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보고서] 수(守)-파(破)-리(離)를 생각해 보자
발행일자 : 2009-07-29 16:19:38
<글=허건식(서일대 교수)>
"너는 고등학교를 가더니 자세가 엉망이다. 왜 그 모양이냐?" 얼마 전 어느 무도경기장에서 중학교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가 한 학생을 꾸짖고 있었다.
지도자가 바뀌면 당연히 해당 선수는 많은 것이 바뀌기 마련이다. 수영선수인 박태환도 여기저기 지도패턴이 바뀌면서 혼선을 빚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예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지도자를 맞은 선수는 자세부터 경기운영까지 통째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무예수련에 있어 '수(守)-파(破)-리(離)'라는 수련과정을 묘사한 용어가 있다. 검도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기는 하나, 이는 선불교 수행방법을 인용한 것이다. 그 내면에는 수행자가 어떤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담겨있다.
수(守)는 ‘지킨다’는 것이고, 파(破)는 ‘깬다’, 리(離)는 ‘떨어져 나간다’를 의미한다. 특히 ‘수’단계에는 그 내면에 또 수-파-리가 존재한다. ‘파’ 나 ‘리’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기술하나를 배우면 그 과정에는 항상 수-파-리가 존재한다.
앞에서 언급한 선수는 이미 중학교 과정에서 수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을 깨고 고등학교로 간 것은 파와 리의 단계라고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이 선수는 현재 (고등학교)지도자에게 수 단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중학교 지도자는 자신만의 지도관점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다. 깨고 떨어져 나간 제자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혼선만 안겨줄 뿐이다.
의(義)를 지키고 성(誠)을 중요하게
무예계에는 스승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는 풍토가 있다. 제자가 스승아래에서 수련할 때는 그 행적을 엄하게 지도하여 의(義)를 지키고, 성(誠)을 중요하게 하는 것을 가르치면 사리에 어긋남이 없는 선도(善道)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스승이나 제자가 지켜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떠난 제자에게 의도적인 의(義)와 성(誠)을 강조한다는 것은 무리다. 새로운 스승을 만난 제자에게 지속적으로 스승임을 강조(?)하거나,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은 스승의 아집이 될 수 있다. 심하면 스승이라는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왜 우리 무예계는 수파리의 원활한 과정이 없는 것일까? 특히 무예계 1세대, 그것도 일본의 영향을 받은 무도의 경우 지나칠 정도로 수 단계만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하에서 일본무도를 수련한 대부분이 수 단계에서 해방을 맞아 한국무도계의 지도자가 되었다. 원활한 수파리단계를 거치지 않은 2, 3단의 실력자들이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렇다보니 당연히 제자들에게도 수십 년간 수 단계 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후 우리 무예계는 길게는 4세대까지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수(守)’라는 단계를 벗어나 원칙과 기본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 틀을 깨고 자신의 개성과 능력에 의존하여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 가는 파 단계도 존재한다. 또한 파의 연속선상에 있지만, 그 수행이 무의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단계로 질적 비약을 이룬 상태, 즉 리 단계에 있는 무예인들이 존재한다.
최근 도장을 개관하는 젊은 세대들은 자신만의 창조와 철학을 가지고 지도하는 ‘리’단계에 서 있다. 젊은 지도자도 무예에 대한 내면적인 성숙은 지속적인 과정에 있다. 하지만 일단 제자들을 지도하는 도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리 단계에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어설픈 리 단계가 아니냐”며 도장개설은 일본처럼 7단 이상의 고단자로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4단을 소지하고 지도자 자격만 있으면 도장을 개설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있는 한 빠른 리의 성숙단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명한 팀의 지도자는 설득의 방식이 뛰어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교 선수이야기를 하자. 중학교 지도자는 그 선수가 의와 성을 지킬 수 있게 고교 지도자의 수 단계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많은 스승을 만나고, 그 스승들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앞으로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 하나하나를 지도할 때. 선수나 제자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때. 지도자의 생각으로 끌어드리는 설득의 방법은 선수나 제자가 같은 생각과 견해를 가지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서로의 이해관계와도 직결된다. 설득에는 설명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설명 없이 설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는 해당 무예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설명을 통해 설득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설명과 설득은 무예단체에도 필요하다. 어떤 사업 제안의 경우 진정성의 판가름은 설명과 설득으로 가늠할 수 있다.
키 큰 지도자의 수제자는 대부분 키가 크다.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의 수제자들은 키가 다양하다. 이는 지도자가 그 만큼 많은 스승들과 경험하고, 고민한 결과다. 다양한 샘플을 경험한 의사가 유명하듯이 다양한 경험을 한 지도자에게서 좋은 제자들이 나오며, 훌륭한 지도력이 발휘된다. 그 내면에는 수파리 수련과정의 이해와 실천이 깔려있다.
이런 경험의 결과는 지도과정에서 '설명’이 아닌 ‘설득’이라는 교수법으로 나타난다. 잘되는 도장이나 유명한 팀의 지도자는 설득의 방식이 뛰어나다. 설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설득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만큼 경험이 많고 고민을 많이 했다는 증거다.
(사진=고동수)
*허건식의 무예보고서는 격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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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이네요.
설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설득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적, 철학적, 심리적 고민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군요.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2009-07-3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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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경지만을 해석한 것들이 많은데 수파리가 이런 의미도 있으니 새롭네요. 이런 수파리의 어원이 불교 어디에서 출처되었는지 왜 무도에서 이런것을 도용했는지도 설명해주시었으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2009-07-31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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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글 부탁합니다.
2009-07-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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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 잘 읽고 갑니다. 불교용어를 무도에서 잘 적용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2009-07-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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