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무예]경당이란 무엇인가

  


경당의 유래


조선왕조는 창립이래 기창을 비롯하여 격구, 궁시등을 무과 시험과목으로 한 무관 등용제도가 있었고, 특히 궁시는 문, 무관 모두에게 의무화하여 가위 궁시 일기라 할만 하였다.

그러다가 임진 조국전쟁(일본의 침략에 대한 조국수호전쟁)을 당하여 형식적으로 전해지던 창과 칼은 한번도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정예한 적군의 침략앞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리자 전쟁발발 2년후인 1594년에 훈련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훈련원 무예는 맨처음 한교육기로부터 시작하여 효종의 북벌계획에 있어서 핵심적인 수련과정으로 되기에 이른다. 이후 조선 왕조는 북벌의 의지를 포기하지 못한채 훈련원을 비롯하여 18반 무예를 정립하였다가 정조 14년(1790년)에 마상육기를 추가하여 24반 무예를 정립하고 이를 무예도보통지에 수록하였다.

정조대왕은 장용영이라는 특별부를 창설하여 24반 무예를 집대성하면서 이를 개혁정치의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따라서 무에도보통지는 실사구시의 실학정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실증학문의 결정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당 재현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지고지대한 24반 무예는 한일합방으로 인한 구 한국군대의 해산시기까지 이 겨레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체제를 수호해온 국방무예이었으나 국운의 쇠퇴와 함께 철저한 탄압을 받아 실전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반체제 인사로서 두번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0여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중이던 임동규씨에 의하여 규장각도서(서울대학교 도서관)로서 보관되어오던 무예도보통지의 영인본으로 이것이 10년간의 세월에 걸쳐 재현되었고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10여년의 세월이 경과되기에 이르렀다.

경당의 이념

24반 무예의 재현도 단순히 기법만의 재현이 아니라 이와같은 기법을 담고 있는 우리의 몸짓에 깃들어 있는 민족 정서와 주체적이고 자주적이었던 고구려의 정신, 건국이념을 표상하는 경당이라는 명칭을 그 도장의 이름으로 한다.

따라서 경당은 자주, 자강, 자애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무한 경쟁시대라고 예측되는 21세기를 자랑스럽게 극복해나가면서 우리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고자 함에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한반도 문제를 최대한의 정치적 성숙성을 발휘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함으로서 온 인류의 문제점인 계급모순, 선후진국 간의 모순, 선진국 상호간의 모순, 체제간의 모순 등 모든 인류의 현안 문제를 대화와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단서를 제공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당의 이념은 모든 인류와 사회의 문제를 전향적인 입장에서 평화적으로 추구하는 데 있다.


경당의 구성


24반 무예는 제1권에 장창, 죽장창, 기창, 당파, 기창, 낭선 등 창류로, 제2권에 쌍수도, 예도, 왜검(교전부) 등의 도검류로, 제3권에는 제독검, 본국검, 쌍검, 마상쌍검, 월도, 마상월도, 협도, 등폐(요도표창부) 등의 검도류와 제4권에 권법, 곤방, 편곤, 마상편곤, 격구, 마상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당 현황

경당은 광주본당을 비롯하여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주요도시 30여 지역의 경당과 전국에 산재된 70여개의 대학 동아리에서 약 5만여명의 수련생이 수련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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