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철 칼럼] 지키고 싶은 태권도 이야기


  

태권도의 올바른 가치

‘씁쓸하다’라는 표현은 어중간한 상태를 설명할 때 가장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어깃장을 놓는다면 찬성은 못 하지만 그렇다고 혈기 있게 비판하고 싶지도 않을 때 쓰면 좋은 표현이다.

 

까닭은 이렇다.

 

비판은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비판은 사람의 마음을 훼손시키는 힘 역시 지니고 있다. 더불어 비판은 단 한 번도 객관적인 기준에서 해석된 적이 없다. 상식과 객관성은 이미 절대적 기준이 상실되었고, 그로 인해 이념에 의해 유동적으로 재해석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상식과 당신의 상식이 다르고, 우리의 객관성과 당신들의 객관성 역시 다르기에 우리는 기준이 없는 세상에서 각자의 생각을 관철하고, 결국 반편에 존재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씁쓸하다’라는 표현은 시대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 중 하나일지 모른다. 좋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틀렸다고 전하지도 않는 표현인 '씁쓸함'은 꽤 매력적이다.

 

태권도장 역시 씁쓸한 시국에 들어섰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문제를 진단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성공한 경영인들은 경영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케팅과 서비스에 주력해야 하고, 그 외에 수많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몫이 필수이다.

 

마케팅과 서비스 그리고 그 외에 많은 것들로 인해 성공한 것처럼 포장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소비의 주체인 아이들 있는 곳에서 도장을 꾸려야 경영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원 수를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부정하겠지만, 개개인의 능력에 의해 성공이라 치부될 수 있는 영역은 그 자체에 가치가 존재해야 하며, 그 자체로부터 가치의 재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태권도장은 그 부분에 있어서 일정 부분 소비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래서 소비자에 의해 태권도장이 형태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의 성공은 개인의 영위에 국한되었고, 태권도 가치는 퇴보시켰다. 태권도장의 성공은 소비자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를 가장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이 가장 중요하게 돼 버렸다.

 

많은 태권도 지도자들이 지쳐있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바이러스 사태, 협회의 부조리, 끊임없이 괴롭히는 차량 관련 제도들로 인하여 염증 지수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부합한 행동들을 쉽사리 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더욱이 안타까운 사실은 동종 업계 사람들이 태권도장 자체를 한심하게 보는 경우들이 있다. 사범 생활을 하다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인하여, 사범이란 직업 대신 다른 업종을 선택하고, 그 업종에서 많은 수입을 얻고 나서는 그들의 후배 혹은 친구들 앞에, 태권도의 길을 ‘어리석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그들의 말처럼 태권도업에 종사하는 지도자들이 어리석은 것 인지도 모른다. 사회적 존중도 없고, 그렇다고 많은 수입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적으로 보호를 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출발선에는 그런 기준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좀 더 빠르게 달려 앞차를 추월하더라도 우리는 그 차를 똥차라 부르지 않았다. 여전히 선배였고, 여전히 태권도를 하는 동지였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관원 수에 따라, 협회의 직함에 따라 층위가 정해지고 말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수확했던 땀방울과 우리가 맺었던 인연의 성질이 변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태권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이 다른 업종과 다를 게 없게 되었다. 태권도라는 가치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그런 징후 중에 또 다른 시도가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이다. 여러 이름으로 기술체계를 말하고 그것의 시작이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 아니었던 게 어디 있었나?

 

이 모든 것이 전복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태권도라는 것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잘한다’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태권도 자체가 훌륭하다’에 편승하여서, 태권도에 기생하면서 사는 것이, 태권도가 ‘가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된다면, 관원이 적든 많든, 새로운 것을 발견하든 못하든, 협회의 직함이 높든 낮든 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수평적 관계에서 태권도가 갖는 자체적인 우수한 가치에 의해 빛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조건에 의해 상대방을 ‘무능’하다는 식으로 네거티브 했다.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15학번 윤하는, 삶의 가치를 태권도에 두었다

우연히 알게 된 경희대 태권도 학과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이 이력이 매우 특별하다. 미술로 예고를 나오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로 유학을 하러 갔다. 그러던 중 어릴 적 했던 태권도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해졌고, 결국 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1년 공부 끝에 경희대 태권도 학과를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졸업을 앞둔 그 학생은 서른 살이 되었다.

 

여전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태권도를 할 수 있고, 태권도 학과의 4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고 고백하는 그 앞에서 필자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태권도가 갖는 가치 앞에서 경의를 표하고 있는 그 학생 앞에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태권도를 통해 얻은 힘을 자랑하기 바쁘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 칼럼을 쓰고 나면 많은 사람이 ‘현실을 모른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 칼럼은 그 현실 앞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없고 태권도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되고, 지구는 지구촌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겸손하지 못했던, 태권도 학과 교수, 협회의 임원, 그 외 많은 지도자가, 이 학생의 이력 앞에 다시금 우리들의 출발선에 무엇이 있었는지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글 = 정준철 사범 ㅣ press@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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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철
긍휼태권도장 관장

브랜드발전소'등불'대표
대한태권도협회 강사
TMP격파팀 소속
<도장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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