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이야기] 평양박치기! 맛 좀 볼래?(상)
발행일자 : 2011-02-17 15:23:31
<글 = 사단법인 대한수박협회 송준호 회장>
조선시대 초대 선교사 이기풍 선생(1868년~ 평양)은 구한말의 평양거리를 주름잡던 소문난 건달(불량배)이었다. 잔칫집마다 찾아다니며 술과 떡을 내놓으라고 고함을 지르고 풍비박산을 만들기 일수였다. 어느 날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활개를 치며 평양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말 타고 가던 높은 분(평양좌수)과 마주치게 되는데, 아니꼽다고 다리깨를 잡아채서 낙마시킨 죄로 목에다 칼을 쓰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또 있다. 모펫이란 분이 선교하는데, 친구들 함께 문을 부수고 난입해서 돌로 쳐 턱을 부스러지게 하는 등 한때 평양 건달로 유명세를 떨쳤다고 한다.
젊은 시절 박치기 명수로 아무도 그분을 당할 자가 없었다. 돌팔매질 또한 잘해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석전에서 대장을 맡기도 했다. 박치기? 중국 문헌인 ‘사기’, ‘술이기’ 등에 동이족의 체기(體技)로 치우희(蚩尤戱)란 것이 나온다.
‘소뿔을 쓰고 서로 막고 밀치는 놀이’로서 머리로 들이받기도 하던 것이다. ‘중국 무도사(舞蹈史)’에도 소개되고 있는 이 치우희는 검기무와 함께 무무(武舞)로서의 조종이며,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수박의 강력한 기술로서 현존하고 있다. “붙잡고 받아버리면 끝나!” 송창렬 옹의 말씀이다.
2004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당시 필자는 태릉선수촌에서 모 대표 팀 트레이너 생활을 하던 때의 일이다. 유년시절 동경하던 김일 선생에 관한 책자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운동이 없는 시간을 틈타 생전에 머무시던 곳을 찾아뵙고 관련 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김일 선생(1929년생)의 박치기란 것은 고증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이었다. 생전에 가치 있는 무(武)의 전승자로서 연구, 정리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역도산 선생(김신락, 1925년생 일제강점기 함경도에서 도일 하셨음)께서 "너는 조선 놈이니 박치기를 해라!"며 "선생님께 배운 것이다"라고 확언하신 바 후에 기술을 응용하셨다 해도 그 맥을 인정할 여지는 있기 때문이다.
부언하여 "프로레슬링이 쇼라는데?"라는 짖궃은 질문에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나는 한 번도 쇼를 해 본 적이 없고, 내 제자들에게 가르친 적도 없다"고 말이다.
아! 날파람
박치기를 주된 기술로 사용하던 민중 무술에 '날파람'이란 것이 있었다. 박치기의 속어로는 대갈받침이 있다. 날파람의 사전적 정의는 ‘바람이 일 정도로 날쌔게 움직이는 것(북한어)’이다. 날파람 꾼은 이와 같은 사람을 지칭한다.
[사진설명 : 1935년 왼쪽부터 여운형, 안창호, 조만식 선생. 조만식 선생의 청년학도시대. *조선일보 1938년 1월 6일자]
“조만식 선생의 소년시대 내지 초기의 청년시대에는 싸움과 날파람을 잘하고, 담배와 술을 잘 마시기로 유명했고, 화류향에서도 장수 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싸움판에서나 날파람터에서는 물론 석전판에서도 선생의 그림자가 한 모퉁이에서 나타나면 마치 솔개가 지나간 뒤에 병아리들이 조용해진 듯한 감이 없지 않아...” 그 당시 선생의 존재는 일반에게 공포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북한에서는 날파람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손과 발, 머리를 비롯한 온몸이 그대로 공격과 방어수단으로 되어 있는 날파람은 우리민족의 정통무술인 수박과 택견의 기술에 머리받기, 어깨받기, 몸동작 등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공격할 때 상대방의 몸을 잡을 수도 있고 손으로 치고 발로 걷어찰 수도 있다. 특히, 머리까지 쓰는 힘을 다한 특기가 있다. 그러므로 날파람은 온몸을 모두 쓰는 다방면적이며, 종합적인 무술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근대초기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지방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근대시기에는 평양날파람이라고 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술로 알려졌었다. 평양지방에서 근대시기에 진행된 날파람은 남문 앞과 남문 밖, 관문 앞(종로거리)등에서 일정한 지역으로 나뉘어 경기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소년들이 나와 진행하였는데, 지는 편에선 대신 좀 더 큰 사람이 나서고 이렇게 하여 마지막에는 청장년들의 경기로 끝을 맺곤 했다. 날파람은 경기로 진행할 때에는 어떠한 도구(물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날파람에 관한 증언으로는 ‘평양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동네 패싸움 같은 것’ 또는 ‘처음에는 석전으로 시작하지만 그대로 투석전이 되었다. 서로 맞부딪쳐 육박전을 벌이게 되는 등’이라하여 내용이 일관되지 못한 듯하나 결국, 정리하면 날파람은 평양의 남문 밖에서 진행되던 단오씨름과 거의 흡사한 형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애기씨름에서 청장년으로 행위의 주체가 변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경기를 치렀던 것이다. 패싸움, 석전 과정에서의 육박전 등은 상황에 따라 응용된 모습이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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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택견은 없어요. 문화재가 아니면 가짜인가요? 배우고 익혀도 부족한걸,,
2011-03-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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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해요.
2011-03-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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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으었을때겪은민주화 그럼 니나이가60대니?응그런거야유아틱한것들이괜히나이많으면좋은줄알고그러지나처럼나이들면한해가는게두렵단다아가야집에서쭈쭈바나빨아라쪼다ㅓ야니가아무리택견을둔갑시킬래도진실은근대란다아가야쭈쭈사실200년도아니란다 50년쳐 주면 적당하겠다너도엉덩이흔드는애들중하나냐?쪽팔리게..집안망신시키지말고눈팅아나해라
2011-03-0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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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낳아주신 분들 수명보다 훨씬 긴 것이 200년이란다. 내가 젊을 때 겪은 87민주화 운동 역시 지금은 한세대가 거의 지날 무렵이란다 아가야. 보통 문화사에서 30년을 한 세대로 치거든? 200년이란 시간이 짧다는 건 니가 배운게 없고 생각이 모자라서 그러는 거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니란다. 니가 잘 처먹는지는 모르겠는데 아구찜의 역사는 100년도 안되지만 우리 전통음식으로 취급한단다......뭘 모르면 그냥 집에서 디씨나 읽으면서 싸라. 어른들 대화에 아는 척 끼어들었다가 아는 밑천 다 드러내고 처발리지 말고. 사용하는 어휘 보니 니네 집안 교육 수준을 알만하다.
2011-02-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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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너 친구냐 코나흘리고다녀라 쪼다같은넘아 곤란했단건 지정이 될 수 없었단거고 지정 안되는 걸 해 놓고 말이 많앗단거지 신라화랑이 택견 했냐? 신라는 천년전인데 200년 밖에 안된 택견을 타임머신타고 배운거야 그런거야 ㅄ아 진실을 얘기하고 점잖게..
2011-02-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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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이 그럼 기냐 ㅄ야 문화재지정이 곤랂ㅆ던 이유가 기술이 몇가지로 한정되고 놀이라서 그랬잖아 그러면 짱갬봉도 뮨화재냐 ㅄ
2011-02-2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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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이면 글이나 제대로 읽어라. 누가 택견 역사가 200년이 넘는댔냐? 200년이 짧지 않다는 것이고 당시 문화재 지정이 곤란했던 이유를 설명했는데 너는 그따구로 받아들이니? 머리가 비었으면 가서 껌이나 팔아. 이런 멍청한 것들도 여기에 리플 다는 꼬라지 하고는......
2011-02-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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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이상 된 역사나 내 놓고 지껄여라
2011-02-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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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멋있는 품세 같은거 좋아합니다. 태보같은것도..멋이 있어야 배웁니다. 연구 많이 하셔야겠네요.
2011-02-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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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주관한 권위있는 조사에서 전통의 기준을 100년으로 잡았다. 이게 답이다..
2011-02-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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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이 200년밖에 안된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바보야 신라에 택견이 있었다고 거짓말이나허고 쯧쯧 너도 그거 믿는 종류니? 택견이 나쁘단게 아니고 그렇단 거지 진실은
2011-02-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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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밖에 안되는 역사란다...200년이 짧은 역사냐...뭔 소리여..... 역사로 인해서 문화재 지정이 안된게 아니라 기술의 수가 적고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런거다. 예용해 위원이 보고한 문화재 보고서나 읽어봐라. 네 머리 속에서 나온 헛소리로 잘못된 정보 보내지 말고......
2011-02-2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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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차원에서 무예를 정리하고 있으니 머지 않아 흑백이 가려질 겁니다. 기다려 봅시다.
2011-02-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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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문화재 취소하잔 얘긴 전에도 있었죠. 취소시키고 내가 해야 된다고 모단체 수장분들...취소는 안될겁니다. 공무원들이 자기가 도장 찍은거 없던 일로 하자겠어요? 80년대와 비교해서 지금은 문화재청 지원금이 어마어마합니다. 신규종목을 선별해서 지정 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2011-02-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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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과 택견은 별개의 무술입니다. 택견에서 200년 밖에 안되는 역사를 가지고 문화재 지정이 안되니 역사왜곡을 한 겁니다. 날파람은 수박에 가까운 북한 고유무술입니다. 박치기는 북한 사람들 특히 평안도, 함경도 분들 특깁니다. 시라소니옹의 고향도 평안도 신의주였어요. 님 말씀처럼 거짓이 난무하는 곳이 무술곕니다. 전통무예라는 쪽이 심하고요. 택견은 많이 성장했으니 문화재보호법상 보호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문화재 취소하고 그 돈으로 소외 된 종목 전승자들 지원이나 했으면 그 분들 딱하죠. 이수자도 없고 맥이 끊어진 곳도 많아요.
2011-02-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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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파람이 수박 +택견이면 수박과 택견은 별개! 수박은 뭐고 택견은 뭐야? 헷갈리는 기사네 북한에선 태권도가 택견이라는데 태권도가 날파람이됬으면 왜 태권돈 남아 있고 날파람은 사라진거지??? 죄다 뻥카다. 역사를 꾸ㅐ 맞추며 신라의 화랑이하던 무예라고 뻘치던 합기도가 외래무예란다. 니미 거기서 갈라진 국술은 창시무예! 화랑도란건 더 웃긴다. 신라 고구려 백제 다 나온다. 삼국의 정예무술이 화랑도로 정리됬단다. 믿거나 말거나다. 그나마 수박이나 택견은 계보라도 있으니 90프로 사기쳐도 인정해준다 이런거 잘 살려서 외국에 팔아 먹으면 외화벌이 될탠데 쯧쯧 외국 나가세요 외국
2011-02-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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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싣게를 풍미한 거인이셨죠. 박치기...어릴때 할아버지께서도 친구분들과 평양박치기 말씀을 술좌석에서 하시는걸 들은적이 있어요. 할아버진 평양이 고향이시고 피난오셨었죠. 잘 읽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2011-02-2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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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선생님도 무술을 하셨네요. 귀한 자룝니다.
2011-02-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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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특기였죠. 동이족의..치우희는 박치기 위주로 하던겁니다. 손으로 하는건 아닙니다.
2011-02-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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