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희 칼럼] 북한태권도는 있었다.


  

중국에서 본 북한태권도의 씁쓸한 현실

북한태권도라 잘못 알려진 ITF태권도. 이번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북한태권도는 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지난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기 전 중국의 연길에서는 작은 규모의 ITF대회가 열렸다. 초청을 받아 짧은 일정으로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북한 사범들 3명을 대회장 환영 만찬에서 보게 되었다.

 

각 대표를 소개하면서 북한 사범들이 소개되고 이후 필자가 소개되었다. 순간 북한 사범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다.

 

북한 사람들을 실제로 보게 되니 무거운 긴장과 함께 여러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한 명은 남북 교류 시범단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40대 후반의 7단 사현(ITF에서는 4~6단을 사범, 7~8단을 사현이라 칭하고 9단을 사성이라 칭한다.)50대 초반의 사현 그리고 30대 초 중반의 사범이 함께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필자는 주변 교포 사범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내심 복잡한 심경이었다. 북 사람들이지만 7단이라 필자보다 단이 높은 선배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ITF는 단을 쉽게 주지 않는다. 보통 7~8단은 각 나라의 수석사범 또는 단체장으로 각 나라의 지부를 담당하는 정도의 단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9단은 그리 많지 않다)

 

수련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북을 떠나 당연히 다가가 후배로서 먼저 예를 갖추어야겠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은 관계이다 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옆의 교포 사범에게 먼저 인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했더니 하지 말란다. 그냥 신경 쓰지 말라고.. 그 교포사범은 나이가 30대 중반에 6단 사범이었다. 너무 쉽고 당연하게 만류하는 그의 행동에 놀랐다.

 

약 5분 정도 지났을까? 이런저런 생각만 하기보다 같은 도복을 입는 사람으로서 예를 먼저 갖추어야 내 맘이 편할듯하여 먼저 찾아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ITF사범입니다.” 라고 하자 고개를 반쯤 돌리고 올려보며 경기장에서 봅시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 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많은 장벽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교포 사범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중국 사범에게 고용된 사람들이란다. 중국의 사범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북에 요청해 사범들을 고용한다고 했다. 비용은 대략 2~3명에 100만원  정도. 그나마 그 비용조차 모두 북으로 들어가고 숙식만 제공해준다고 한다. 교포사범이 왜 먼저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지가 이해되는 순간이었으며 이 사람들이 북한 사범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주마다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더 경계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한국의 ITF에서 왔다고 하니 더욱더 그랬으리라.

 

이후 환영 만찬이 끝나고 북한의 사범들은 자리를 뜨고 다음 날 있을 대회 심판교육을 진행했고 필자는 교포 사범들과 숙소로 향했다.

 

이후 대회 당일 경기장에서 다시 마주친 북한 사범들은 배심원으로 경기를 주관하고 있었다.

 

필자는 본부석에서 주최 측 회장과 함께 관람하고 있었다. 중국 각 도시의 회장들은 생각보다 나이가 어린 편이다. 북한의 사범들은 심판과 배심장으로 열심히 경기를 이끌고 있는듯해 보였다. 그러던 중 배심의장 역할을 하던 40대 후반의 7단 사현이 중국 현지 회장에게 다가오더니 경기 관련 허락을 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 중국 주최측 회장과 러시아 대표 코치와 함께 >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대체로 ITF 7단 정도의 지도자라면, 보통 다른 직업을 겸하더라도 자신의 클럽이나 도장 등의 장소에서 수련자들의 지도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보다 단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고용이 되는 일은 내가 아는 한 없다. 하물며 특히 7단 이상이 말이다.

 

그런데 자신을 고용한 나이도 어리고 단도 낮은 사범에게 머리 숙여 허락을 구하고 잘 보이려는 모습을 보고 같은 ITF사범으로서 화가 났다.

 

나보다 선배인 대상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자존심 상했다. 게다가 자신이 속한 도장에 일부 편파적인 판정까지 하면서 자신을 고용한 사람에게 잘 보이는 모습 또한 ITF의 선배로서 자긍심도 자부심도 자존심도 없어 보여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물론 한편으론 먹고사는 문제로 생각하자니 안쓰러운 마음도 들 수 있다. 그러나 단체가 나누어져 있다 한들, ITF 사범 한명 한명이 국제무대에서는 모두 태권도의 얼굴이 되어야 하는 대표 격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그에 관한 인식이 아예 없는 듯하여, 무척 화가 났다.

 

북한이라는 자유롭지 못한 특수한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해외 출입도, 자신의 직업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설사 태권도를 하고 있다 한들, 마음대로 도장조차 열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예전에 러시아 현지에 심사 참관을 하러 갔을 때 현지 고려인 사범이 넌지시 일러준 말이다. 러시아에 와 있는 북한 ITF사범들의 태권도 클럽이 고려인 사범들의 클럽에 비해 잘 운영되지 않는단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텐데, 오히려 고려인 사범들에게 용돈을 달라고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오히려 낯이 뜨거웠다.

< 러시아 각 지역 심사 참관 후 >

북한의 ITF사범들의 이런 모습은 최홍희 창시자가 생각해왔던 ITF사범으로서의 모습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세미나 중인 ITF창설자 故최홍희 장군 >

북한은 1980년대 초반에 적극적으로 ITF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ITF를 순수한 문화로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외화벌이와 정보 수집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독점하려고 현재도 왜곡 선전에 노력을 쏟고 있다.

 

해외에 ITF태권도의 발상지가 북한이라며 거짓 선전까지 하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ITF를 흔히 북한 태권도로 칭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실정이다. 게다가 근래 북한 시범단의 시범 역시 ITF태권도의 본질을 벗어나, 마치 WT시범단을 따라가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이랬든 저랬든 북이 회원국 중 하나로서 ITF의 세계화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故 최홍희 장군의 별세 후에 보이는 행보는 마치 선로마저 이탈한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를 연상케 한다.

 

이런저런 내용을 정리해 보고 직접 보니 지금의 북한의 ITF, ITF를 표방하는 ITF식의 북한태권도란 표현이 오히려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력 좋은 수련자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북한 사범 개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 또한 그들이 속한 체제와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니 말이다. 하루빨리 인민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좋은 환경에서 지냈으면 한다.

< 중국 도문에서 바라본 북한-저기 보이는 다리를 건너면 북한이다 >

올해 411일은 태권도 탄생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국제태권도연맹 창설 멤버이며 당시 최홍희 장군에게 북한에 보급을 권유한 당사자인 선배님의 방문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추후 그의 증언을 통해 왜곡된 역사와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많은 자료를 공유하도록 하겠다.

 

태권.

 

# 코로나 19로 인한 많은 도장과 체육관들의 어려움이 하루빨리 나아지길 바랍니다.

 

[글. 유승희  사범 | 국제태권도연맹 한국지부 사무총장ㅣ pride65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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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희
현) 사단법인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사무총장
현)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 중앙도장 지도사범

2017 ITF코리아오픈국제페스티벌&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
2017 ITF일본 도쿄 챔피언쉽 대한민국 선수단 단장
2018 ITF아르헨티나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대한민국 대표단장 및 수석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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