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 사랑방] 성인들을 위한 호흡수련법

  

이정규 사범의 무예 사랑방


미국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수련을 하는 ‘패밀리 클래스’가 많이 활성화 되어있다. 그런 반면 한국의 도장에선 성인들이 사라지고 어린 아이들만 남는다고 울상인가 보다.

요즘은 다들 없는 시간도 쪼개어 레저, 스포츠 등 여가 활용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건만 왜 집 가까운 도장, 특히 자신의 자녀들이 다니는 도장에는 가입을 하려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현재 대다수의 무예 도장에서의 수련체계가 성인들에게 맞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태권도를 예를들어보자. 대부분의 도장에선 빠르게 이어 차고 뛰어 차는 발차기, 각을 잡아하는 품새 등 높은 순발력이나 지구력,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빠른 템포의 수련이 주를 이룬다.

사실 이런 수련은 성인들이 하기에 부적당하다.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는 굳은 몸도 문제겠지만, 도저히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호흡이 짧아지니 빠른 발차기 몇 번 따라해 보면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해 진다.

몇 시간씩 하이킹을 해도 잘 움직이던 팔다리가 이상하게 힘이 빠져 발차기 몇 번 차고 나면 주저앉고만 싶어진다. 그러니 제 풀에 꺾여 ‘골프나 쳐야지, 주책 맞게 내가 뭘......’하고 골프가방을 메고 레인지로 향하게 된다.

따라서 성인들을 위한 다양한 수련방식이 제기 되어야 하겠지만, 오늘은 자칫 잊고 지나치기 쉬운 호흡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호흡으로 기운 맑히기
현대 무예의 수련목적은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병약했던 신체를 단련시켜 치유하고 자신의 한계를 넓혀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닦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몸이야 수련을 통해 닦는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닦아간단 말인가?

‘명심(明心)은 명신(明身)이다.’라는 말이 있다. 마음을 닦으려면 몸을 먼저 닦아야 한다는 뜻이다. 몸은 물질이고 마음은 비물질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운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과 비물질의 중간상태인 무엇인가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인데 이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바로 호흡이다.

비유하자면 호흡은 물을 담은 컵과 같고 마음은 컵에 담긴 물과 같다. 컵을 흔들면 그 안에 담긴 물도 흔들려 요동치게 되고 컵이 고요해지면 그 안에 담긴 물도 따라서 정(靜)하게 된다. 즉, 호흡이 정(靜)하면 컵 안에 담긴 마음도 가라앉아 정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면 마음도 이에 따라 거칠게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흥분을 할 때처럼 마음이 산란해지면 제일 먼저 호흡이 흐트러진다. 이때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가 길게 내뿜으면 내쉬는 호흡과 함께 확 올라왔던 화기(火氣)가 빠져나가고 성질이 푹 가라앉고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한다. 만일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두 번, 세 번 마음이 진정 될 때까지 내쉬는 호흡에 집중을 해서 반복하면 된다.

호흡으로 본 건강상태
평소 호흡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스스로의 건강상태를 쉽게 체크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함께 대화를 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다 보면 호흡이 거칠어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려 대화하기가 불편한 사람이 있다. 호흡이 거칠다는 것은 호흡이 깊지 않고 기운이 탁해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말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나 비만인 경우 혹은 병약한 사람들이 주로 이런 얕고 거친 호흡을 가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호흡이 얕고 거친 사람과는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고 함께 큰일을 도모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호흡이 얕은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조그만 일에도 급격히 화를 내거나 조급히 행동하는 경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호흡이 깊은 사람은 대하는 이에게 편안한 기분을 주니 무슨 말을 해도 믿음직스럽고 서두르지 않으니 일에 실수가 적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가 있어진다.

이 밖에도 호흡은 수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호흡이 깊을수록 심장박동이 따라서 느려진다. 그래서 거북이나 고래 같이 호흡이 깊고 심장박동이 낮은 동물들은 수 백 년을 산다. 하지만 생쥐나 참새처럼 호흡이 얕고 심장박동이 빠른 동물은 행동이 조급하며 오래 살지도 한다. 그러니 오래 살고 싶다면 우리의 호흡 먼저 깊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단전호흡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것이 호흡이라 무병장수를 위해선 호흡 수련이 대단히 중요하다. 호흡 수련을 말할 때 우리가 흔히 아는 것이 단전호흡이다. 단전호흡은 수련 단체마다 각기 다른 방법들이 있으나 깊고 세밀하고 조용하게 쉬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알고 행하면 된다.

그런데 단전호흡을 할 때 맑은 기운을 들이마시는 흡기(吸氣)보다 탁한 기운을 내쉬는 토기(吐氣)에 더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토기호흡에 집중을 하면 숨을 토해 낼 때마다 몸에서 조금씩 조금씩 탁기가 빠져나가 탈기(脫氣)가 되고 몸이 가볍고 유연해진다. 탈기가 잘 안 되면 몸에 객기(客氣)가 끼어 기혈이 막히고 세포가 뭉쳐 만병의 근원이 되니 토기를 통해 탁한 기운을 뽑아내야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해져 무병장수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위에서 보면 무예수련이나 기공수련에 심취했던 이들 중에 잘못된 호흡 수련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주화입마의 폐해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억지로 단전에 기운을 모으려는 축기(縮氣)에 욕심을 내어 호흡을 비틀다 보니 정기(精氣)가 아닌 사기(邪氣)가 치고 들어와 생기는 현상들이다. 따라서 호흡은 절대 억지스러워도 안 되고 욕심을 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호흡의 자세
단전호흡은 서서하는 입식(立式), 앉아하는 좌식(坐式), 누워하는 와식(臥式) 등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정규 사범

좌식을 많이 한다. 팔은 다리위에 편안하게 내려놓고 몸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 후 눈은 코끝이 보일 듯 말듯 반쯤 내려 감고 눈으로는 코를 보고 코로는 마음을 본다. 일명 안관비(眼觀鼻) 비관심(鼻觀心)의 자세를 취한다.

눈을 완전히 감으면 잡념이 쉽게 떠올라 정신집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깊은 선정에 들면 눈을 완전히 감아도 된다. 그리고 몸에 힘이 들어가면 객기가 끼어 쉬 피곤해지니 어깨와 척추는 펴되 되도록 이완하고 의식은 단전에 두어 기운이 위로 뜨지 않게 한다.

이런 자세로 깊고 고요한 호흡으로 단전깊이 맑은 기운을 불어 넣고 머리와 신경이 고요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면 몸 안에 운기(運氣)가 잘 되어 피로가 쉽게 풀리고 몸 안에서 놀라운 치유의 능력도 깨어나 상했던 몸이 빠르게 치유되어 나간다.

호흡의 맛과 효능
그렇다면 스스로 호흡을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호흡의 맛을 보면 된다. 들이쉬는 호흡을 깊게 했다가 단전에서 살짝 내리누르면 수기(水氣)를 관장하는 신장(腎臟)에서 시원한 기운이 위로 올라와 혀뿌리를 적신다. 다시 내쉬는 호흡으로 몸 안에 쌓인 탁기를 토해내면 화기(火氣)를 담당하는 심장에서 따뜻한 기운이 단전으로 내려온다.

이렇게 몸안에서 기운의 순환이 이루어지면 머리는 시원해지고 가벼워지며 배와 손발은 따뜻해지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이루어지는데 이 때 입안에선 기분 좋은 단침이 촉촉하게 고이게 된다. 이것은 운기가 잘 되어 오장육부의 기운이 정화되고 있다는 뜻이고 반대로 단전호흡을 했는데도 입이 쓰다면 이것은 운기가 잘 안 된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실례(實例)로 갓난아이들을 보면 그 성장속도가 무섭다. 깊게 배로 숨을 쉬는 복식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년이 되면서 호흡을 의식적으로 끌지 들이지 않으면 깊이 딸려들지 않게 된다. 자연 혈액 속의 산소 공급량이 적어지고 호흡의 기운이 닿지 않는 몸 속 깊은 곳의 내장기관들이 서서히 망가져 가기 시작한다. 이로서 혈액순환 장애, 기운순환 장애등이 일어나 피부노화의 가속, 신체기능저하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호흡에 따른 운동과 노동의 차이
똑같은 수련도 호흡에 따라 힘들기만 한 노동이 될 때가 있고 기분 좋은 운동이 될 때도 있다. 깊은 호흡 속에서 몸 가는 데 마음 가고, 마음 가는 데 몸이 가도록 심신합일의 상태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여 가면 내쉬는 호흡을 따라 조금씩 탁기가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탁한 기운이 몸에서 빠져 나가고 나면 몸 안의 빈자리를 찾아 조금씩 맑은 기운이 차오르게 된다. 이렇게 깊고 고요한 호흡 속에 이루어지는 정갈한 동작들은 오래해도 피곤치 않고 도리어 기운이 차며 할수록 힘이 나고 즐겁다. 마음도 정갈해 지니 몸동작 하나하나에 정신이 집중되어 간다. 이렇게 되면 비로소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넓혀 갈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중국에 가면 노인들이 주로 한다는 태극권 수련이나 기공수련 등이 이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동작을 하던 무리하게 기술에 욕심을 내지 말고 호흡을 흩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손과 발을 국수 가락 뽑듯 차분하게 쭉쭉 늘여가며 동작을 뽑아내면 깊은 호흡을 통한 기운의 순환이 일어나 마침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심신합일의 경지에 들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격하고 빠른 수련으로 호흡이 가빠 흐트러지고 마음으로 몸을 이끌지 못하면 어떤 동작도 그저 힘든 노동이 되고 만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몸에는 힘이 들고 정신은 혼미해져 쉽게 지치게 되니 에너지를 소모하기만 할 뿐 재충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할수록 피곤하고 골병만 들게 된다. 태권도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의 직업선수들이 강도 높은 훈련 속에서 겪는 만성피로와 부상의 원인 역시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숨을 헐떡이며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노동은 몸의 기운을 쇠하게만 하니 이로서는 심신을 건강하게 하지 못하고 정신을 집중 할 수가 없어 무예의 진수를 터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낮은 단계의 기술운용에서도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호흡이 흐트러진 상태에선 위력적인 타격이나 찰나의 순간에 움직여야하는 반격의 타이밍도 놓치기 십상이다.

새로운 수련개발의 방향
이처럼 호흡은 비단 무예수련을 위해서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심신을 안정시켜 상한 육신을 치유해 내고 마음을 맑히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매우 쓸모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호흡이 짧아지고 불규칙해지는 성인들에게는 무병장수에 도움이 되는 더 없이 긴요한 수련이다. 호흡이 가라앉으면 요동치던 마음이 안정되고 산란했던 생각이 진정되니 몸의 기운도 원활히 소통되어 맑은 기운을 길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천천히 물 흐르듯 흘러가는 동작들을 춤사위처럼, 실타래를 뽑아내는 누에처럼 무예수련의 동작들을 통해 뽑아낼 수 있다면 어떤 무예수련이든 바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긴요한 수련으로 재정립 되어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굳이 먼 산을 찾아 떠날 필요도 없고 비싼 장비도 필요 없이 그저 집 가까운 도장을 찾아 적은 노력만으로 상했던 심신을 치유해 내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무예지도자들 먼저 호흡으로서 심신을 맑혀가며 손끝, 발끝으로 기운을 뻗어내는 수련동작들을 개발해 감으로서 스스로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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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호흡 #이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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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사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5-09-0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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