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비자 발급이 쉬운일이라고? 천만의 말씀!


  

박호진 변호사의 미국 진출 바로알기 3 - 비자 거절로 위기에 빠진 태권도 사범

2019년 기해년을 맞아 <무카스>는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올바른 무술문화 조성을 위해 당당한 모습을 지키기 위해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각계 각 분야 전문가와 무술인들의 전문 칼럼을 비롯한 소소한 경험담도 더 다양하게 공유하고자 합니다.
국내 태권도 전공생과 지도자들이 큰 관심을 갖는 미국 태권도 진출에 도움을 주고자 미국 내에서 여러 태권도 사범들의 취업비자와 영주권 업무를 담당해온 박호진 변호사를 통해 현실감 있는 ‘미국 태권도 사범 바로알기’를 연재 합니다. 미국 내에 다양한 사례의 태권도 사범의 정착기와 실패담 그리고 미국 진출에 반드시 알아야할 이슈를 앞으로 매주 목요일 소개 합니다. [편집자 주]

 

박호진 변호사

벌써, 세 번째 연재 시간 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문의를 주시는 내용으로 연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오늘도 역시 미국 비자의 관한 내용입니다. 영주권은 고사하고 '비자' 발급도 쉽지 않은게 요즘 미국 입니다. 따라서 이번 시간에는 미국 비자 발급에 주의점을 소개합니다. [필자 주]

 

다급하게 보이는 이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급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즉시 확인해 보니, 위기에 처한 태권도 사범이었다. 바로 답장을 쓰고 전화통화를 통해 상담을 했다.

 

필자의 고객은 아니었다. 단순히 몇 개월 전에 여러 차례 상담만 해줬던 태권도 사범이었다.

 

시애틀에서 거주하고 있는 C 사범은 미국 내에서 P-1 선수 비자 신분으로 바꾼 경우였다. 필자는 C 사범에게 “한국에 가게 되면 주한미국대사관에서 P-1 비자 스탬프를 받아야 하는데, 비자 인터뷰를 통과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미국으로 다시 들어오기 어렵다”고 조언을 해준 적이 있었다.

 

몇 달 만에 소식을 듣게 된 C 사범의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C 사범은 필자로부터 상담을 받은 후 급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출국했다. 어머니께서 급하게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데 가족 중에 어머니의 병간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머니의 수술은 잘 되었고 경과도 좋았다.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자 C 사범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한미국대사관에 P-1 비자신청을 했다.

 

처음 미국에서 P-1 비자 신청을 했을 때 의뢰를 했던 L.A.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변호사는 서울에서 비자 신청하는 것을 도와주는 대가로 800달러를 요구했다.

 

C사범은 필자에게 다시 연락해볼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필자는 서울에서 비자 받기가 어렵다는 조언을 해주었던 터라서 연락을 하기가 꺼려졌다고 했다.

 

L.A. 변호사가 애초 P-1 비자 청원 케이스를 담당했었고, 서울에서 비자 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자신 있어 했기 때문에 잘 도와주리라 생각했다. 그 변호사에게 800달러를 송금하고 비자 신청을 준비했다.

 

그런데 비자 인터뷰 결과는 ‘거절’이었다. C 사범은 눈앞이 캄캄했다. 시애틀 도장을 오래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라 더욱 조바심이 났다. L.A. 변호사에게 이메일로 비자 거절 소식을 전하고 전화통화를 요청했다. 3일 후, L.A. 변호사와 연락이 닿았다. 

 

L.A. 변호사는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요즘 서울에 있는 영사들이 특히 태권도 사범들에게 비자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캐나다는 다를 것이다. 밴쿠버에 있는 미국영사관에 P-1 비자 신청을 다시 한번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인터뷰에서 직접변호를 해주면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을 따르자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밴쿠버로 가는 경비는 물론이고, L.A. 변호사에게 추가 변호사비 1,000달러와 그 변호사가 밴쿠버에서 머무는 경비까지 모두 C 사범이 부담해야 했다. 또한, 항공편과 숙박 등 모든 것은 그 변호사가 지정하는 대로 해주었어야 했다. 

 

총 4백만 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했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었던 C 사범은 서둘러 비용을 마련했다. 그리고 L.A.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그 변호사 사무실로부터“2주 후에 비자 인터뷰가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의 간호는 친척에게 맡기고 C 사범은 벤쿠버로 향했다. 비자 인터뷰 날 L.A. 변호사와 함께 미국영사관으로 갔다. 

 

영사관 입구에서 변호사가 영사관 직원과 한참 동안 무슨 대화를 나누더니 C 사범에게 말했다. “이곳 영사관 규정이 최근에 변경돼서 변호사가 직접 인터뷰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네요. 저는 호텔에서 기다릴테니 인터뷰하면서 문제 생기면 전화주세요.”

 

L.A. 변호사는 그렇게 떠나고, C 사범은 한 시간 남짓 기다린 후 영사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20분 정도 진행됐다. 질문은 대부분 ‘왜 서울이 아니라 밴쿠버에 와서 비자신청을 했는지’에 대한 부분으로 집중됐다. 밴쿠버까지 함께 온 변호사는 영사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귀띔을 해준 적도 없었기 때문에 C 사범은 엉겁결에 ‘밴쿠버로 여행을 왔다가 시애틀로 돌아가는 길이라서 여기서 비자신청을 하게 됐다”고 둘러댔다.

 

인터뷰 내내 영사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급기야 비자신청은 거절됐다. 서울에서 다시 신청하라고도 했다.

 

허겁지겁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L.A. 변호사가 묵고 있는 방으로 인터폰을 넣었다.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데 그의 호텔 방은 비어있었다. 

 

그 변호사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고,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변호사의 주변이 상당히 소란스러워서 말소리를 정확히 알아듣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거절이라... 그럴 리가 없는데… 사범님, 사실 내가 지금 좀 바쁜데 조금 있다가 다시 통화합시다’

 

L.A. 변호사는 3시간 정도 지난 후 호텔에 나타났다.

 

그의 전화를 받고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그 변호사는 짐 가방을 모두 챙겨 나와 있었다.

 

 “내가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영사관의 정책이 바뀌어서 내가 도와줄 수 없게 됐습니다”

 

황당한 마음에 C사범은 따져 물었고, 결국 둘 사이에 언쟁과 고성이 오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변호사는 되레 화를 내면서 총총히 호텔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C 사범은 나에게 약 1시간 동안 그 얘기 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L.A. 변호사의 잘못된 조언 때문에 캐나다까지 갔다 오느라 큰 비용과 시간을 낭비해야 했고 더 깊은 상심에 빠졌다.

 

문제는 ‘C 사범이 어떻게 다시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해볼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자칫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염려도 있었다. 필자와 긴 의논 끝에, C 사범은 시애틀 도장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C 사범은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기를 원했다. 자신이 미국에서 도장사업으로 성공할 계획과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약 6개월 정도가 지난 후 메릴랜드주에 있는 C 사범의 옛 동료가 운영하는 도장으로부터 스폰서를 받아 O-1 특기자 비자를 신청했다. C 사범은 시범단 경력이 좋아서 O-1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독자들께서 주의할 점은, C 사범이 O-1 비자를 신청했을 당시와 달리 요즘은 O-1 비자 받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한번 비자가 거절되면, 그다음 비자를 신청할 때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C 사범 경우처럼 이민국에서 비자 청원이 거절된 것이 아니라 영사관에서 비자가 거절된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L.A. 변호사에게 예전에 진행했던 P-1 비자서류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피하기를 거듭했다. C 사범은 자신의 클라이언트가 아니니 서류를 줄 수 없다고도 했다. 

 

딴은 맞는 얘기였다. P-1 비자 청원을 준비할 때에는 변호사는 C 사범이 아니라 스폰서 도장을 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C 사범의 P-1 비자를 스폰서 했던 도장의 관장님에게 변호사로부터 서류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약 한 달 동안 그 관장님으로부터 L.A. 변호사와 전화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두 달 만에 P-1 서류의 사본, 그것도 일부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민국에 다시 O-1 비자 청원을 신청했다. P-1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됐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서 서류를 준비했다.

 

다행히도 O-1 비자 청원은 제출한 지 10일 만에 승인이 났고, 곧바로 서울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에 O-1 비자 신청을 했다. O 비자든, P 비자든, H 비자든 먼저 미국 이민국에서 비자 청원이 승인이 난 후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비자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필자의 예상대로 O-1 비자 담당 영사의 질문은 약 10개월 전에 서울과 밴쿠버에서 P-1 비자를 신청했던 일에 질문이 집중됐다. C 사범은 이미 필자와 그런 질문에 대해 충분히 준비했고, 비자 인터뷰를 기다리는 열흘 동안 예상 답변을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자 인터뷰 후에 바로 승인은 나지 않았다. 영사는 "우리가 더 살펴볼 부분이 있으니,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연락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인터뷰가 끝나고 2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이 C 사범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O-1 비자 스폰서 도장의 자료들과 고용계약서 사본, 그리고 C 사범이 한국에 있을 때 시범단으로 활동했던 자료들을 더 보강해서 내라고 요구해 왔다.

 

서둘러 준비를 해서 이틀 만에 요구받은 자료들을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이틀이 지난날 드디어 C 사범은 대사관 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O-1 비자가 발급되었으니 일주일 내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 집단 중 유독 변호사가 욕을 많이 듣는다. 사실 필자도 변호사지만 주변에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되는 상황을 수차례 겪었다. 안타깝지만 그런 험담에 대해 항변할 생각은 없다.

 

어느 분야에서나 양심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변호사 업계도 마찬가지다. 

 

그저 법률 서비스 소비자인 일반인들이 더 부지런해지고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는 없다. 온라인을 통하거나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최대한 많이 알아보고 여러 변호사와 충분히 대화를 나눠보면서 어느 변호사가 자신의 중요한 일에 적임자인지를 본인 각자가 현명하게 판단할 일이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호진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과대학과 비즐리 로스쿨 출신의 뉴욕주 변호사로 현재 뉴저지 포트리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뉴저지로 옮기기 전에는 맨하탄 소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로펌에서 이민법 변호사로 활동했다. 미주 최대 웹커뮤니티 헤이코리안 닷컴을 통해 10년 가까이 무료 법률상담을 제공해 오고 있다. 현재는 태권도 사범의 미국 진출을 위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콘 컨설팅의 고문변호사로도 활동 중이다.

 

[글 = 박호진 변호사ㅣ lawyer@beaconi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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