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조선인 권법가, YMCA권법부 윤병인 선생 일대기

  

허인욱의 무인이야기 - YMCA권법부 창설자 윤병인 1편


윤병인 선생에 대한 정보는 중앙기독교청년회 권법부 출신의 박철희 선생의 증언과 박철희․홍정표 선생의 제자로 지금 미국에서 ‘자연류’라는 명칭으로 무예를 지도하고 있는 김병수 선생의 노력 덕분에 알려진 정보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윤병인 선생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자연류 홈페이지를 참조(http://www.kimsookarate.com/)하길 바란다. [필자 주]

젊은시절 윤병인 사범

조선인 권법가 윤병인


1939년경 일본 도쿄 니혼대(日本大) 교정에서 한 조선인 유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부탁 했다. ‘당신도 조선인이고 나도 조선인이니 가라테 부원들이 자신을 때리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부탁한 인물은 원래 니혼대학 가라테부에 가입해 가라테를 배웠는데, 하루는 여자 친구와 놀다가 수련을 빼먹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인 수련생들에게 맞고 도장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억울하다고 생각한 그는 대학의 한쪽 정원에서 나무를 때리며 꾸준히 수련하는 조선인 학생을 기억해 냈다. 큰 나무를 때리며 수련을 했는데 나무가 바닥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의 공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부탁을 받은 조선인 학생은 여자 친구 때문에 수련을 빼 먹은 학생을 괴롭히려는 일본인 가라테부 학생들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기로 했다. 그는 한국인 수련생을 괴롭히려는 가라테부원들에게 권법을 사용해 능숙한 솜씨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며 제압을 했다.

패배를 인정한 가라테부 학생들은 이 사실을 자신들의 스승인 도야마 간켄(遠山寬賢, 1888~1966)에게 말했다. 도야마 간켄은 슈도깐(修道館) 카라테의 개조로 불리는 인물로 이토스 야스쯔네의 제자였다. 제자들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은 도야만 간켄은 가라테부 학생들에게 그 권법가를 찾아 데려오라고 했다.

학생들은 그 권법가를 찾아 도야마 간켄에게 데리고 갔다. 그 권법가는 해방 후에 서울 YMCA에 무예를 수련하는 관을 창설한 윤병인(尹炳仁, 1920~1983)이었다. 도야마 간켄은 제자들의 무례에 대해 용서를 빌고, 윤병인의 무예 기법들에 대해 질문을 했다. 윤병인은 그가 수련한 기법들을 도야마 간켄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기술을 본 도야마 간켄은 그와 무예 교류를 희망하였다.

어린 시절의 무예 수련


윤병인은 1920년 5월 18일 만주 봉천(지금의 중국 요녕성 심양) 무순(撫順)에서 사설 양조장을 운영하는 윤명근(尹明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태어난 날에 대해서는 1920년 5월 18일이라고 알려졌다.(칠원 윤씨 족보에 의하면, 1920년 4월 1일이다).

윤병인의 할아버지인 윤영현은 조선 말기에 경남 통영과 거제도에서 지방 수령을 지냈는데, 1909년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자 윤영현은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이주했다. 윤영현은 윤명근․윤종근․윤보근 세 아들을 두었다. 윤영현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장남인 윤명근이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살림이 윤택해졌다. 윤명근은 윤병두․윤병인․윤병권 세 아들을 두었다.

윤병인은 신경(新京 : 지금의 중국 장춘)소학교와 연변중학교에 다녔다.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윤병인은 몽골계 선생으로부터 권법(拳法)을 배워 중학교에서도 지속했다. 윤병인이 무예를 배우던 시절인 1930년대 조선인은 무예를 배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아서 몽골계 선생의 집 마당을 매일 쓸어주는 등 정성을 보였고 교습비도 다른 사람보다 2배 이상을 내야만 했다.

사촌 동생인 윤병부의 증언에 따르면, 윤병인은 매우 총명하고 진솔하며 침착하고 다른 사람을 잘 도왔으며, 전형적인 무인으로, 매우 강했다. 싸워야 할 때가 있으면 상대를 심하게 다치게까지 않으면서, 상대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했다.

하지만, 윤병인의 무예 계보는 명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몽골계 선생의 이름도 전해지지 않았다. 당시 윤병인이 배운 기법들은 기본 수련법으로 두 사람이 맞부딪치며 수련하는 ‘칠보대타’와 토조산․단권(單拳)․장권(長拳)․팔기권(八騎拳)․태조권․태극권 등의 형이었다.

장권이나 태조권 또는 태극권 등이 지금 중국에 전해지는 무예와 흡사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명칭상 유사한 것일 뿐 기법은 별개의 것들이다. 이 형들은 대개 두 사람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진행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윤병인이 배운 형들 중 팔기권은 팔극권(八極拳)에서 수련되는 형 중 대팔극과 같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팔극권 계열이 아닌가도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당시 장춘에는 이서문(李書文)의 제자 곽전각(霍殿閣)이 만주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傅儀]에게 팔극권을 지도하는 등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팔극권을 배웠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장춘팔극권’에서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금강팔식’이나 ‘팔극소가’ 등은 존재하지 않고 있어 팔극권 계열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한 면도 있다. 팔기권 외에 나머지 형들은 팔극권과 별 관련이 없는 기법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팔극권 계열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아마도 만주 지역의 다양한 무예들을 배웠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팔기권의 존재는 몽골계 선생이 팔기군의 무술교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팔기가 청나라의 팔기군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윤병인이 습득한 무예가 2인 대련형이 중심이 되었다는 특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수련이 아닌 2인이 부딪치며 수련하는 형태가 중심이라는 점은 군대 내에서 병사들의 신체능력을 기르려는 방편으로 수련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윤병인은 비교적 평온한 유년시절을 보내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 오른손 손가락을 다쳐 손가락 일부를 잃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혹자는 만주에서 마적 떼와 맞서다가 칼에 손가락 일부를 잃었다고도 한다.

전 세계태권도연맹 김운용 총재는 “경동중 체조 교사로 부임한 윤병인 선생님이 만주에서 칼을 막다가 손가락을 다쳤다며 늘 하얀 실장갑을 끼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책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와 달리, 어느 겨울날 동네에서 피워놓은 석탄불을 뛰어넘다가 넘어지면서 오른팔을 짚는 바람에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고, 당시 그 지역에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치료할 수가 없어 손가락의 절반을 잃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 후유증은 윤병인에게 큰마음의 상처로 남았었는지, 후일 잘려나간 손가락을 보이지 않기 위해 대중 앞이나 무술을 지도할 때 항상 하얀 장갑을 끼었다. 현재도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 하얀 장갑을 끼고 무예를 가르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글. 허인욱 전문위원 / heoinuk@yahoo.co.kr]

* 허인욱의 무인이야기는 격주 월요일에 연재 됩니다. 필자 사정으로 하루 늦어진 점 양해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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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m P. Soo

    나의 선생님, 사범님, 선배님 되시는 분들은 많습니다. 특히 권법 공수도 태권도 분야에서는 이남석 관장님을 배제 할수는 멊읍니다. 김수

    2011-05-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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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형

    쥬신은 조선(朝鮮)의 한글 이름이야 ! 왜 그래 ! 대한민국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

    2011-04-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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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라질

    대쥬신족이 한민족? 이 사람아 쥬신족은 중국놈이라고 밝혀지지 않았나? 리플도 동북공정이야.

    2011-04-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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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인

    오래간만에 보는 대쥬신족 한민족(韓民族) 무인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재미 있습니다.

    2011-04-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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