019)에 보면, 노병직의 무예경력에 미진한 점을 지적하고 그의 단수는 3단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잘못 기재된 내용으로 추정된다. 그의 단수는 4단으로 되어 있고 그것을 증명하는 단증이 있기 때문이다.

단증의 내용을 보면 우(右)의 사람은 쇼와 18년(1943) 11월 일본공수도 개조 후나고시 기친 선생님께 4단증 증서를 수여받음을 여기에 증명함. 사단법인 일본공수도협회 사임담담역 고본정조 라고 정확하게 써 있다.

 

이 단증은 태권도노병직 송무관 창시자의 삶(박규태 2019)의 논문에 수록된 사진으로 출처는 아들인 노희상의 소장자료이다.

 

4단이면 상당한 무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의 선생인 후나고시가 직접 인정해준 단증으로 이를 더욱 신빙성있게 한다. 1937년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해서 4단이 되는 1943년까지 6년밖에 걸리지않은 셈이다. 당시의 수련강도와 승급체계를 볼때 노병직의 무예실력이 매우 뛰어 났음을 보여준다.

 

현재도 4단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정도가 걸린다고 추정하면 송도관의 첫 조선인 수련생 노병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는 어렸을 때 무예를 배우지 않았으면 절대로 할수 없는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노병직은 어린시절 수박희와 전통무예를 수련했음이 증명되는 셈이다.

 

송무관의 탄생 비화!

 

송무관은 어떻게 창설되었을까 그 역사속으로 들어가보자.

 

송무관의 명칭은 소나무를 상징하는 송(松)자로 사계절 언제나 프르며 푸른 것은 젊음과 삶의 생기와 양동을 뜻하고 또 우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나무다.

 

장수를 누리는 십장생중 하나인 소나무 송(松)이고 내가 일본에서 쇼토칸 가라테(松濤館)를 전수받은 출신 도장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강원식, 이경명 1999, 노병직 1999, 서성원, 2007, 김규태 2019)

 

송무관의 창설시기도 여전히 태권도사(史)에서 논란거리다. 이에 대해 송무관 창설자인 노병직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 송무관을 창설하게 된 동기

 

나는 유학을 목적으로 1936년 3월에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동경에서 유학 하는 한편 같은해 1936년 12월에 일본 공수도시조 송도관(松道館)에 입관하여 후나고시기찐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그후 나는 학교 방학이 되면 고양인 개성에 와서 일제에 억눌려 힘을 잃고 기를 피지못하고 살고 있는 내친구와 후배들에 공수도(가라테)를 가르쳐주고 용기를 북돋어 주었다. 1944년 2월에 완전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귀국한 것을 알고 친구와 후배들이 찾아와서 도장을 찾리고 공수도를 지도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힘을 입고 용기를 내어 승락했으나 갑자기 도장을 할만한 장소와 건물이 없어서 고민하던 중 개성시중앙부에 있는 자남동 자남산 소재 관덕정(觀德亭)”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아 결정한 다음 관할 경찰서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허가원을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서 1944년 3월 20일 송무관을 시작한 것임.

 

1. 단체명 : 공수도(空手道)송무관

2. 장    소 : 개성시 자남동 관덕정 구 정자(亭子) 건물

3. 지도사범명 : 노병직

4. 교 습 명 : 일본공수도(가라테)

5.교습시간 : 매일아침 6시부터 2시간내

 

그 당시는 제2차세계대전이 치열한 때여서 조선인이 집합하게 되면 반드시 관할경찰서에 허가를 받아야 되는 삼엄한 시기였다. 일본가라테를 가르친다고 하니 허가를 무난히 받았다. 반대하기 보다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었다.(박규태 2019)

 

(다음 편에서 계속)

1. 송무관 창설 장소 관덕정은....?

2. 송무관 창설의 엇갈린 주장....?

 

[글. 엄재영 사범 | 대망태권도 관장, 북경체대 교수 ㅣ kaika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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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재영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가르친다.

대한민국 체육훈장 기린장 수훈
현)대망태권도관장
현)북경체육대학교 교수
현)2020년 대한민국 품새 국가대표
현)국기원 강사 / KTA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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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라사대

    일제에 억업받는 사람들 용기를 북돋아 주기위해 가라데를 가르쳐준다???

    2020-11-23 11:47:14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태권인

    현대 태권도사 태동기에 대한 주제라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고(故) 노병직 선생님은 현대 태권도의 원류로서 5대 기간도장인 송무관을 창설하셨고 1966년 대한태권도협회 4대 회장을 역임하셨던 주요 인물이십니다. 따라서 그 분의 일대기는 ‘태권도 역사적 관점’에서 엄밀하게 재조명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재 국기(國技)이자 세계적 무예스포츠로 발돋움한 태권도의 형성과 발달 과정에서 노병직 선생님은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하셨으며 또 어떠한 무예 사상(思想)으로 활동하셨는지가 주된 논점이 되겠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전통무예 송도(松都, 개성) 수박(手搏)과 쇼오토오칸 카라테 수련 경력과 단수(段數), 송무관 창립 일자와 장소 등도 구체적인 사항도 포함되겠습니다. 그러한 내용들은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객관적인 시각과 신뢰도 높은 사료적 근거에 따라 밝혀져야 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도 나왔듯이 노병직 선생님의 단수(段數)가 당시 3단이었음을 언급했던 당사자가 저입니다. 저는 1947년 송무관 개설 당시 보도된 신문기사를 근거로 하여 그 분이 3단이었음을 논문을 통해 주장하였습니다. 1983년 발부 받은 쇼오토오칸 4단 단증 확인 증명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주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제시한 1차 사료인 ‘신문기사 1건’이 왜 그보다도 신뢰도가 높은지는 다른 지면을 통해 상세한 견해를 밝힐 것입니다.

    노병직 선생님의 일대기는 현대 태권도의 역사적 정체성과도 직결된 주요한 사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와 친분이 있는 엄재영 필자께서 명망 높은 한 태권도인으로서 그리고 객관적 관점에서 이 주제를 잘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본문에 나온 오타를 수정하시길 바랍니다.
    노병직을→ 노병직은, 자초지정→ 자초지종,
    현대 태권도 원류, 송무관 창립에 대한 연구(김영선 2018) → (김영선, 2019)
    태권도노병직 송무관 창시자의 삶(김성태 2019) → (박규태, 2019)가 아닌지요?
    박규태 씨의 석사 논문(2019)으로 판단됩니다.
    • 장수를 누리는 십장생중 하나인 소나무 송(松)이고 내가 일본에서 쇼토칸 가라테(松濤館)를 전수받은 출신 도장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강원식, 이경명 1999, 노병직 1999, 서성원, 2007, 김규태 2019) → 개성 송무관의 어원을 논할 때는 개성의 옛 고장의 이름인 ‘송도(松都)’와도 관련되었음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김규태 2019) → 박규태, 2019)

    2020-11-21 00:46:53 수정 삭제 신고

    답글 0
    • 엄재영

      괌심있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태권인의 의견을 매우 존중합니다. 저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역사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한가지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평화로운 공존이 있어야 건강한 역사관이 탄생한다고 봅니니다. 혹 저의 주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틀렸다거나 비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오탈자를 직접 잡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이거에 약한 편이거든요!
      감사합니다.

      2020-11-23 20:31:12 수정 삭제 신고

      0
  • 기억하고 기록하다

    아베가문 망언역사
    아베가문은 한마디로 ‘침략의 가문’이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의 친손자가 현재의 일본 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다.징병·징용 및 근로보국대 기피자를 마구잡이로 색출했으며, 심지어는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해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에게 정신근무령서(挺身勤務令書)를 발부했고, 이에 불응하면 국가 총동원법에 의해 징역형을 때리기도했다.이자는,일본이항복하자 총독부에서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한국을 떠나는데, 그때 남긴 가증스러운 말이 있다.“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일제강점기)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2020-11-11 18:13:35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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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K men

      현재의 일본 총리는 아베 신조가 아니라 스가 요시히데로 알고 있습니다.둘다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것 같지만요.

      2020-11-14 00:41:23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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