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명 칼럼] 품새에서 기합은 왜 필요한 것일까?

  


기합은 특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정신과 힘의 집중. 우리말로는 ‘얼차려’라는 뜻이다. 기합술은 무예에서, 힘과 정신을 온몸에 모아 소리를 지르면서 보통 이상의 힘을 내는 술법을 뜻하고 있다. (우리말 사전,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2008)

우리가 입을 통해 내는 ‘소리’는 쓰는 방법에 따라 아주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몸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정신과 기를 모아 한 순간에 내지르는 ‘기합’이란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동원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기합(氣合)이라는 낱말은 기운을 의미하는 ‘氣’자와, 한군데로 모이게 하다는 ‘合’자로 이뤄졌다. 그 뜻은 자신의 기운, 즉 능력을 한 곳으로 집중한다는 의미다. 기합은 “발성(소리)을 통해 호흡을 조절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흐트러진 얼(기)을 바로 잡아 주는 일련의 행동”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박철희(1958)는 기합에 대해 말하기를, “기합은 큰소리(大聲)와 혼동하기 쉬운데, 무도에서 말하는 기합이란 ‘충만한 정신력’을 말한다. 따라서 기합이란 고의로 기합을 만들거나 단지 소리만을 내는 것이 아니고 기력이 충만하여 자연히 성대를 통하여 발해지는 것이니 초심자가 이 기합을 체득하기는 어려우므로, 처음에는 크고 강하게 내는 연습부터 해야 된다”(『파사권법』, 1958: 38).

초심자에게 기합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처음 기합을 넣을 때는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이 없고 여리다. 사범이 큰 소리로 기합을 넣으라고 하지만, 부끄러워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기합을 넣는 요령을 모르기 때문에 소리자체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수련의 도가 심화되고 기합 넣는 것이 숙달되면 초심자일 때의 성격과는 다른 담대한 성격으로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그 같은 경험을 통해 기합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기합을 통해 내뿜는 에너지의 위력은 매우 강하다. 자신의 힘을 더해주는 기합의 효과는 태권도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마음과 힘을 닦아서 단련을 할 때에 기합의 사용은 물론이고, 학습단원에서의 경우에 반드시 기합을 넣어야할 때가 있다. 맞춰 겨루기나 품새 수련 시 그것이다.

맞춰겨루기 시 넣은 상방간의 기합이란 묻고 답하는 형식을 따른다. 공격자가 방어자에게 “방어할 태세가 되었는가” 라는 물음의 형식에 방어자는 “만반의 준비가 완료되었다”라는 답신의 형식을 좇는 것이다. 물론 공방자 상호간 동작 시 정신을 모아 동작에 기운을 실어 행하는 것이다.

특히 품새에서의 기합은 의미가 사뭇 다르다. 품새에 따라 기합의 수가 같지 않다. 어떤 품새는 마지막 때리기를 할 때 기합을 넣게 되고, 어떠한 품새는 기합을 차기를 할 때 넣기도 한다. 기합의 횟수도 1~3번 지르도록 돼 있다. 품새에서의 기합은 품새의 리듬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태극 품새는 8장(두 번)을 제외하고는 한 번씩이고 유단자용 태극인 품새는 두 번이 기본이고 천권은 한 번, 십진은 세 번을 넣는다. 태극 8장과 태극인 품새는 땅에서 이뤄지는 행위로서 땅의 수가 2이기에 두 번씩 넣는 데, 천권은 하늘의 수로서 한 번, 십진은 많다는 의미로 세 번을 넣도록 동양철학적 사상(‘역경’)이 적용되고 있다.

기합은 온몸의 기를 통합하는 것이다. 기합의 목적은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온몸의 수축을 유도해 내는 데 있다. 특히 격파 시 기합과 함께하는 이유는 목표가 되는 격파물에 의식, 시선을 집중하여 기합의 힘으로 부수고자 하는 것인데, 충돌하는 순간에 온 몸이 긴장하고 그 순간 힘의 집중에 의해 발생되는 타격력의 결과이다. 기합은 육체의 모든 근육을 동시에 수축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힘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기합의 효과와 가치는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기합을 통해 순간적으로 근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 둘째, 호흡의 연속성을 통해 호흡조절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단전호흡의 효과를 얻음과 동시에 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셋째, 기합을 통해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잡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가치로서 자아에게는 자신감 배양 또는 깨달음의 효과 등에 의미를 두고 있다.

기합의 또 다른 기능은 발살바(Valsalva) 운동을 방지하는 것이다. 발살바 운동은 한 사람이 무거운 물체를 옮기는 집중적이고 격렬한 노력에 거의 호흡을 억제하고 근육을 긴장시키는 단계에서 밀폐된 기도에 반(反)하여 강제로 숨을 내쉬려는 노력을 말한다.

발살바 운동의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 운동은 흉부 내부의 압력을 굉장히 증가시켜 심장으로 연결되는 주요 혈관의 파괴를 유발하여 적게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크게는 심장혈관의 손상을 가져온다. 둘째, 호흡을 중단하고 근육 운동 후에 긴장을 푸는 중에 심장에로의 혈액의 쇄도는, 어떤 사람에게는 인체구조에 과도한 부담을 주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격렬한 근육운동 도중에 격하게 숨을 내쉬어서, 잠재적으로 위험한 발살바 운동을 방지할 수 있다(『태권도지도이론』1987:400).

호흡을 멈추었을 때 발휘되는 힘은 흉부강의 압력을 증가시키고 동맥압을 높인다. 숨을 내쉴 때 동맥압은 빠르게 떨어지고 혈관이 확장된 후 채워지고 좌심실로 가는 혈류가 약해지게 된다. 이러한 증상이 발생할 때, 대상자는 현기증이나 기절하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힘을 발휘하는 동안에 호흡을 중단함으로써 발생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증상을 발살바 머뉴버(Valsalva maneuver)라 칭한다.

이는 등척성 운동과 중량을 들어올리기에서, 큰 힘을 발휘할 때 피해야 한다. 안정한 운동이란 정상적인 자세, 기술, 정신운동과 함께 수행된 것으로 정의한다.

기합에 따른 운동 뉴런 흥분성의 변화와등척성 근력의 변화에 대한 연구결과는 두 가지로 요약되고 있다. 첫째, 기합을 사용하였을 때, 더 많은 운동 뉴런이 동원되는 것으로 보아 기합은 운동 신경 효율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둘째, 기합을 사용하였을 때, 근력의 최대 등척성 수축력이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기합은 근력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강경환, 윤준구, 체육과학연구, 2001).

기합의 형이상학적 의미는 불교에서의 ‘할’(가르침을 위해 꾸짖는 소리)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즉 선종에서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없는 도리를 보이는 소리와 같다. 그 소리를 통해 상대가 놀라 ‘참나’ ‘깨달음’을 얻는 방법과 같다. 품새는 ‘나’를 찾아나서는 수행의 길이기 때문이다.


[글.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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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하

    그렇군요~글잘읽었습니다~!ㅎㅎ

    2011-05-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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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그럴듯해요

    정말 글을 잘쓰세요 ㅋㅋㅋ

    2011-04-1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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