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재의 살며 생각하며] 태권도 띠로 보는 리더십

  


태권도 검은띠를 매는 것은 매우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의 수련을 해야 합니다.

매주 두세 번 정도의 수련을 했을 때 걸리는 그 기간은 약 36개월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소 차이는 있지만 흰 띠부터 9개 정도의 다른 색깔의 띠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검은 띠를 맬 자격이 됩니다.

인내의 모든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승단심사에 통과되면 그 결과에 따라 검은 띠를 수여 받는 영광스러운 승단 의식을 합니다. 이때 모든 수련생이 사범님을 중심으로 도열하게 됩니다.

나이와 성별이 아닌 태권도 수련 정도가 높은 자가 앞자리에 서게 됩니다. 허리에 검은 띠를 동여 매주는 의식을 합니다. 검은 띠를 받게 쉬는 순간입니다.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의식은 몇 가지 시사해 주는 바가 있습니다.

우선 검은 띠를 위해서는 지금껏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있던 헌 띠를 벗어야 합니다. 그동안 뽐내던 자랑스러운 띠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검은 띠를 맬 수 있습니다. 지금껏 손에 익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띠를 벗어 내려놓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단계에 이르기 위한 선행 조건입니다.

1960대에는 매번 급이 올라갈 때마다 흰 띠 바탕 위에 다른 색깔의 천을 덮어씌웠습니다. 그래서 벨트가 헐게 되면 그 안의 모든 색깔이 조금씩 드러나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과는 달리 물품이 풍부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진 일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 거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태권도 검은 띠를 받기 위해 9개의 헌 띠를 벗어 놓는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내려놓는 것이며 생각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깊고 넓은 내면의 수련을 위해서는 제한적인 자신의 생각과 그동안의 틀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그만 손안에 세계를 남기고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는 그런 면에서 검은 띠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도전정신으로 세상을 살다 갔습니다. 그 길을 위해 기존의 틀을 무수히 깨뜨렸습니다. 그것은 창조적 파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라는 조그마한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익숙한 생각들을 내려놓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에게 태권도 명예단증이라도 수여하고 싶습니다.

태권도 띠는 수련 정도를 나타내 주는 상징입니다. 이 상징을 허리에 맵니다. 수준을 나타내는 띠를 왜 머리나 가슴에 매지 않고 허리에 매느냐고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허리는 인체에서 가장 힘의 토크가 큰 부분입니다. 그래서 강한 힘은 허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허리에서 유발된 힘은 사지 즉 주먹과 발차기를 통해 발산됩니다. 허리에 띠를 매면 강하게 힘을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 허리띠를 졸라맵니다.

이와 달리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힘을 절제하기 위함입니다. 절제됨이 없는 힘은 위험합니다. 결국 힘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 싸웠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부하들에게 말의 아킬레스를 자르도록 했습니다. 말의 힘은 아킬레스에 나옵니다. 다윗은 말을 타고 힘을 썼지만, 말의 힘의 원천을 잘라내 스스로 욕망을 누르고 자신이 가진 힘을 믿기보다는 신의 은혜를 입기 원했습니다. 이처럼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힘의 원천인 허리를 묶어 자신을 절제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띠를 허리에 맬 때 두 번 휘돌린 다음 단전 위에 단정하게 엮어 맵니다. 한번 허리에 둘러매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이 아니고 두 번 휘감아 매는 것은 나름의 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띠를 허리에 두 번 돌려 묶는 것은 균형 잡힌 사고력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와 판단력은 그 결정에 크게 작용을 합니다.

태권도 겨루기에서도 그렇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렇습니다. 균형감각을 잃은 결정은 문제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허리에 두 번 띠를 매는 철학적 의미는 결정을 내리기 전 최소한 두 번 이상을 생각하고 내리라는 것인데 결국 깊은 사고를 하라는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쳐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면 후한무치한 자가 될 것입니다. 물론 시합에 나가도 분명 패할 것입니다.

자주 우리 마음은 익숙한 곳과 제한적 생각의 테두리 안에 머물기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옮기고 생각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연습을 통해 좋아집니다.

마치 처음 태권도에 입문하면 띠를 매고 푸는 것이 서툴고 자세와 모든 동작이 어눌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연습을 통해 차츰 좋아집니다. 인생이 긴 여정인 것처럼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도 자꾸 옮겨야 합니다. 익숙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생명력이 쇠약해집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감정에서 올라온 첫 번째 생각을 뒤로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고 이에 합당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숨 쉬는 절대자의 숨소리를 듣고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도 그렇습니다. 대자연은 살아서 숨을 쉽니다. 마음을 옮기고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그 숨소리가 들립니다. 맞닿은 일 앞에 올라온 첫 번째 생각이 아닌 두 번째 생각이나 느낌을 붙잡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서 숨 쉬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첫걸음은 바로 크고 작은 일들 앞에 속으로 올라오는 첫 번째 생각이나 느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띠를 허리에 두 번 감아 매는 것입니다. 태권도 벨트의식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이는 마치 불빛이 찬란한 대도시를 벗어나 어두운 들판으로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밤하늘에 달린 아름다운 별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별들은 창조주가 주신 바로 그것입니다.

태권도 수련을 하다가 종종 띠가 흘러내립니다. 이때는 곧바로 뒤로 돌아서 한쪽 무릎을 꿇고 띠를 바로 매야 합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태권도 도장 규칙입니다. 뒤로 돌아서는 것은 스승에 대한 공경심의 발로이고 한쪽 무릎을 꿇고 띠를 바로 잡는 것은 자신의 느슨함과 흐트러짐에 대해 반성해 보는 것입니다. 띠를 바르게 매고 태권도 수련에 임하는 것은 늘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감정 주도적 언어를 피하고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는 태권도 띠를 돌려 매며 리더 됨의 의미와 조건을 생각해 봅니다.(끝)

박천재 교수 약력


- 한국체육대학 졸업 (’82)
- 대한체육회장 비서실 (’86)
- University of Maryland 박사 (’95)
- 세계태권도대회 금메달 (’82)
- 국기원 태권도 8단 승단(‘04)
- 조지메이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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