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태권도 개척자' 박선재 회장 별세… 향년 78세

  


故 박선재 회장(이탈리아태권도협회)


백인 중심의 유럽, 그 중에서도 텃세가 심한 이탈리아에서 유럽 전반에 걸쳐 반세기 동안 태권도를 개척한 박선재 이탈리아태권도협회장 겸 세계태권도연맹 부총재가 별세했다. 향년 78세. 장례미사는 로마에서 현지시각으로 3월 1일 또는 2일 진행될 예정이다.

박선재 회장은 이태리와 유럽 태권도를 기반으로 1989년 세계태권도연맹(WTF) 집행위원 선출에 이어 현재 선출직 부총재 맡고 있다. 2004년 2월 김운용 전 총재의 궐위로 그 해 6월까지 총재 직무대행을 역임했다.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 총회에서 총재 선거에 출마했지만, 현 조정원 총재에게 패해 낙선했다. 또한 유럽태권도연맹(ETU)과 지중해연안태권도협회 창설을 주도해 명예회장을 맡으면서 유럽 내 정신적 지주로 통하고 있다.

태권도 정치, 행정 분야에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갖춘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연세대 정치외교과를 졸업한 고 박선재 회장은 1958년 유학을 목적으로 도이했다.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으나 체계적으로 수련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60년 대 초 로마에 방문한 최홍희 전 국제태권도연맹(ITF) 창설자를 만나 태권도 인연이 시작됐다.

최홍희 전 총재는 박선재 회장에게 로마에 태권도를 보급하면 매우 활성화 될 것이라고 제안을 했던 것. 이를 계기로 박선재 회장은 1966년 로마에 태권도장을 개관했다. 혼자서 운영을 할 수 없어 막내동생 故 박춘우와 둘째 동생인 박영길 사범을 불러 삼형제가 이탈리아 태권도 개척을 위해 힘을 쏟았다.

[인터뷰] 박선재 태권도 개척자(2010년 10월 무카스미디어 현지 인터뷰 내용)


고 박선재 회장이 2005년 WTF 총재선거에 출마해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전 세계 192개국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홀연 단신 맨주먹 하나로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태권도를 보급한 한인 사범들이 있어 가능했다. 한국인 중심으로 운영되던 조직은 시대가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현지인들로 바뀌었다. 이런 와중에 백인 중심의 유럽에서 유일하게 한인 태권도사범이 수장을 맡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이태리 박선재 회장이다.

박선재 회장은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 선출직 부총재를 맡고 있다. 또한 유럽태권도연맹(ETU)과 지중해연안태권도협회 창설을 주도해 명예회장을 맡으면서 유럽 내 정신적 지주로 통하고 있다. 2005년 WTF 총재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경험도 있다. 태권도 정치, 행정분야에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갖춘 인물이다.

정치력과 행정력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타국에서 수십 년간 수장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군림하려하지 않는 소통의 중요성과 한 발 앞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아직까지 건재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연세대 정치외교과를 졸업한 박선재 회장은 1958년 유학을 목적으로 도이했다. 한국에서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으나 체계적으로 수련한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태리에 태권도를 보급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박선재 회장은 60대 초반 로마에 방문한 고 최홍희 총재(국제태권도연맹, ITF)를 만나면서 지금의 태권도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최 총재는 로마에 태권도를 보급하면 매우 활성화 될 것이라며 박 회장에게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1966년 개인도장을 개관했다. 혼자 할 수가 없어 막내 동생 故 박춘우와 함께 도장을 운영했다. 이듬해에는 둘째 동생인 박영길 사범까지 불러 삼형제가 이탈리아 태권도 개척을 위해 힘을 합쳤다.

1968년 박선재 회장은 수도 로마, 둘째 박영길 사범은 남부 나폴리, 셋째 박춘우는 북부를 각각 맡아 이태리 전역에 태권도를 보급했다. 이와 함께 주변국에도 태권도를 보급했다. 당시 이태리에 보도된 기사를 본 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에서 박선재 회장에게 태권도를 보급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만 해도 국경을 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대사관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어렵게 국경을 넘어 3개월 단위로 태권도를 보급할 수 있었다. 이 때 가르친 중학생이던 제자가 현재 크로아티아 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탈리아에 태권도를 처음 보급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가라테와의 싸움이었다. 다른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가라테의 보급이 튼튼한 뿌리를 바탕으로 활성화 되어 있었다. 도장이 개관되자 가라테 지도자와 수련생이 도장을 방문해 방해했다. 세력에서 역부족이었지만, 기에는 눌리지 않고 맞서 싸웠다. 끈기 있게 버티면서 점진적으로 태권도의 영역을 확대했다.

“초기에는 가라테와 싸우느라 매우 힘들었다. 괜히 구경한답시고 방문해 시비도 걸기도 했다. 힘든 과정을 겪다보니 태권도란 존재가 부각됐다. 일부는 가라테 수련생이 태권도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장을 개관하면서 박선재 회장은 1966년 이탈리아태권도협회(FITA)를 결성했다. 44년의 역사를 가진 초창기 태권도 보급 국가다. 세계태권도연맹(WTF)에는 77년 가입했다. 생활 무술로서 보급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했으나, 이태리 내에서 태권도가 정부산하의 정식조직으로 인정받은 것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끝난 후였다.

이태리올림픽위원회에 정식 가맹단체로 이름을 올린 후에서야 정식으로 정부보조금을 받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협회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국가대표팀도 개인도장에서 수련하다 올림픽선수촌에 전용훈련장과 숙소 등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이태리 군인, 경찰할 것 없이 교황청 치안대 등에 기본 무술이 가라테에서 태권도로 모두 전환됐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이태리 정부로부터 ‘기사장’ 작위를 받았다.

박 회장은 이태리 협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잊지 못할 장면으로 ‘이탈리아태권도협회가 올림픽위원회(NOC)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은 것’이라고 꼽았다. “2000년 12월 협회 조직 34년 만에 NOC에 정회원으로 승인됐다.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고생했던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때부터 이태리태권도협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반면 ‘이태리에서 태권도 때문에 가장 기분이 나쁜 장면은 어떤게 있나’라는 질문에 곧바로 “단 한 번도 없었다”면서 “즐겁게 하지 않을 일이었다면, 시작도, 이 일을 계속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태리에서 태권도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늘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이태리 정부로부터 받은 작위를 소개하고 있


‘로마에 가면 로마에 법을 따르라’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누구나 다른 지역에 가면 그 지역에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로마는 1천5백여년 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할 정도로 최강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에 이방인이 태권도협회를 조직하고 그에 맞는 법을 만들고, 40년이 넘도록 수장을 맡고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운 일이다.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소통과 공유’다.

“내 생각과 행동이 절대적으로 맞다는 사고방식으로 군림했다면 난 이 자리에 있지 못했다. 리더라는 것은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다. 태권도협회의 경우 내가 더 많이 태권도를 좋아하고 해야 한다. 좋다는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런 신뢰가 쌓이면서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동반자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권력을 행사하면 대부가 될 수 없다”

태권도 임원들 중 박선재 회장은 매우 가정적인 인물로 꼽힌다. 행사가 있을 때면 가능한 부인 정희숙 여사와 동행한다. 공식행사 이외에는 부인과 늘 함께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임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전을 받거나 단독 행동을 가능한 자제하는 편이다.

“부인은 내게 매우 고마운 사람이다. 66년 첫 도장을 개관할 때 함께 공사를 했다. 이태리태권도협회가 발전하는데 절대적인 공을 세운 유공자이기도 하다.(웃음) 다른 사람은 열심히 하면 상을 주고 보상했지만, 아직까지 아내에게는 어떠한 상도 주지 못했다.”


고 박선재 회장이 안젤로 치토 사무총장과 정기총회에 참석한 모습


그는 이태리 태권도 발전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일에 대해 묻자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조직을 이끌 수 있겠는가”라며 “현재 사무총장(안제로 치토, ETU 집행위원 겸 기술위원장)이 15년째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태권도 관련 행사장에서 박선재 회장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이슈에 대한 형식적인 인터뷰만 했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이번 인터뷰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독선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가진 후에는 그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었다. 일에 있어 매우 분석적이며 철저하고,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대단했다. 무엇보다도 이웃집 평범한 아저씨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이 기사는 무카스미디어가 2010년 이탈리아태권도협회에 방문하여 고 박선재 회장과 직접 인터뷰를 나눈 기사 입니다. 고인의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를 다시 소개한 것이니 현 시기와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 주)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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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승복

    태권도를 위해 노력하시고 자신의 길을 흔들림없이 꿋꿋하게 나아간 의지의 인물이신 분이란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빕니다.

    2016-03-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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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박회장님은 연세대 정외과 56학번이시고 당시 고 이금홍 전 세계태권도연맹 총장님과 함께 초창기 태권도부 활동을 하셨습니다.

    2016-03-0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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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원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6-02-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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