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타이에도 '품새'가 있다?!


  

입식격투기의 대명사 무에타이에도 태권도와 같은 품새가 있다?!

태국 방콕 라자담넌 스타디움의 경기전 와이크루 의식 모습

 

무에타이(MuayThai)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격투기', 'K-1', '실전 타격기' 등이 떠오를 것이다. 다른 말로는 우리가 무에타이를 떠올렸을 때, 흔하게 무도(武道)나 무술(武術)이라고 칭하는 종목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종목으로 느낀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필자는 태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무에타이의 문화, 역사 등을 연구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바로 국내에 알려진 무에타이에 대한 정보가 앞서 언급한 실전 격투기로써의 측면으로만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무에타이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무에타이에도 태권도의 품새, 가라데의 형(形), 유도의 본(本)과 같은 약속된 형식의 연무가 전통적으로 내려져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가라데와 유도 모두 일본에서는 '카타'かた; 形라고 표현한다.)

 

그 이름은 바로, '와이크루'(Wai-Kru; พิธีไหว้ครู)다.

 

위 영상은 태국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쭐랄롱껀 대학교(Chulalongkorn University; จุฬาลงกรณ์มหาวิทยาลัย)의 교수이자, 태국 전통 무에타이 계승자 중 한 명인 암낫 사이찰라드(Amnart Saichalad) 교수의 와이크루 시범 모습이다.

 

영상 속 장소는 태국 방콕에서 차로 2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과거 아유타야 왕국(Ayuttaya; อาณาจักรอยุธยา)의 수도이자, 태국의 역사 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한 아유타야 지역에 위치한 나이 카놈 톰의 집(Nai Khanom Tom's House)이다.

 

나이 카놈 톰은 태국 역사와 무에타이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존경받는 타이민족의 영웅 중 한 명으로 손 꼽히는 인물이다. 현재는 일종의 무에타이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나이 카놈 톰의 기념 사당 앞에서 진행한 전통 무에타이 계승자의 와이크루 의식 시범이다. (영상 속의 암낫 사이찰라드 교수 이외에도 많은 전통 무에타이 계승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각 지역별, 계파별로 전통 와이크루 의식의 모습과 구성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상 속 의식의 연무 동작들을 살펴보면 활을 쏘는 모습과 검을 휘두르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우리 태권도의 품새와 일본 가라데의 카타가 그러하듯이 과거 선조들의 실전 경험과 기술의 유래를 잊지 않기 위하여 의식 연무 동작 속에 이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에타이를 직접 수련했거나, K-1과 같은 입식격투기 이벤트를 통해서 무에타이를 접한 팬들에게 위 동영상 속의 와이크루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무에타이의 와이크루는 아래 영상과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영상 속의 와이크루가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 암낫 교수의 시범을 보고 이 영상을 확인했다면, 현대 스포츠 무에타이의 와이크루는 동작과 진행 시간이 많이 간략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연히 따지자면, 무에타이(MuayThai)에서의 와이크루는 두 번째 영상의 것이 맞다. 첫 번째 영상에서의 와이크루는 무에보란(MuayBoran)의 와이크루라고 볼 수 있다. 무에타이의 옛 형태를 무에보란이라고 한다. 이 무에보란에는 맨손 격투술인 '람무아이'(Ram Muay)와 무기술인 '크라비 크라봉'(Krabi Krabong)이 포함된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현대 스포츠 무에타이는 맨손 격투술 람무아이를 뿌리로 한다.

 

사실 필자는 이번 3월 태국 취재를 다녀오기 전까지, 와이크루는 오로지 맨손 격투술인 람무아이에만 해당하는 일종의 경기 전 몸풀기(Warming-Up)의 개념으로만 생각했었다. 실제로 국내외 많은 무에타이 관련 자료에서도 와이크루는 시합에 출전한 낙무아이(무에타이 선수)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면서 준비운동의 목적으로 행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설명 또한 틀린 설명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무에타이가 전쟁 무술의 프래임에서 벗어나 근대화 시기에 본격적으로 스포츠화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와이크루는 도대체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선조들의 기술과 승리의 영광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 기록을 연무 동작으로 녹여낸 무에타이만의 '품새' 또는 '카타'라고 볼 수 있다.

 

와이크루 의식부터 무에타이 경기 종료까지 계속해서 연주되는 '사라마'(Sarama; สะระหม่า) 연주는 본디 태국 왕실의 궁중음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궁중음악이 어째서 무에타이 경기와 와이크루 의식의 음악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유추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무에타이 경기는 왕실에서도 자주 개최되었다는 태국 현지자료와 더불어 란나 왕국(Lanna; อาณาจักรล้านนา)에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다양한 무기술을 왕실에서도 행했으며, 그 흔적은 현재 치앙마이 지역에서 전통 명상법으로 남아있다는 정보를 통시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료와 현지 흔적들을 종합해볼 때, 과거 와이크루는 전근대부터 태국의 왕실에서 행해진 별도의 무예 연무시범을 뿌리로 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때문에 전쟁 승리의 영광을 기념하는 다양한 동작들을 어전에서 시연했고, 맨손 격투와 무기술의 경계가 없는 전통 와이크루의 모습을 첫 번째 영상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위 내용들은 필자가 태국 현지의 학술자료들을 바탕으로 유추한 내용들 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어전에서 시연하던 무에보란도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는 스타디움의 스포츠 무에타이로 변하였고, 와이크루 또한 그 목적과 형태가 변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변화를 아쉽게만 바라볼 것은 아니다.

스승과 낙무아이가 경기 전 기도를 올리는 모습

 

낙무아이가 착용한 몽콘을 링사이드에 걸어두는 모습

 

 

위에 두 장의 사진과 영상에서 나타나는 의식은 과거 와이크루에서는 없었던 동작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링(Ring)이 있었기에 새롭게 생겨난 몽콘(Mongkol) 의식이다.

 

몽콘은 낙무아이가 머리에 착용하는 일종의 신성한 부적으로 과거에는 전쟁에 출전하는 병사들의 무운을 기원하기 위해서 고을의 승려나 어머니, 부인들이 만들어 전달했던 것에서 유래된다.

 

이런 신성한 부적을 현대에 이르러서는 각자의 링 코너에 걸어놓음으로써 경기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스승과 가족, 그리고 신에 대한 최대의 예우를 다했음을 의미한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태국 무에타이는 전통과 역사에서 전승되는 참된 가치를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지켜나가고 있다.

 

현대 무에타이는 현대 무에타이대로의 방식을, 전통 무에보란은 전통 무에보란대로의 방식을 양자 모두 최선을 다해서 지켜나가는 모습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무카스미디어 = 권석무 기자 ㅣ sukmo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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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무 기자
무카스미디어 MMA, 주짓수, 무예 분야 전문기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MMA, 극진공수도, 킥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무예 수련.
사람 몸을 공부하기 위해 물리치료학을 전공. 
무예 고문헌 수집 및 번역 복간본 작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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